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반쯤 ‘우당탕탕’ 돌 굴러가는 소리가 나더니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렸어요. 그게 산이 무너지는 소리였던 거야.”
20일 오후 경기 가평군 조종면 신상3리 산사태 현장에서 만난 정모 씨(58)는 산사태로 집 앞 마당과 창고까지 쏟아져 내린 흙더미를 치우며 이렇게 말했다. 자택 인근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정 씨 부부는 기르던 소 피해는 없었지만 전기, 수도가 모두 끊겨 식사를 두 끼째 거르고 있다고 했다. 정 씨는 “산사태가 났다는 이웃의 연락에 문을 열자마자 바로 앞까지 물이 들이닥쳤다”며 “어두워서 빗물인 줄 알았는데 빛을 밝혀 보니 산사태로 내려온 시커먼 흙탕물이었다”고 전했다. 불과 50여 m 떨어진 곳에서 토사에 실려 떠내려가던 주민들이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굉음 같은 폭우 소리에 미처 듣지 못했다가 뒤늦게 생존자들에게 당시 상황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현장에서 축사 복구 작업을 하던 가평축협 직원은 “폭우 피해 복구를 많이 가봤지만 이렇게 참혹한 현장은 처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평군 조종면 일대 산사태 현장은 간밤에 쏟아진 폭우로 산비탈이 무너져 내리며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 모습이었다. 마을을 휩쓴 산사태는 주택을 형체도 없이 휩쓸어 버렸고, 곳곳에선 무너진 지붕 조각과 부서진 냉장고, 침구류 등이 나뒹굴었다. 도로는 끊겨서 철근이 드러나 있었고, 나무와 집 잔해가 뒤엉켜 일부 주택은 접근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시신 수습하는 소방대원들… 캠핑장선 일가족 매몰 20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전날 산사태로 실종된 70대 여성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왼쪽 사진). 경기 가평군 조종면에서 이날 오전 발생한 산사태로 다리가 끊겨 캠핑장이 고립된 모습. 이 캠핑장에선 일가족 3명이 매몰돼 40대 아버지가 숨졌고, 어머니와 자녀는 실종됐다. 산청=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가평=뉴스1
이날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주말 동안 쏟아진 폭우로 오후 7시 기준 경기 가평과 포천 등 북부 지역에서 2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다. 오전 4시 37분경 신상3리 마을에 산사태가 발생해 주택 세 채가 무너졌다. 주민 4명이 매몰됐고, 이 가운데 70대 여성 김모 씨가 숨졌다. 나머지 3명은 구조됐다. 사망한 김 씨는 마을에서 ‘밥 해주는 사람’으로 통했다고 한다. 농번기마다 정부의 급식 지원을 받아 일꾼 20여 명의 점심을 도맡아 준비했다. 지원은 점심까지였지만 저녁도 손수 차렸다고 한다. 이웃 허모 씨(77)는 “고인이 어제는 복날이라고 삼계탕을 내놨다. 인품도 좋고 늘 성실한 사람이었다.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씨가 머물던 파란 기와지붕의 집은 땅 위에 주저앉았다. 벽과 기둥이 사라져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마을 주민 이기덕 씨(65)는 “폭우에 걱정돼 새벽 2, 3시까지 마을을 돌아다니다 3시 반쯤에 겨우 누웠는데 ‘꽝’ 소리가 났다”며 “놀라서 집에서 나와 보니 옆집이 산사태로 무너져 있었다”고 했다.
이날 오전 11시 20분경 마일리의 한 캠핑장에선 산사태로 텐트 한 동이 무너져 일가족 3명이 매몰됐다. 40대 아버지는 대보리 대보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어머니와 자녀 한 명은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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