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공무원 포상? 부실 과세 방지책부터 만들어야”[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2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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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전문 변호사 고성춘
근거 없는 징세에 납세자들 고통
세무공무원들은 세법 공부하고
법은 규제가 아닌 구제에 힘써야
자구책으로 납세자보호연대 발족

고성춘 변호사는 국세청이 채용한 첫 변호사였다. 2003년부터 만 5년간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으로 재직하며 법무와 조세소송을 지휘했다. 이 기간 조세불복사건 결재 책임자로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납세자들의 문제제기에 수많은 인용결정을 하기도 했다. ‘법의 정신은 규제가 아니라 구제에 있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인생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두 가지는 죽음과 세금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조세 전문 변호사’로 일해 온 고성춘 변호사(61)는 심지어 “국세청은 죽음의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한다. 한 사람이 평생 내야 할 세금을 ‘사후(死後)’ 정산하기 위해 국세청이 죽음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고 변호사는 4년 여 전 ‘이제는 중산층도 상속세를 걱정해야 한다’는 기사로 100세 카페 독자들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요즘 크게 분노하는 일이 잦아졌다. “너무 말이 안 되는 일이 세무행정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 고군분투하다가 기자에게도 전화를 해 왔는데, 들어 보니 이런 풍토가 확산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단 세무담당자가 자기 입맛대로 수 억, 수 십 억 원 세금을 매기고는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당하는 납세자로서는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18일 서울 송파구의 한 지식산업센터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근거 없이 과세… “억울하면 불복하세요”
지난해 2월, 50대 J씨는 2021년 사망한 모친의 양도소득세 35억 원을 대신 납부하라는 과세예고통지를 받았다.

인지장애(치매) 모친의 재산이 거의 없어 상속세 신고도 하지 않았던 그로서는 영문 모를 일이었다. 앞서 2016년 모친이 가지고 있던 건물이 경매로 120여억 원에 팔렸지만 빚잔치 끝에 남은 돈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고 변호사의 도움으로 과세 전 적부 심사를 청구했다. 국세기본법에 따라 납세액은 635만 원으로 감액 결정되며 상황은 일단락하는 듯 보였다. 국세기본법은 피상속인(사망자)의 체납세액은 상속인이 상속받은 범위 내에서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튿날, 관할 세무서는 상속재산가액을 당초 1770만 원에서 8억3200여 만 원으로 임의 증액하며 양도소득세 과세예고통지와 고지서를 동시 발부했다. 법정 후견인의 보수 청구 시 남은 금액을 근거로 삼았다. 양도소득세 과세예고통지 금액은 4억2000여 만 원, 고지세액은 8억3200여 만 원으로 금액이 달랐고, J 씨는 과세 전 적부 심사 기회를 박탈당했다.

세무서는 국세청장이 심사 청구에서 ‘재조사’ 결정을 내렸음에도 기한을 넘기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올해 3월 소송이 제기된 이후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 변호사는 “세무서가 근거 없는 답변을 하면 허위 공문서 작성 책임, 이실직고하면 부실 과세 책임을 져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의 법률사무소는 서울 송파구의 한 지식산업센터에 자리하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도 꾸준히 늘어 구글이 10만 이상 구독자를 확보한 채널에 보내주는 실버버튼을 받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수시로 체납독촉문자… 액수는 오락가락
이런 상황에서도 관할 세무서는 수시로 J 씨에게 체납 독촉 문자를 보냈는데, 독촉 금액은 4.3억 원에서 7.6억 원까지 매번 달랐고 계산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날 보낸 문자 3개의 금액이 모두 달랐다. 올 들어서는 청구 액수가 1억 원대로 줄어들기도 했다.

고 변호사는 “담당자가 왜 이런 금액을 과세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더군요. 이의 신청하면 ‘각하하겠다’는 문자부터 보내고, 항의하면 ‘실수였다’고 말하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심적 고통 때문인지, J씨는 이 무렵 신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받았다. ‘그저 죽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피폐해진 상태다. 고 변호사는 그의 사건일지를 ‘J씨 고통일지’라는 제목으로 정리해놓고 있었다.

그는 세무당국에 대해 “(공무원) 본인의 무지와 무책임에 당하는 백성은 피가 마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며 무책임한 행태를 비판했다.

