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수술을 마친 한 아이가 한 달 만에 휠체어를 탄 채 교실로 돌아왔다. 아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친구들과 담임교사는 조용한 이벤트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교실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울려 퍼졌고, 아이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김창용 교사 제공 이 감동적인 장면은 경북 김천 농소초등학교 김창용 교사의 교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가 촬영해 올린 5분 남짓한 영상은 5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SNS와 언론을 통해 널리 퍼졌다. “이게 학교다”, “우정과 사랑을 배우던 교실을 잊고 있었다”는 누리꾼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 감동은 ‘연출’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이 장면은 우연이 아니었다. 평소 그와 아이들이 함께 만든 교실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아침에 학교 갈 때 ‘출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냥, 아이들과 놀러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북 김천 농소초등학교 6학년 교실. 오후 4시경, 기자와 화상으로 인터뷰 중이던 김 교사의 교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한 아이가 얼굴을 내밀자 그는 “인터뷰 중이야”라며 웃으며 설명했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나갔다. 인터뷰는 그렇게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김 교사의 교실은 하교 이후에도 아이들이 머무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하교 시간이 훌쩍 지난 교실에 아이가 스스럼없이 들어와 머무는 일. 농소초 6학년 교실에선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김창용 교사 제공 김 교사는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도 교실에 와 있어요. 그냥 쉬러 오는 거죠. 시원하고, 친구들도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웃으며 하루를 나눈다. “아이들이 있어야 제가 일을 더 잘하는 것 같아요.”
■ 입 다물고 여는 하루…아이만의 속도로
김 교사 교실의 하루는 ‘조용한 20분’으로 시작된다. 단 하나의 규칙은 “말하지 않기”.
아이들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며 각자의 아침을 맞는다.
“요즘 아이들은 쉴 틈이 없어요. 학교 끝나면 학원 가고, 주말도 바쁘고요.”
그는 아이들에게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을 주기 위해 침묵의 시간을 마련했다. 초등학생에겐 짧지 않은 20분.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하루를 연다.
그가 바라는 교실은 ‘편안한 공간’이다.
“아이들은 미성숙하니까 실수할 수 있어요. 그런 실수를 했을 때, 선생님은 화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해요.”
초임 시절엔 그도 화를 냈다. 아이들과 기 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화를 낼수록 관계는 멀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절대로 화내지 않고 한번 해보자”라고 마음먹은 뒤, 오히려 아이들은 더 잘 따르고, 문제 행동도 줄었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쓰면 저도 더 여유가 생기고, 아이들도 마음 놓고 지내는 거 같아요.” 그는 그렇게 매일 시도하고 있다.
■ “아이를 바꾸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것”
김창용 교사 제공 김 교사는 “아이를 억지로 바꾸려는 건 교사의 욕심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10년 넘게 사회와 가정에서 형성된 존재잖아요. 교사가 한 해 안에 바꾸겠다는 건 오만일 수도 있어요.” 김 교사는 문제 행동이 잦은 아이를 맡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그는 기다린다. 아이가 스스로 변화의 문을 열기를. 물론 그 기다림이 항상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모든 아이가 변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학년 올라가서 ‘선생님 반 다시 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그걸로 충분하죠.”
■ “아이에게 존중받고 싶다면, 수업을 잘해야”
김 교사는 “교사의 본질은 수업”이라고 단언한다.
“아이들은 알아요. 선생님이 준비했는지 아닌지. 결국 아이들에게 존중받고 싶다면, 수업을 잘해야 해요.”
아이들은 말로는 ‘놀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가장 좋아하는 건 잘 준비된 수업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김창용 교사 제공 김 교사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대학은 경영학과로 진학했다. 뒤늦게 마음을 다잡은 그는 수능을 다시 보고, 28세에 교대에 입학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이 행복해요.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반응하는 걸 보면 하루의 보람이 느껴지죠.”
올해로 교직 10년 차. 그는 “밥 먹으면서도 아이들과 농담을 나눌 정도로 정신연령이 비슷한 것 같다”며 웃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교실은 조금씩 더 밝아진다. 조용하던 아이가 손을 들고 발표하고, 낯가림 심하던 아이가 친구들 속에서 웃는다.
“아이들의 행복이 제일 중요해요. 그 기억 하나면, 선생으로서 제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 ■ “진짜 교실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교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지금, 그는 여전히 그 안에 머무른다. 교실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교실의 진짜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아요. 뉴스는 강한 이야기만 다루니까요. 그래서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교실이 정말 행복한 곳이구나’라는 댓글을 볼 때 다양한 교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계속하게 돼요.“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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