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는 이 세상 마지막 쉼터… 잘 돌아가시면 보람을 느낍니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7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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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임종 돕는 ‘갈바리의원’
개원 60주년 맞는 아시아 최초 호스피스
“내일이면 너무 늦을 사람들 위해 기도”
“호스피스 의미, 많은 분이 알았으면”

한국에 처음 호스피스를 도입한 강릉 갈바리의원이 개원 60주년을 맞았다. 한국 호스피스의 역사는 한 수도회가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그들이다. 갈바리의원 제공

어느 해 크리스마스 즈음,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박희원 진료원장과 수녀들이 환자 방에 들러 깜짝 이벤트를 열었다. 갈바리의원 제공

번잡한 현대인의 삶에서 죽음은 무척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누구도 종착역을 피해갈 수는 없다.

타인의 임종을 좀 더 의미있고 아름답게 해주기 위해 기꺼이 기도하며 함께하는 수녀들이 있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1965년 3월 강원 강릉시 홍제동에 세운 갈바리의원 수녀들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 호스피스 기관으로 세워진 갈바리의원은 60년 동안 그 자리에서 명맥을 이어왔다.

갈바리의원은 지난달 22일 라이나전성기재단이 주는 ‘제 8회 라이나50+어워즈’의 ‘생명존중상’을 받았다. 시상식장에는 최순자 로사 원장수녀(66)를 비롯, 함께 일하는 수녀들과 자원봉사자까지 11명이 참석했다.

최 원장수녀는 “호스피스는 종합예술”이라며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온 모든 분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 지난달 27일 갈바리의원을 찾았다. 최 원장수녀와 박희원 진료원장(57), 김예랑 리오바 수녀(54)가 인터뷰에 응해줬다.

갈바리의원은 한국최초의 호스피스 기관으로서 지난 60년간 한국 호스피스의 표준을 만들어왔다. 지난달 22일 라이나전성기재단이 주는 생명존중상을 받고.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임종기 환자 통증 완화-영적 돌봄 제공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은 임종기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고 존엄하게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대신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을 지키면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가족이 돌아가신 분과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현재 전국에 124개소가 있는데, 강원도 4곳 중 영동 지역에는 갈바리의원이 유일하다.

―“호스피스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손길과 마음이 모여 한분의 임종을 지켜드린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각자 몫을 하면서 한 사람이 외롭지 않고 품위있게 임종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예술 같아요.(최 원장수녀)”

병원은 강릉의 한적한 주택가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1층은 외래, 2층은 입원 병동, 3층은 수녀들이 기거하는 수도원으로 사용된다. 낡고 좁은 건물이지만 60년대 건축물 치고는 참 단단하게 지었다는 인상을 준다.

병상은 10개(1인실 6병상, 2인실 4병상), 수녀 6명, 의사 2명, 간호사 11명 등 24명이 일한다. 자원봉사자 70여 명도 힘을 보탠다.

입원대상은 말기암 환자와 통증조절이 필요한 환자 등. 의사소견서가 필요하다. 이날 2층 병동에는 환자 6명이 입원해 있었다.
1965년 3월 개원을 앞두고 건축중인 갈바리 의원. 60년 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원 당시 호주에서 파견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 4명과 호주인 자원봉사 의사 1명, 직원 22명이 힘을 합쳐 개원했다. 갈바리의원 제공
1965년 3월 개원을 앞두고 건축중인 갈바리 의원. 60년 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원 당시 호주에서 파견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 4명과 호주인 자원봉사 의사 1명, 직원 22명이 힘을 합쳐 개원했다. 갈바리의원 제공