근래에는 생방송으로만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은 바로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운영한다. 장비 욕심은 없어서 그냥 휴대전화를 활용한다고.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세무조사 청탁 의혹 사례
역시 50대인 S씨 사건은 관할 세무서의 조직적 움직임이 더 큰 의혹을 낳고 있다.

강남구 소재 중소 건축업체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경기도 분당에 거주하는 이 업체 대표의 별거 중인 부인 S 씨에게 세금 21억 여 원이 부과됐다. 조사를 진행한 세무서는 남편 회사나 부인 거주지 모두 관할이 아니었다.

남편 회사에는 세금 2.1억 원이 부과된 반면, 회사와 무관한 S씨에게는 양도세, 증여세, 가산세 명목으로 21억 원이 부과됐다. 남편은 S 씨 부동산을 담보로 한 26억 원 대출이 있어, S 씨 아파트가 경매로 팔리면 본인 빚도 탕감되는 상황. 실제로 이 아파트에 대한 경매 처분 통지도 이미 S 씨에게 날아왔다.

의혹의 핵심은 S 씨가 2001년 취득한 뉴질랜드 부동산을 3년 전 처분한 돈을 미국 영주권자 아들에게 ‘공동 투자’ 목적으로 보낸 것에 대한 증여세와 가산세가 부과되고 모든 재산이 압류된 과정이다.

이 모든 절차가 S 씨에게는 소명 기회조차 없이 남편과 시동생, 그리고 세무 당국 간의 상의만으로 진행되었다는 주장이다. 고 변호사가 세무조사 청탁을 의심하는 이유다. 여기에 20회가 넘는 정보 공개 청구 끝에 불복 청구를 하자 비로소 과세 근거 서류가 만들어진 정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2024년 서식으로 2023년 서류가 작성돼 있는 식입니다. 허위 공문서 작성 및 유착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세무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법 모르는 공무원이 한 일이 ‘국가가 한 일’ 돼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까.

“일선 과세 행정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국세청에서 지방 조세 행정 단위에 이르기까지 세금을 부과하는 구성원이 세법에 무지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세무 행정은 법리에 맞춰 해야지 자의적으로 추정해 해석하면 안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세무 조직의 생리다. 부실 과세 같은 문제가 생겨도 소속원들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 잘못을 쉬쉬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윗선의 엄한 관리도 세무 관련 조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퇴직이 임박한 고위급일수록 ‘전관 예우’를 기대해야 하니 직원들을 건드릴 수 없는 구조라는 것.

소소하지만 작지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개인주의가 만연해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문화마저 사라지면서 각자 ‘나는 이렇게 보련다’며 세금을 때리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이런 세무행정이 국민에게 친절할 리는 없다.

“국세청은 직원들이 알아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간부가 세금을 가장 모릅니다. 서로 건드리지도 않죠. 일개 ‘무식한’ 공무원이 되는 대로 일하는데 외형상으로는 ‘국가가 하는 일’이 돼 버리는 거예요.”

국세청 시절 그는 당시 큰 이슈가 됐던 ‘금지금’ 사건을 1년 반 정도 추적해 상당한 전모를 밝혀냈다. 하지만 공적은 당시 검찰이 다 가져가버렸다고 한다. 당시 순금 수출시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제도를 악용해 많은 업체가 부당이득을 챙겼다. 가념으로 간직하고 있는 당시 관련 업체들의 추적도를 보여주는 고성춘 변호사.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국민 생각한다면 포상보다 부실과세 방지 우선돼야
고 변호사가 이런 세무행정에 분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조세 전문변호사다. 2003년 국세청 개방직 1호로 특채돼 5년간 서울지방국세청 법무2과장으로 일하며 법무와 조세소송을 지휘했다.

특히 조세불복사건 결재 책임자로서 부당과세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납세자들 문제제기에 대해 수많은 인용결정을 내렸다. ‘책임과세’를 위해 ‘과세 행정 실명제’ 도입을 그가 제안했고 이용섭 당시 국세청장이 실행에 옮겼으나 이 국세청장이 퇴진하면서 흐지부지해졌다고 한다.

2007년 말 국세청 퇴직 후에는 6개월간 절에 틀어박혀 세법 관련 책 6권을 써냈다. 국세청에서 다뤘던 조세소송 등의 판례와 핵심 법리 등을 쟁점별로 총정리한 그의 책은 조세 분야에서 바이블로 평가받는다.

