종합병원, 한의원, 대형학원을 운영하는 재력가들과 전현직 금융사 임원 등이 공모한 1000억 원대 주가 조작 사건이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주가 조작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경고에 따라 7월 말 출범한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의 ‘1호 사건’이다. 합동대응단은 부당이득의 최대 2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금융투자상품 거래 및 임원 선임 제한 등을 통해 주가 조작하다 걸리면 즉시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의 본보기가 되게 하겠다고 밝혔다.
작전세력은 법인자금과 대출금 등 1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동원해 지난해 초부터 1년 9개월 동안 코스피 1개 종목을 대상으로 거의 매일 시세조종 주문을 냈다. 둘 이상이 짜고 주식을 사고파는 ‘통정매매’, 한 사람이 매도·매수 주문을 동시에 내는 ‘가장매매’ 등의 수법을 수만 회에 걸쳐 반복하며 거래가 활발한 듯 꾸며 주가를 두 배로 부풀렸다. 금융당국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수십 개의 계좌를 활용해 분산 매매하거나 인터넷주소(IP주소)를 조작하기도 했다. 주가 조작으로 부풀린 부당이득액은 400억 원에 이른다. 다행히 진행 단계에서 작전을 중단시켜 범죄 수익을 실현하는 것은 막았지만, 작전세력의 타깃이 됐다는 소문에 해당 종목의 주가가 23일 하한가로 떨어지면서 애꿎은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그동안 한국에서 주가 조작은 허술한 감시망과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안 걸리면 생큐,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강했다. 매년 100여 건의 불공정 행위가 발생하지만 적발돼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부당이득 산정 방식이 불명확해 범죄 수익을 제대로 환수하지도 못했다. 처벌이 가볍다 보니 범죄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2021년부터 3년 동안 적발된 주가 조작범 중 재범자가 29.2%에 이를 정도였다.
작전세력이 판치는 환경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증시 저평가) 해소를 기대하기 어렵다. 완전히 뿌리가 뽑힐 때까지 철저한 감시와 처벌을 이어가야 한다.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는 범죄자들이 정말로 패가망신하는지 1400만 개미투자자들이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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