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경쟁이란 없어… 대한산악연맹과 함께 산을 인성 교육의 장으로”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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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좌진 대한산악연맹 회장이 1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디와이피엔에프(DYPNF) 마곡 사옥에서 연맹 비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조 회장은 한국 산악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 강화와 산악 문화 저변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강조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시골에 살아서 어렸을 때부터 산이 좋았다. 공부하라고 부모님이 보내서 온 서울에서도 심심하면 도봉산을 올랐다. 경복고를 다닐 때 산악부에 들어갔다. 도봉산 선인봉 아래에 텐트를 치고 자주 밤을 지샜다. 몇몇 친구들이 따라왔다. 산에서 자고 바로 등교한 적도 많다. 산을 안방 삼아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배려를 배웠다.

고 고상돈 대원이 1977년 한국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에 올랐다. 그 영향으로 산에 더 빠졌다. 에베레스트 원정대 귀국 축하 퍼레이드까지 찾아가 봤다. 공부가 손에 안 잡히면 산에 다녀와 활기를 찾았다. 세상이 싫다든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산이 다 막아 줬다. 암도 산을 다니면서 치유했다.

1970년대 이숭녕 대한산악연맹 제1대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산행한 조좌진 제22대 회장(오른쪽). 이 회장은 조 회장의 경복고 대선배다. 조좌진 회장 제공
조좌진 제22대 대한산악연맹 회장(㈜디와이피엔에프 회장) 얘기다. 조 회장은 지난달 산악계 추대로 단일 후보로 나서 회장에 선임됐다. 임기는 4년. 산악계에서는 할 만한 사람이 됐는데 그동안 그와 산의 접점을 따지자면 늦은 감도 없지 않다는 분위기다.

바쁜 일정에 익숙한 기업가지만 전국 산과 산악회를 두루 찾아다녀야 하는 대한산악연맹 회장이 되니 그 이동 거리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그의 이름은 부모님께서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어 줬다. 책임감 있게 살라는 뜻을 담은 이름대로 살면서 꾀 부리지 않고 일을 찾아서 했다. 사업하면서도 책임질 일은 기꺼이 졌다. 조 회장은 “산악인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 이상 그동안 대한산악연맹에서 접근하기 어려웠던 영역까지 많은 일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모험과 도전을 위해 높은 산을 오르는 정통 알피니즘 활동과 전문 산악인을 기본적으로 챙겨야 한다. 더불어 등반이 스포츠 강국의 토대가 되는 스포츠 종목으로서 발전하는 것에도 신경 써야 한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산악스키는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정식 종목이다. 올 9월에는 국내에서 스포츠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유일하게 여름 및 겨울 올림픽 종목을 동시에 보유한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 수장으로서 육성과 지원도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다. 잘해서 금메달도 따고 스타가 탄생하면 산악 스포츠가 국민 스포츠로 확실하게 자리 매김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다.

17일 집무실이 있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 디와이피엔에프(DYPNF) 마곡 사옥에서 만난 조 회장은 “산을 다른 관점에서 봐 보자”면서 입을 뗐다. 그는 산악 스포츠가 학교 체육을 활성화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고급 인성 교육의 장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산이 갖고 있는 교육적 가치를 어떻게 더 부각시킬 것인가, 공교육 테두리 안으로 끌고 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다른 스포츠에서 볼 수 없는 감동이 있습니다. 친구들끼리 산에 올라 텐트를 치려면 누구 하나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역할을 나눠 누구나 일을 해야 합니다. 한 쪽이 속도가 늦으면 도와 주러 갑니다. 산을 자주 다니다 보면 배려가 몸에 배게 됩니다. 산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을 때도 그렇습니다. 누구 음식은 부실하고 누구 것은 푸짐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데 차려 놓고 바꿔 먹습니다. 친구들 음식을 보며 부러워하는 저를 위한 배려죠. 인격 형성 과정인 어린 시절에 배려를 배우게 됩니다.”

―산을 자주 다니면 또 무엇을 알게 될까요.

“조화를 알게 됩니다. 산에 올인(다 걸기)하는 분들을 산에서 보면 ‘아, 일하는 삶,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 중요하구’나 생각해요. 또 산에서는 한동안 일에 빠질 수 있는 집중력을 얻어요. 일을 열심히 하고 가는 산은 피로회복제 같지요. 그게 매력입니다. 조화를 모르고 산에 빠졌다면 매년 히말라야에 가지 않았을까요. 하하.”

―산에서 올바른 생각이 무엇인지 많이 배웠겠습니다.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체육으로서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정신 건강을 지키는 가치도 당연히 주목 받아야 합니다. ‘모두가 운동하는 시대’ ‘공교육 체육 시간이 보장 받는 시대’로 가야 하는데 빠진 것이 있습니다.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며 운동해야 하는 시대’로 가야 하는 겁니다.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인성 교육입니다. ‘인성 교육과 운동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등산만한 게 없다고 봅니다.”

