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낀 한 환자가 호남권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으나 의료진 부족 등의 이유로 수술을 받지 못했다. 이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져 약물 처치 등을 받았지만 도착 5∼10분 만에 숨졌다. 유족들은 이 같은 내용을 보건복지부 환자 피해신고 지원센터에 접수시켰다. 센터는 “의료 과실과 관련해서 소송할 수 있다”면서도 “사실상 개인소송으로 진행하는데, 피해와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수련병원을 떠난 뒤 정부가 “의료공백으로 피해를 당한 환자와 가족을 지원하고 민형사상 소송도 돕겠다”며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연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 피해’로 인정된 사례는 1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기 시작하던 지난해 2월 19일부터 환자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운영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18일까지 1년간 상담은 6260건이 접수됐으며 이 중 피해신고서가 접수된 사례는 933건이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공백과의 연관성이 입증된 피해가 0건이라는 통계는 현재 시점까지 유효하다”고 말했다.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복지부에서 받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 상담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2월 19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접수된 피해신고서 중 즉각대응팀과 관련된 것은 11건이었다. 즉각대응팀은 의료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설치된 조직이다. 11건 중 의료공백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된 사건은 없었다. 환자 사망과 관련한 신고도 21건 접수됐다.
복지부는 센터에 접수된 신고 가운데 3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지난해 6월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을 하던 당시 센터에 접수된 진료 거부 의심 사례 3건이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을 지낸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당시 환자들이 오해했다. 3건 모두 교수들이 진료하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 환자단체 “환자 피해 조사기구 발족해야”
피해 신고는 중증 환자를 담당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질환 등 난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이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 상담 내역’에 따르면 전체 피해신고 932건 중 748건(80%)이 상급종합병원에서 발생했다. 강 의원은 “더 아프고 절박한 환자들에게 피해가 치명적이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병원 교수는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의료공백과 관련된 피해가 발생해도 환자들이 직접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 피해 조사기구를 발족하고 명확한 조사를 시행해 사태의 심각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제2의 전공의 사직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중환자실·응급실 공백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의료인 집단행동 시에도 응급실·중환자실 등은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의료 공백 방지 법안’을 신속히 발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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