지난달 27일 입구에서 찍은 갈바리의원. 주택가 사이 터를 잡고 3층 건물이 올려져 있다. 강릉=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초창기 갈바리의원은 호주에서 파견 나온 수녀와 의사가 운영했다. 이들은 1965년 갈바리의원 건물이 완공되기 전부터 가가호호 방문해 진료하거나, 사비로 여관을 빌려 노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도 했다. 갈바리의원 제공
제대로된 의료시설이 없던 1960년대에 강릉일대에서 갈바리의원은 용한 병원으로 유명했다고. 갈바리의원 제공
제대로된 의료시설이 없던 1960년대에 강릉일대에서 갈바리의원은 용한 병원으로 유명했다고. 갈바리의원 제공


임종 맞는 자를 위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임종을 맞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일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도회다. 소속 수녀들은 호스피스와 병원 원목, 요양원 등에서 활동한다. 2003년 이 수도회 이름으로 낸 책 제목이 ‘죽이는 수녀들의 이야기’였다. 말기 환자의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영적 고통까지 보살핀다.

때로 병원에서 본인이나 자녀의 결혼식이 열린다. 다음은 박희원 원장의 회고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40대 엄마는 7세 아들까지 있었는데 결혼식을 못 했대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늘 웨딩드레스 입고 싶어했다’며 식을 올려주고 싶어했어요. 사흘 후로 날짜를 잡았는데 제가 보니 그때까지 못 버틸 것 같아서 ‘그냥 오늘 하자’고 우겼죠. 사회복지사가 번갯불에 콩 볶듯 턱시도랑 웨딩드레스 빌려오고 자원봉사자가 곱게 화장해 주고 간호사들이 다 달라붙어서 드레스 입히고….

그런데 거의 혼수 상태였던 신부가 힘을 내서 일어나 앉더군요. 원목 수녀님은 그 짧은 시간에 청첩장을 만들고 7살 아들이 병실마다 돌렸지요. 신부는 엷은 미소를 띠고 앉아서 식을 올리고는 그날 밤 돌아가셨어요. 제 기억에 웨딩 드레스를 채 못 벗고 가셨어요.”

호스피스에서는 혼자 떠나야 하는 환자와 떠나보내지 못하는 가족 사이에 애닲은 시간들이 흐른다.

“갑작스레 말기 암 통보를 받은 40대 후반 남자분이 있었어요. 부인하고 딸 둘, 네 식구가 1인실에서 한 달을 살았어요. 단칸방살이처럼. 20대였던 큰 딸이 ‘평생 했던 것보다 더 밀도 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한달이었다’고 하더군요.”

지난해 처음 시작한 하슬라국제예술제에서는 일부 공연을 갈바리의원 내에서 가져 환자와 보호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갈바리의원 제공
갈바리의원에는 7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힘을 보태고 있다. 자원봉사자 교육 장면. 갈바리의원 제공


“잘 돌아가시면 안도감”
―임종을 반복해서 지켜보면 어떤 느낌인가요.

“저는 의사니까 환자가 편안하도록 의료적으로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슬픔 같은 감정보다는 고통 없이 가셨으면 ‘휴, 잘 가셨구나’하고 안도감을 느낍니다.”(이하 박 진료원장)

―애써 관계를 맺은 분들이 돌아가시면 허망하지는 않은가요.

“그냥 잘 보내드리는 게 목표예요. ‘비행기의 연착륙’으로 표현을 하는데 한참 저공 비행하는 분도 계시고 쿵쿵쿵쿵 떨어지는 분도 있어요. 그분들이 어쨌거나 우당탕탕 안 하고 잘 착륙할 수 있게 조절하면서 살포시 내려놓아 연착륙하면 저는 보람을 느끼죠. 허망함보다는.”

―낮에 결혼식하고 밤에 돌아가신 그 엄마의 경우도?

“‘아이고 그날 하길 잘했다.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고. 그분들에게는 내일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일을 미루지 않으려 해요. 이분이 언제 가실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내일이면 늦는 거죠.”

―완화의료는 정말 고통을 다 잡아주나요.