“실전에서 세법을 공부할 교재가 전혀 없더군요. 관행보다는 원칙, 주관보다는 법리가 우선시되는 과세 풍토가 되려면 세무 공무원들이 세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에 따르면 국세청에서 본 사례 중에는 가슴 아픈 것이 무척 많았다. 영세 사업자가 사업을 접더라도 부가세는 내야 하는데 이를 놓쳐서 살고 있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간 반찬가게 아주머니, 200만 원 짜리 무허가 판잣집을 아들에게 증여했다는 이유로 ‘사해(詐害) 행위’로 재판에 넘겨진 체납자 할머니 등. 법을 잘 모르고 힘없는 서민이 희생양이 되곤 했다.

“대법원은 조세체납처분의 목적은 국가적 강제에 의해 체납된 조세를 징수하는 것에 불과할 뿐 체납자의 재산권을 상실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재산권을 상실시키는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조세는 규제보다 구제의 마인드로 임해야 한다’가 지론이신데….

“자타불이(自他不二).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타인의 아픔이 내 아픔입니다. 법의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공직의 칼은 서민이 아니라 거악(巨惡)을 잡는 데 쓰여야죠.”
세무전문가와 납세자 상대로 한 제1기 조세실무 아카데미에서 강의 중인 고 변호사. 고성춘 변호사 제공
2016년 6월 1기를 시작한 조세실무 아카데미는 첫 강좌에 100명이 넘는 수강생이 몰렸다. 변호사 세무사가 절반, 일반인이 절반이었다고. 고성춘 변호사 제공


‘세수부족’ 논리… “주인보다 마름이 더 무섭다”
그의 전공은 ‘조세불복’이다. 유튜브를 통해 ‘세금과 인생’이란 주제로 구독자들과 만난다.

“과세 당국은 납세자가 항의하면 ‘그럼 불복하세요’라고 대꾸합니다. 하지만 변호사 비용과 시간, 공력을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소송해서 3심까지 가면 5년은 그냥 지나가죠. 과세 당국이 처음부터 과세를 잘하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 아닙니까.”

―요즘 세수 부족이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세무 공무원을 대상으로 연간 2000만 원 포상금 제도가 시행된다더군요.

“포상금 제도는 세금 도둑을 찾아내 세금을 받아내면 상을 주겠다는 취지로, 그대로만 되면 좋겠지요. 하지만 주인보다 마름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세수가 부족하니 세원을 제대로 포착해 세금 걷어 달라는 윗선 방침은 일선 세무 공무원들을 무리하게 수탈하는 자세로 만들 수 있지요.”

그는 거꾸로 ‘부실 과세 백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세청도 세무서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부실 과세 백서가 필요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 벌어지는데 2025년 대한민국 시민에게 닥친 현실이란 점이 두렵습니다.이런 경우가 J씨나 S씨 뿐이겠습니까.”

국세청 시절.  고성춘 변호사 제공
국세청 시절. 고성춘 변호사 제공


납세자보호연대를 ‘뒷배’ 삼아
―앞으로 계획은….

“승소한다 해도 보수를 받을 가능성도 없는 일인데 이제는 오기가 생겨서 하늘이 제게 주신 소명으로 여기게 됐습니다. 세상을 밝혀서 정의를 실현하라는 부처님 뜻인 것 같아요. 제가 아니면 그 누구도 못하는 일입니다.”

그가 자구책으로 생각해 낸 것은 ‘납세자보호연대’라는 단체다. 일개 변호사가 아니라 납세자들 힘을 ‘뒷배’ 삼아 보겠다는 것. 6월 초부터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회원모집을 시작해 3주 만에 300명 넘게 모였다.

“감사원에 공익 감사 청구를 하려면 300명 서명이 필요하거든요. 이번 두 사건을 풀기 위해 정보 공개 청구만 30회쯤 했습니다. 한번 청구하면 20일은 기다려야 하는 등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납세자들 고통에 책임질 사람들은 반드시 책임지게 하고 국가 배상도 받아낼 겁니다.”

고성춘 변호사는 틈틈이 자연을 찾아 촬영을 즐긴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그날그날 하늘 모습을 중계하곤 한다. 아차산에서 바라보는 일출. 고성춘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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