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박차고 나온 스타 의사 “저속노화 사회실험 할 겁니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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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 서울시 초대 건강총괄관

‘느리게 나이 들기’ 바람 일으키고
서울시 ‘건강 중심’ 시정 이끌게 돼
“더 많이 더 건강히… 나라 살리기”

“큰 스피커 필요”, 유튜브에 라디오도
연예인급 인기, 유명세 톡톡히 치러

정희원 서울시 초대 건강총괄관이 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있다. 불과 1시간 전 임명장을 받은 직후라 정 총괄관은 조금 어색해했다. 시청 본관 2층에 마련된 그의 사무실은 회의 테이블과 베란다까지 딸린 널찍한 공간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올 4월 경, ‘느리게 나이들기 전도사’로 각광받는 정희원(41) 전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6월 말로 병원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 게 왔구나’ 하면서도 ‘좀 빠른 것 아닌가’ 싶었다. 이어 6월 새 저서 ‘저속노화 마인드셋(웨일북스)’이 나오고 7월부터 그가 공중파 라디오 DJ가 됐다는 보도가 잇달았다.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 3년 반 만에 취재를 청했다.

마침 인터뷰 날로 잡은 1일은 그가 서울시 건강총괄관 임명장을 받는 날. 당초 동아일보 회의실로 정했던 인터뷰 장소를 급거 그의 새 사무실로 바꿨다. 이날 도하 신문에는 ‘저속노화 정희원 교수, 서울시 초대 건강총괄관 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서울시 통해 ‘저속노화 사회실험’
‘건강총괄관‘은 서울시가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건강 중심 시정을 펼치기 위해 처음 도입한 제도. 3급(국장급)인데, 2년 임기의 비상근직이다. 그는 주 2일 일한다.

―현란한 변신을 했네요.

“저속노화를 하루빨리 정책으로 연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 잘 먹고 잘 살도록, 그걸 위해 유튜브 찍고 책 내고 해왔습니다. 서울시 일도 그 일환입니다. 저속노화의 본질을 지키며 더 많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궁극 목표는 나라를 살리는 것입니다.”

서울시 채용 공고에 응모해 선발되는 형태를 취했다. 시급 5만 원 정도를 출근한 만큼만 받는다. 정 전 교수가 2년 전 서울시 월례회의 강사로 나서 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시 직원들에게 서울시민의 건강 현황, 선진국과의 비교 등을 강의한 것이 인연이 됐다.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건강한 서울은 개인 수준에서 ‘잘 먹고 잘 생활’한다고 이뤄지는 건 아니죠. 사회 구조적 문제나 시민의 정신건강, 이동, 주거 등 여러 면에서 건강한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서울은 거대한 압력솥 같습니다. 아이들의 먹거리부터 젊은 사람들의 이동문제나 스트레스, 노년층의 노쇠 예방, 돌봄 예방 등을 중앙 정부에서는 못 챙기는 현실이죠.

서울시는 정부보다 조직이 통합적이라 정책이 민첩하게 만들어지고 실천 가능합니다. 비교적 고령화율이 낮고 재정도 탄탄하죠. 일종의 사회실험인데, 일단 서울이 모범적인 정책을 치고 나가면 다른 데서 따라올 걸로 기대합니다.”

그는 크게는 도시 환경에서 건강을 기본값으로 만드는 일부터, 구체적인 예로는 소아·청소년의 당분과 초가공식품 섭취를 줄이기 위해 이런 식품은 매대에서 어린이 키높이보다 높게 배치한다거나, 비행기 타면 콜라나 주스 대신 물이나 ‘슈가 제로’ 음료를 선택지로 주는 것, 식당에서 추가요금을 내더라도 잡곡밥을 고를 수 있게 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말했다. 갈수록 기름지고 ‘단짠’ 음식으로 기울어징 식음료 운동장을 바로잡고 싶다고도 했다.

“당신은 스타가 될 거야”

정희원 총괄관은 그 자신도 업무가 과중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는 식단이 흐트러지고 밤마다 알코올이 당기는 등 가속노화의 길로 접어들더라며 자기돌봄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 본관 로비에서 한컷.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022년 4월 정 전 교수를 처음 인터뷰했었다. 그 몇 달 전 출간된 그의 첫 저서 ‘지속가능한 나이듦(두리반)’이 계기였다. 지금은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지만 당시만 해도 기성 미디어와의 첫 인터뷰였다.

38세 정 교수는 잠재력을 잔뜩 품은 줄기세포 같았다. 젊은데 겸손하고 유창한데 내용이 깊었다. 의학뿐 아니라 인문학과 시사 영역까지 해박했다. 원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배웅나온 그에게 “당신은 조만간 반드시 스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더니 그는 하하 웃으며 ‘책이나 좀 팔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 2쇄에 들어갔다고 연락이 왔다.

당시 아산병원 노년내과는 간호사 약사와도 연대해 시니어위원회를 만들고 이상적인 노인의학 돌봄 통합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런 활동이 100세 카페 성격과 꼭 맞아 그로부터 한달 간격으로 두 번 더 관련 기사를 썼다. 2회째는 노년내과 전속 간호사를 중심으로, 3회째는 원내 약사를 만나 노인들의 약 중복 문제를 취재했다. 그때마다 정 전 교수는 섭외는 물론이고 취재 내내 옆에 붙어 앉아 부족한 부분은 본인이 설명해줬다.

