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사범 2만명, 입소 재활시설은 1곳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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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범 막고 일상 복귀, 중독재활 필수… 단속-처벌 이후 출소해도 갈곳 막막
日, 90여곳에 2000명 입소해 생활… 美선 중독자 집중치료할 거처 제공
“입소형 치료공동체가 뿌리 내려야”

지난달 16일 경남 김해시 마약 중독 재활 시설 ‘리본하우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입소자들이 거실에 둘러앉아 A4 용지 크기 나무판 위에 정성스럽게 글을 새기고 있었다. 리본하우스에선 주 1회 서각 수업을 한다. 8년째 시설을 운영 중인 한부식 대표는 “단약 과정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리본하우스는 일본의 입소형 마약 중독자 재활공동체 ‘다르크(DARC)’를 본떠 만들었다. 한국 다르크는 2012년 처음 설립돼 한때 5곳이 운영됐다. 그러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민간의 자발적 노력만으론 한계가 명확했다. 경영난을 겪거나, 미신고 운영 논란에 휩싸이면서 하나둘씩 문을 닫고 시설명을 바꾼 리본하우스만 남았다.

● “마약 덫에서 벗어나도록 돕고파”

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마약류 사범은 2만3022명에 이른다. 대학가 마약 동아리가 적발될 만큼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졌지만, 재범을 막고 일상 복귀를 돕는 중독 재활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본하우스 입소자들은 단속이나 처벌이 재활로 이어지지 않으면 마약 퇴치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20대 중반 마약을 시작해 수차례 단약에 실패했던 안재현 씨(50)는 지난해 초 리본하우스에 입소한 뒤 조금이나마 마약 유혹에서 자유로워졌다. 안 씨는 “출소자 관리가 안 되면 다시 마약 소굴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전문병원에서 약물치료를 받지만, 퇴원 후엔 어떻게 마약을 멀리할지 막막하다. 입소 시설에 와서야 자신을 다잡게 됐다”고 했다.

리본하우스는 처지가 같은 중독자들이 회복 경험을 나누며 일상을 되찾는 데 주력한다. 주 4일은 자조 모임과 중독 예방교육 등 시간표대로 움직이지만, 나머지 사흘은 각자 계획대로 생활한다. 운동이나 취미 생활로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이모 씨(52)는 “혼자선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 것도 버거웠다. 입소 후 꾸준히 달리기를 했고 지난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10km를 완주했다”며 뿌듯해했다.

중년 나이에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진학해 상담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입소자도 있다. 다른 중독자들이 마약의 덫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서다. 안 씨는 “한 번 마약에 손을 대면 만성 질환처럼 평생 후유증이 남는다. 그 덫에 걸려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 정부-지자체, 입소형 재활 시설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중독 정도에 따라 다양한 재활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은 전국에 다르크 90개 이상이 운영 중이고, 이용자는 2000명 이상이다. 싱가포르의 마약 재활센터는 마약 사범들의 강제 입소와 강제 치료로 재범을 줄이는 데 효과를 내고 있다. 1963년 설립된 미국 뉴욕주의 사마리탄 데이톱 빌리지는 만성 중독자에게 거주 시설을 제공해 집중 치료를 받게 한다.

국내에선 입소형 재활 시설 운영에 정부의 관심이 적고 유해 시설이라는 편견 때문에 정착이 쉽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와 함께 전국 17곳에 방문형 중독재활 시설을 운영 중이지만 한계가 있다.

상당수는 재판 과정에서 선고 형량을 낮추기 위해 교육을 받는 마약 사범들이다. 출소나 퇴원 후 사례 관리는 미흡하다. 백형의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본인 의지만으로 마약을 끊는 건 쉽지 않다. 입소형 치료공동체가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중독 재활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약 중독#재활 시설#리본하우스#중독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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