“약에 반응하는 통증은 최대한 저희가 조절합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겪을 걸 다 겪고 죽어요. 못 먹는 거, 붓는 거, 스스로 용변 못보는 거, 입 마르는 거…. 이런 건 약으로 해결이 안 되거든요. 거기에 혼돈이 오는 거, 혼수상태에 빠지는 거, 힘이 완전히 빠지는 거, 몸이 너무 무거워지는 것들을 다 겪고 가시는 거죠.”

그런 가운데 품위 있는 죽음을 맞으려면 정말 종합예술이 필요할 듯하다.
병원 1층 안내 창구. 1960년대에 지은 건물은 낡고 좁지만 수녀님들의 바지런한 관리 덕분인지 아주 깔끔했따. 강릉=서영아 기자sya@donga.com


‘내일이면 너무 늦을’ 사람들과의 동행
박희원 진료원장은 1999년부터 5년 전 박종설 선생이 합류하기 전까지 의사로서 혼자 병원을 지켰다.

“호스피스라는 말이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객들이 쉬어가는 장소에서 기원했다고 해요. 인생이 순례라면 마지막 여관인 셈이죠. 온갖 치료받느라 힘들었던 몸을 누이고 쉬고 통증도 완화하고 마음도 좀 어루만지면서 좀 편안하게 마지막으로 쉬었다 떠나는 장소를 우리가 잘 제공했으면 좋겠다….”

최 원장수녀의 경우 고향이 강릉이어서 20대에 3년 정도 이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인연이 있다. 경기 포천, 서울 등지에서 호스피스 관련 일을 하다가 3년 전 원장수녀로 부임했다.

“전 그렇게 거룩하지 않아요. 입원한 분들이 편안하게, 남겨진 짧고 귀한 시간을 가족과 함께 의미있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운영자로서 어떻게 하면 병원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합니다.”

역할로는 경영을 맡았지만 일부러 매일 아침 당직 브리핑에 참석하고 첫 회진을 따라다닌다. 환자들과 접촉을 통해 자신의 일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갈바리의원도 만성적자다. 과거 번호표 받고 줄 설 정도로 몰려들던 외래 환자는 거의 사라졌고 단골환자들만 남았다. 워낙 새 병원들이 늘어난 탓이다.

“적자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후원자가 많아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재단 법인인 저희 수도회에서 도와주는 것도 있고요. 근근이 유지는 되지만 이익을 내본 적은 없어요.”

4월 소식지에 실린 후원자 명단을 보니 200여 명은 넘는다. 회사나 단체, 성당 단위 후원도 있고 고인의 이름으로 후원되는 경우도 있다.

―50주년에는 아산상 대상을 받았네요. 최근 하슬라 국제예술제 측이 병원에서 한 연주회가 호평을 받는 듯합니다.

“외부인 입에서 ‘갈바리의원’이란 단어를 들으니 뭉클했습니다. 저희는 ‘이게 내 삶’이라고 생각한 건데, 60년 동안 수도자가 호스피스 일을 해온 것에 대해 존경심을 표해 주시는구나. 우리는 이 안에서 하루하루 복닥거리고 살고 있지만 그것들이 쌓여 인연을 맺은 분들, 외부에서는 크게 봐주시고 있구나.(김예랑 리오바 수녀·사회복지사).”

지방의 독립 호스피스, 병상 10개 채워지는 경우 드물어
―앞으로 계획이랄까 소망이 있다면.

“많은 분이 호스피스에 대해 알았으면 합니다. 호스피스가 인생 마지막 장면에서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알고, 더 많은 분이 마지막 가는 길을 조금 더 품위 있게 존엄하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로는 좀더 많은 의료진이 함께 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박희원 선생님께 1년 안식년을 드리기로 하고 후임을 알아보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의사 선생님들이 호스피스에 관심 갖고 종사할 수 있는 문화나 환경이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최 원장수녀)

호스피스는 늘 ‘자리가 없다’는 통념에 대해 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서울은 그럴 수 있지만 강릉은 전혀 아닙니다. 저희 병상 10개인데 지금 여섯분밖에 안 계세요. 지난해 가동률 82%였고 병상이 꽉 차는 건 1년에 서너번 정도예요.”

