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속초시 동명동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등으로 이뤄진 ‘소호거리’를 운영하는 이상혁(39) 이승아(37) 씨는 두 살 터울의 남매다. 서울에서 태어나 학교를 마치고 나란히 금융회사에 취직했던 남매가 2015년 속초에 터를 잡고 ‘동명동 사람’이 된 데는 좌고우면하지 않는 ‘실행력’과 ‘둘의 힘’이라는 비결이 숨어있다.
“처음부터 창업을 염두에 두고 직장 생활을 했었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2011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영감을 얻었어요.”(승아 씨)
당시 이곳저곳을 여행하다 로마의 스테이 문화에 매료된 남매는 “이 낭만을 한국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유럽 여행을 다녀온 한국인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비전이었지만, 꿈을 실행하려는 남매의 노력은 남달랐다.
이후 남매는 월급을 아껴 모아 종잣돈 5000만 원을 모았고 이 돈으로 스테이 사업을 할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서울시 중구 회현동 일대가 눈에 들어왔지만 땅값이 너무 비쌌다. 지방 도시를 물색했다. 기준은 세 가지. 인지도가 높을 것, 관광지 근처일 것, 서울에서 2시간 이상 걸려야 할 것(왜냐하면 그래야 관광객들이 자고 갈 확률이 커지기 때문에).
엑셀 파일에 입력하며 기준에 맞는 입지를 탐색한 결과 제천과 단양, 포항, 통영 그리고 속초가 최종 물망에 올랐다. 직접 발품을 팔아 현장에 가본 뒤 설악산과 동해라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품은 속초가 자신들에게 가장 잘 맞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2015년 시외버스터미널 뒤 공동화가 시작된 후미진 골목에 꽂혀 단 10분 고민 끝에 ‘은광 여인숙’ 건물을 사들였다. 현재 ‘소호259’라는 이름을 가진 게스트하우스 1호점이었다.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뒤 소호거리. ‘라이프벨리’ 제공 “고장 난 TV와 냉장고로 주차 금지 간판을 해놓은, 오래된 여인숙 건물들이 양옆에 있는 한옥을 보니 옛 정취가 물씬 느껴졌어요. 옛날 할머니 집에 가는 골목이 떠오르는 이 분위기가 무척 좋았습니다.”
남매는 2017년에는 바로 옆 4층 건물도 사들여 ‘소호259’ 호스텔 2호점을 개점했다. 1층엔 카페를, 위층엔 숙박시설을 꾸렸다. ‘고구마쌀집’이라는 옛 쌀집도 ‘고구마쌀롱’이라는 컨시어지센터로 단장했다. ‘트리밸’ 이라는 회사 법인을 설립해 2022년에는 행정안전부가 지정하는 청년마을로 선정됐다. 그동안 서울과 양양을 오가는 고속도로가 뚫렸고 전국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 붐이 속초에도 이르렀다.
성격이 다른 두 남매는 역할분담이 분명했고 시너지를 냈다. 경영학과 학부와 국제관광대학원 석사 출신이고 침착한 성격인 오빠 상혁 씨는 기획과 운영,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무용학과 학부와 문화예술경영대학원을 나오고 적극적인 성격인 승아 씨는 실내장식 등에 예술 감각을 발휘하고 대외 활동을 주도했다. 평생을 함께 놀며 싸우며 자란 남매여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협업할 때 겪는 인간적 부대낌도 거의 없었다. 모든 성공, 성공한 일인자 뒤에는 합이 맞는 이인자가 있다는 죠슈아 울프 솅크의 ‘둘의 힘(반디)’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한 이상혁 대표. ‘라이프벨리’ 제공 2022년 이후 현재까지 청년마을 ‘라이프벨리’가 진행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300여 명의 청년들이 참여했다. 3년차인 지난해 8월 이틀 동안 열린 팝업스토어 축제 행사는 참가자들에게 속초의 자연 경관과 문화를 활용한 이색 여행 체험(트립), 속초 시민의 라이프 스타일 체험(라이프), 여행과 생활이라는 속초살이의 균형을 찾는 콘텐츠(밸런스) 등 3개의 프로그램이 제공됐다.
참가자 가운데는 남매의 성공 스토리를 본받아 지방에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려는 ‘제자’들이 적지 않게 나왔다. 하지만 성공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뭘까. 5월 24일 소호거리를 방문해 상혁 씨에게 물었다. 속초 시민인 그는 아내와 함께 일곱 살 된 딸 아들을 키우고 있다.
“지역에서 뭘 하겠다는 아이템보다는 그곳과 현지 주민들에게 스며들려는 각오와 노력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지역에 봉사도 하고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나 혼자 잘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승아 씨는 “사실 그게 우리도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부분”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상혁 씨는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면 용기를 가지고 실행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며 “다만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부터 차차 진행하는 게 좋다”고 했다.
소호거리 방문객들이 남긴 사진으로 만든 하트모양 장식물. 속초=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속초에 살기로 결정한 뒤 10년 동안의 많은 노력과 실행 그리고 결과가 지금까지 사는 동안 가장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운 경험”이라고 말하는 남매는 현재의 스테이 사업을 커피 티백 제조 및 유통, 관광객 짐 보관 및 운반 서비스 등으로 ‘관련 다각화’ 해 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속초를 대표하는 실향민문화축제와 설악문화제에서도 지역의 문화기획과 축제 운영을 담당하며, 속초의 정체성을 알리는 대표 로컬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며, 숙박·공간·식음료·네트워크 프로그램까지 아우르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승아 씨는 “속초시의 문화도시사업과도 긴밀히 연계하면서 청년 중심의 지속가능한 로컬 생태계 구축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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