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부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가 지난해 11월 14일 오후 공천을 대가로 정치자금을 주고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후 대기 장소인 창원교도소로 가기 위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창원=뉴스1
25일로 윤석열 대통령의 최종진술이 끝났고, 탄핵 심판도 이제 선고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윤석열은 이미 꺾인 권력이고, 그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이제 우리는 회복과 치유를 위한 다음 스텝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이번에는 제발 좀 그나마 더 나은 사람을 리더로 뽑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명태균 이슈부터 확실히 털고 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명태균의 폭로가 처음 나온 건 지난해 10월 경입니다. 그의 입이 여권을 ‘블랙홀’에 빠트린 지도 어느덧 6개월째인 겁니다. 구속된 뒤로도 이어지는 그의 폭로는 아직도 여권의 주요 잠재적 대선주자들을 연일 흔들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22일 페이스북에 ‘명태균 씨가 갖고 있다 검찰에 제출한 황금폰 3개’라며 공개한 실물 사진. 박 의원은 21일 경남 창원교도소에서 명 씨를 접견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 페이스북“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서서히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보인다. 이제 다시 ‘명태균 의혹’에 불을 붙여야 할 때다.”
보름 전쯤 더불어민주당의 중진 의원을 만나 들은 이야기입니다. 마치 ‘예언’같던 그의 말은 실제 그 직후부터 현실화되더군요.
민주당은 17일부터 명태균 관련 녹취를 하나씩 공개하면서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명태균 게이트’에 다시 불을 붙였죠. 명 씨가 구속된 뒤로 민주당 의원들은 직간접적으로 명 씨와 명 씨 가족들과 접촉해 왔다고 합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박범계 의원은 이른바 ‘명태균 황금폰’ 실물 사진을 22일 공개하기도 했고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 씨 측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비용을 사업가인 측근에게 대납하도록 한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022년 6월 대구시장 선거를 앞두고 명 씨 측 여론조사 비용을 측근에게 대납하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오 시장과 명 씨가 몇 차례 만났다더라’, ‘홍 시장의 아들이 명 씨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더라’라는 등 명 씨 측의 온갖 추가 주장이 연일 이어지는 중입니다. 민주당도 명 씨와 이들의 관계를 집요하게 추궁하고 있고요.
이런저런 잡음이 이어지다 보니 요즘 주변에 “이들을 뽑고 싶어도 자칫 ‘이재명 사법리스크’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까 두려워서 못 찍겠다”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1심에서 이미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이재명 대표도 선뜻 지지하긴 어렵다는 사람들입니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외에도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 8개 사건에 대해 5개 재판을 받고 있죠.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지난 수년간 일으킨 여야 간의 끝도 없는 갈등과 충돌, 그리고 그로 인해 국회에서 될 일도 안 되는 걸 지켜본 사람들은 이제 지도자의 사법리스크라 하면 정말 지긋지긋하다 합니다. 이런 소모적 에너지 낭비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명태균 의혹은 샅샅이 털고 가자는 겁니다. 누굴 죽이기 위한 특검이 아니라, 누굴 뽑아도 안전할지를 가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특검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2월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범계 소위원장(가운데)이 회의를 개의하고 있다. 이날 소위에선 명태균 특검법을 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뉴스1하지만 여전히 여야는 명태균 특검을 오로지 정쟁용 수단으로만 보고 각자 계산기를 돌리는 모습입니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추진하는 명태균 특검을 ‘여당 공격용 특검’이라고 규정하며 발끈하고 있죠.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선 특검에 대한 표결을 거부한 채 퇴장해 버렸습니다. 국민의힘 주특기인 ‘회피하기’죠.
그래 놓고 아직 전체 회의도 통과하지 않은 법에 대해 벌써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합니다. 그럴수록 더 이상해 보입니다. 국민의힘이 과거 이재명을 향해 줄기차게 외쳤던 말이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 아니던가요.
당사자들도 특검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홍 시장과 오 시장 말대로 여권이 정말 명태균 의혹 앞에 자신이 있다면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어디 한 번 다 털어 봐라’라고 선방을 날려야 할 때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7년 12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 대통합민주신당이 요구한 BBK 특검법안을 전격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똑같은 공방만 되풀이되던 대선 정국을 정리한 바 있습니다.
2007년 12월 16일 밤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애초 당론으로 거부해 왔던 ‘BBK 특검법’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 후보는 “특검을 수용하겠다”며 “국회에서 여야가 논의해 법과 절차에 따라 특검법을 처리해달라”고 했다. 동아일보 DB대신 민주당도 명태균 특검을 ‘상대 죽이기용’으로 악용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신뢰를 보여줘야 할 겁니다. 국민의힘이 민감해하는 당사 압수수색 가능성 및 언론 브리핑 등 독소조항을 제거하고, 상대를 설득해 반드시 합의 처리해야 합니다. 여야 합의 없이 강행 처리된 특검법이 그대로 공포되긴 쉽지 않을 겁니다.
이전 수많은 특검처럼 무작정 힘으로 눌러 일방적으로 처리해 버린 뒤 또다시 재의결에 부치고, 결국 부결로 폐지시키는 바보들의 행진은 이제 멈춰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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