―교육과 산을 접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인성 함양을 위한 과목으로 등산을 편성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친하면 친한 대로, 안 친하면 안 친한 대로 급우를 알아 가고 이해하는 시간, 맑은 공기 마시는 시간, 힐링하는 시간이 등산입니다.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죠. 전국에 산이 많습니다. 산에 가면 산에 깃든 역사가 따라옵니다. 주변 생태계도 눈에 들어오죠. 버스나 지하철만 타고도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는 건 덤이고요.”

―많은 국민이 즐기는 생활체육에서 등산과 걷기의 비중이 큽니다.

“청소년을 중심으로 지금 사회를 더불어 사는 사회로 바꾸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런데 산이 그것을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산행을 해 보면 체력이 좋은 사람이 무턱대고 앞서가지 않아요. 뒤쳐진 친구를 데리고 갑니다. 도움 받은 친구는 꼭 다른 사람을 도울 기회를 찾아요. 산에서는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합니다. 누가 물 한 잔만 줘도 고마워 하죠. 서로 ‘등산 잘하십니다’ ‘산 잘 타십니다’ 칭찬하고 존중합니다. 경쟁하기보다는 동행하는 곳이 산입니다.”

‘청소년 세계 오지 탐사대’ 부활 인성 교육을 위한 산행 불씨 살려


―예전에는 고등학교에 산악부가 있었습니다.

“등반을 위한 산악부로 학교에 재진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봐요. 산악부에 대한 학부모 반대가 심합니다. 체육 과목으로 편입되는 것도 쉽지는 않을 듯해요. 이 때문에 인성 교육을 위한 산의 가치를 계속 발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외국 연구 사례도 있는데, 문제 학생들에게 등산과 다른 운동을 시켜 보고 생활만족도를 비교했더니 등산이 훨씬 높았다고 합니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김미곤 대장은 지난해 소년보호시설에 수용된 청소년 8명을 데리고 백두대간 4000km를 걸었다. 사회에서 격리돼 방황하던 학생들은 이를 통해 스스로 해냈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얻었고 삶에 대한 의지를 찾았다고 한다. 이 청소년들은 이후 거주 지역 산악회에도 소속돼 정기적으로 산행을 할 수 있게 됐다. 조 회장은 이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있다.

“올해도 또 합니다. 자연이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 거죠. 이 학생들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사람과 친해지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 잘못한 게 있으니 계속 자신을 감춰요. 그러다 함께 산행을 하면서 서로의 처지가 보이고, 이해하면서 마음을 열게 되더랍니다. 힘에 부쳐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됐을 때 서로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곳이 산이었어요. 그들에게 산은 새로 태어난 ‘나’를 발견하는 곳일 겁니다.”

조 회장은 청소년들의 해외 산행 기회도 살려 냈다. 대한산악연맹은 2001년부터 해마다 국내 최대 해외 탐사 프로그램인 청소년 세계 산악 오지 탐사대를 모집해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여파 등으로 행사가 축소되고 후원이 줄면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조 회장은 부임하자마자 산림청을 설득해 협조를 받아 냈다. 이 과정에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17∼19대 대한산악연맹 회장)이 큰 도움을 줬다.

“목표가 있는 산만 바라보지는 않겠다”


―대한산악연맹이 학교로 찾아가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성 교육은 해야 할 시기가 있는데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됩니다. 학교가 산을 인성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의사가 있으면 대한산악연맹은 기꺼이 봉사할 겁니다. 너무 멀리서 찾지 않았으면 해요. 뒷산에만 가도 느끼고 얻는 게 많습니다.”

일부 지방 국립대에는 학생들이 산을 타면서 서로 인생에 대한 상담도 해 주고 미래 설계를 하는 자유교양과목이 있다. 제주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제주 올레길과 자아 성찰’이라는 과목을 운영해 학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김일환 제주대 총장을 비롯해 부총장, 보직 교수들, 제주대 출신 기업인들이 제주의 산과 오름 등을 학생들과 걸어 오르면서 격의 없이 소통하고 진로를 함께 설계하는 커리큘럼이다. 산이 ‘런케이션(learn·배우다와 vacation·휴식을 합친 말로 쉬면서 배운다는 뜻)’의 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조 회장은 “이런 커리큘럼에 대한산악연맹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인터뷰 내내 산이 갖고 있는 인성 교육 가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산에서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다고 힘줘 말했다.

“저희가 그동안은 ‘목표가 있는 산’에 의미와 비중을 많이 뒀습니다.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측면에서 산에 접근한 거죠. 하지만 이제는 시야를 더 넓혀야 할 것 같습니다. 목적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찾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겁니다.”

―너무 바쁘고 할 일도 많아 스트레스를 받겠습니다.

“받습니다. 그런데 관악산에 가서 소리 지르고 풀어 버립니다. 산에서 혼자 별별 이야기를 다 합니다. 용서할 것 있으면 용서하고, 잘못한 것 있으면 반성하고 옵니다. 산에서만 가능합니다.”

조좌진 회장은…

경희대 경영학과 학사 및 석사
벤처기업협회 부회장(2011∼2017)
2022 경복고 개교 100주년 네팔 푸캉(6694m)
원정대 단장
(주)디와이피엔에프 회장
지구촌나눔운동 이사
제 22대 대한산악연맹 회장


#에듀플러스#대한산악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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