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사전 협의 테이블에서 대만 문제가 논의되는 것은 사실상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 역할 조정과 연계해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한 한국의 역할을 압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양안(중국과 대만) 전쟁에 대비해 동맹국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최근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것.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외계인의 지구 침공’에 비유하며 “우리와 상관없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는 만큼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정부에 명확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분석이 나온다. 한미 간에 한미 정상회담 의제로 다룰지를 두고 줄다리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당국 간엔 대만 문제에 있어 한국의 역할 등 역내 현안 관련 소통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4일 “(대만 문제) 상황에 대해서 여러 가지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펜타곤(미 국방부)에서 대만 문제를 포함한 주한미군 태세 조정과 연계된 여러 요구들이 산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도 “(미국의 요구 수준이) 한국이 대만 문제에 메시지만 내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새 국방전략(NDS) 수립을 주도하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일본과 호주 측에 ‘대만을 둘러싼 미중 전쟁이 벌어졌을 때 어떤 역할을 할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비슷한 취지로 양안 분쟁 시 지근거리에 있는 동맹인 한국에도 역할 정립을 요구하는 기류로 풀이된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미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중국의 역내 위협이다. 미 국방부의 ‘임시 국가 방어 전략지침’에도 미국은 본토와 중국의 대만 침공 억제를 최우선시한다는 방향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미 중앙정보국(CIA)은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 시점을 2027년으로 공식화한 상태다. 이에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와 대만 침공 억제로 조정하고 한국의 자체 방위 능력 향상 및 관련 지원을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이를테면 대만 유사시 후송·병참 및 무기 지원이나 한국군 투입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
다만 이 같은 미국의 구상은 대만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과 다소 거리가 있어 향후 한미 간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그동안 한미, 한미일 회담 계기에 대만해협, 남중국해 등 미중 갈등 현안에 대해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는데 미국이 이보다 더 수위가 높은 메시지나 한국의 실질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는 주한미군 역할 변화 및 대만 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역할 확대가 대북 대비태세 약화, 한중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문제로 보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양국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강조했지만 워싱턴 조야에 여전히 현 정부에 대한 ‘친중’ 이미지가 퍼져 있는 만큼 한미 정상회담이 이 같은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할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 측이 한국에 ‘안미경중(安美經中)’ 대신 미국과 중국을 놓고 택일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다. 미 백악관은 6월 이 대통령 당선 직후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을 우려한다”는 이례적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의 최근 요구 흐름을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답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주한미군 태세 조정에 따른 한국의 자체 방위 부담 확대도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거론된다. 관세 협상과 함께 진행된 안보 협상에서 직접비용과 간접비용으로 구성된 우리 정부의 단계적인 국방비 증액 계획에 미국도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 안팎의 우려와 달리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재협상 및 분담금 인상 등은 논의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방위비를 함께 협상하는 기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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