―임종 시기에 맞춰 어딘가에 들어간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저희 병원에서 1년에 150명~180명 정도 돌아가시는데 그런 경험을 하신 분은 20명도 안 될거예요. 대기를 걸어도 대체로 일주일 안에 해결됩니다. 또 그런 경우 가정방문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요. 가정방문 환자가 입원을 하겠다면 저희는 0순위예요. 이미 우리 환자니까요. 소도시 독립형 호스피스에 대기자가 많아 입원을 못 하는 건 아니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경제논리와 거리가 먼 병원 운영
―가정방문은 어떻게 하나요?

“첫날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때로는 봉사자가 함께 가서 환자 상태, 가정환경, 살아온 이력을 파악을 하죠. 그 다음부터는 주로 간호사가 정기 방문해 증상을 살피고, 수녀님도 가끔 가서 영적 돌봄 프로그램을 합니다. 현재 10명 정도 환자가 있습니다. 저희 장점은 병동이 있으니까 가정 방문과 입원을 적절히 섞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환자는 가까운 곳에 사는 분들인가요.

“삼척이나 정선 속초까지 갑니다. 이 일대에 호스피스가 저희밖에 없으니 의뢰가 들어오면 다 가야죠. 삼척은 한 번 다녀오면 반나절이 걸려요. 경제논리로만 따지면 말이 안되죠(최 원장수녀).”

2년 전부터는 입원환자에 대한 무료간병을 시작했다. 입원비용은 월 50~60만 원(본인부담) 선에 불과하지만 간병비 부담에 입원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6개의 병상에 공동간병인을 배치해 돌본다.

현관 오른쪽 벽에 ‘아시아 최초 호스피스 기관’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박희원 진료원장(왼쪽)과 최순자 로사 수녀원장. 강릉=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절감된 의료비, 호스피스 등 웰다잉 지원 필요
입원형 호스피스는시설과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수가는 낮아 대형병원들조차 외면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법제화에 힘쓴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분에게 웰다잉을 위한 준비, 호스피스 전환 등의 시스템을 마련해 고통없고 품위있는 임종을 보장해드리자는 것.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말기암 환자의 최종 1년간 평균 의료비는 호스피스를 이용하지 않은 경우 약 9348만 원, 호스피스 이용환자는 약 4271만 원으로 두배 이상 차이가 났다. 국가지원도 덜 받은 만큼 일부라도 이를 호스피스 등에 돌려 지원해주자는 얘기다.

말기 환자와 가족에 구세주 역할
이날 1층에서 만난 환자 가족을 통해 갈바리의원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기암 환자인 50대 언니가 며칠 전 퇴원해 가정방문 호스피스를 받기 시작했는데, 휠체어 등 의료기구를 빌리러 온 참이라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주치의가 ‘더이상 치료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저희가 강릉에 산다니까 여기를 연결해 주셨어요. 호스피스에 가정 방문이 있다는 것도, 생각보다 폭넓은 케어를 해 주신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무척 감사하고, 위안을 얻고 있어요.

말기암 환자는 통증치료가 중요한데 집에까지 와서 통증을 잡아주시고,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다시 입원하면 되니까 얼마나 안심되는지 모릅니다. 그 전에는 아플 때마다 응급실 달려가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었거든요.

초고령시대는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이 많아지는(多死) 시대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통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잠시 짬을 낼 수 있는 병원 식구들이 현관 앞에 모였다. 앞줄 오른쪽부터 박희원 진료원장, 박종설 의사, 최순자 로사 원장수녀. 강릉=서영아 기자sya@donga.com

#갈바리의원#호스피스#임종기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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