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해법 없이… 정부 “내년 의대 증원, 대학 자율로” 떠넘겨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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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법 개정안에 ‘총장이 조정’
총장들 “정부가 책임 전가” 반발
의협도 “대학본부-의대 갈등 심화”
의대 학장들 “내년 증원 0명” 주장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설치법 관련 정부 수정안에 대학 총장이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조정할 수 있는 내용을 담으면서 대학과 의료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지난해 의대 증원을 결정한 뒤 1년 넘게 의정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의대 모집인원 결정 책임을 대학들에 전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복지부는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개최에 앞서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 수정안을 제출했다. 정부 수정안에는 ‘복지부 장관이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심의를 거쳐 2026학년도 의사 인력 양성 규모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대학의 장은 (중략)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2026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 중 의대 모집인원을 2025년 4월 30일까지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구체적인 변경 규모는 밝히지 않았고 ‘이 경우 대학의 장은 교육부 장관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단서만 붙었다. 내년 의대 정원이 추계위 등에서 합의되지 못할 경우 대학 총장이 교육부와 협의해 모집정원을 결정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이날 법안소위에서 수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현재 대학별로 지난해 4월 공개한 ‘2026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에 따라 2024학년도 정원 3058명에서 2000명이 늘어난 5058명이다. 의대 모집인원이 조정되려면 대학들이 각각 변경된 모집인원을 올해 4월 30일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신청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대학들이 의대 증원분을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도록 ‘자율 감축’을 허용하면서도 2026학년도 모집인원에는 ‘2000명 증원’을 반영하라고 했다.

대학 총장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이 나왔다. 한 대학 총장은 “휴학한 의대생들은 2024학년도 정원으로 회귀하지 않으면 복학하지 않겠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증원분을 반영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미뤘던 3월 개강도 물 건너갔다”고 했다. 특히 사립대들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의대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어 모집인원을 줄이면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2024학년도보다 늘어난 정원으로 선발하고 싶지만 이럴 경우 의대생들이 크게 반발할 수 있다. 서울 지역 대학 총장들은 “서울 소재 의대는 2025학년도 정원이 늘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했다”며 “정부가 학교와 학생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19일 의대를 둔 대학 총장들과 교육부, 복지부에 보낸 협조 요청 공문에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2024학년도 정원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도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026학년도 정원 조정을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대학 총장이 변경할 수 있다는 정부 수정안에 대해 ‘정부가 할 일을 미룬다’고 비판했다. 의협 관계자는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는 것 아니냐”며 “이렇게 되면 대학 본부와 의대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들은 4월 30일까지 2027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공개해야 한다. 정부가 추계위를 통해 의대 정원을 결정하지 않으면 대학들은 현재 5058명인 의대 정원을 기준으로 시행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이후 다시 의대 정원을 변경한다면 의정 갈등은 지속되고 수험생들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의정갈등#의대 정원#2026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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