세상 사람들의 눈은 다 비슷한 법. 결국 그는 어마어마하게 ‘떴다’. 2023년 두 번째 저서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더 퀘스트)’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국사회에 저속노화 바람이 불었다. 같은 해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한빛라이프)’, 2024년 ‘저속노화 식사법(테이스트북스)’이 나왔다. 1년 전 쯤 유튜브(정희원의 저속노화) 채널도 시작했다,

신문과 방송, 유튜브, SNS에서 종횡무진하며 저속노화를 위한 식단과 운동, 수면, 정신건강 관리법 등을 제시했다.편의점 판매 상품에 얼굴이 나오기도 하고 여기저기 강연도 다녔다.

환자와 의사의 어긋남
이런 가운데 어김없이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몇몇 TV 프로그램 출연이 시초가 됐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외래 1년치 예약이 꽉꽉 차 버렸다.

“정상적인 진료가 불가능해졌어요. 제가 잘하는 일과 환자들이 원하는 게 어긋나 버렸죠. 제가 잘하는 일은 노쇠에 빠지고 약에 쩔어 기력 잃은 노인들을 약 조절과 섭생으로 건강하게 하는 건데, 진료실에는 건강염려증을 가진 상대적으로 건강한 분들이 줄을 잇게 된 거죠. 이분들은 제가 단번에 힐링 에너지를 넣어줄 것을 기대하면서 오시는데, 저는 ‘약 줄이고 운동하시라’, ‘단백질 섭취 많이 하시라’. 이런 얘기를 해주는 상황이었죠.”

―3년 전에는 응급실에 입원한 노쇠 환자들을 찾아가서 치료해줄 정도로 여유 있었는데…

“바로 그 응급실에 오는 노쇠로 꼬이고 꼬여 빈사상태가 된 노인들이나 약 정리가 필요한 분들은 아예 접근하지 못하게 돼 버렸어요. 대기만 1년 걸리니까요. 저도 진료에서 자기효능감을 느끼기 어렵게 됐고요. 10분에 봐야 할 환자가 5명 들어차 있는 상황이었죠.“

―병원에서 차단해주거나 하지는 않나요?

“그게 안 되더군요. 나중에는 너무 번아웃이 심해서 3분 진료를 했어요. 아무 의미 없는데 의사만 갈려나가는 거죠. 환자도 제 진료가 마음에 들 수 없었겠죠. 병원 입장에서는 적자나는 부서일 뿐이었고요. 이 3자가 서로 마음에 안들면 지속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 자신의 스피커가 필요했다”

‘정희원의 저속노화’ 유튜브의 한 장면.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방문이 많다고. 유튜브 캡처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늘면서 정보전달체계에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과거에는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제된 정보가 전달됐다면 뉴미디어는 알고리즘 따라 ‘많이 보면 그게 진리’가 돼 버려요. 제가 어디서 길게 얘기한 것 중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편집한 유튜브 쇼츠가 돌아다니고 그게 다시 인스타그램으로 옮겨져 수천 만 명이 봅니다.

사람들은 제가 ‘모든 즐거움을 거세하고 술은 한방울도 안 되며 렌틸콩만 퍼먹어야 한다’고 말한 걸로 아는 거죠. 강연에서나 진료실에서 이런 걸 물고 늘어지는 사람도 너무 많아요. 그래서 ‘내 스피커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채널 ‘정희원의 저속노화’는 1년 만에 구독자수 51.7만 명으로 급성장했다. 기자가 가끔 방문해보면 의정갈등 여파로 병원 사정이 극도로 열악할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운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짓 정보가 너무 많아요. 예컨대 ‘고지혈증 약 먹으면 뇌가 녹는다’ 식의 자극적인 영상이 올라오면 수백 만 명이 봅니다. 그러면 저는 하루 60명 진료를 보는 내내 ‘아닙니다. 고지혈증 약 드셔야 됩니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녹초가 되죠. 정말 필사적으로 유튜브를 키웠습니다. 좋은 정보를 심심하지만 올바르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야겠다…”

‘정희원의 라디오쉼표’ 스튜디오에서. 그는 음악방송 진행이 적성에 잘 맞는다며 즐거워했다. MBC라디오 제공
지난달 시작한 MBC라디오 ‘정희원의 라디오 쉼표’ 진행도 같은 맥락이다.

“이 방송을 실시간으로 20~30만 명 정도가 듣는답니다. 구독자 300만 넘는 유튜브 채널도 실시간 라이브는 5만 명쯤 듣거든요. 라디오로 제가 20~30만 명께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건 진짜 큰 스피커다, 내가 열심히만 하면 사람들한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일 오전 11시 방송이라 연배가 좀 있는 소상공인이나 택시기사, 제조업 종사자들이 주요 청취층이다. 음악 사이사이 다양한 방식으로 건강 상식을 전달한다.

예컨대 ‘파스를 너무 많이 붙이면 콩팥에 무리가 갈 수 있다’거나 ‘환기와 공기청정은 다른 것인데, 공기청정은 미세먼지를 걸러주지만 환기를 해야 공기중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등이 배출된다’는 식의 피부에 와닿는 정보가 넘쳐난다.

‘끈 떨어진 의사’?
―명망있는 상급병원 교수직에 대한 미련은?

“제가 아산병원 나올 때 많은 선배들이 ‘나가 봐라, 이제 강연도 안 들어오고, 끈 떨어지고 어쩌고’ 하면서 겁을 주셨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송길영 작가님이 쓴 ‘호명사회’ 개념에 크게 공감합니다. 앞으로는 자기 이름, 즉 개인 브랜드로 살아가는 시대라는 거죠. 제가 가진 역량 포트폴리오를 종합해서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겁니다.”

달리기는 그의 일상이다. 달리기를 하면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도 있다고. 언볼트 스튜디오 제공

―경제적인 부분은요.

“의사 때보다 지금이 나아요. 적자부서 의사여서 거의 기본급만 받았거든요. 유튜브 수입은 대부분 제작비로 들어가서 제가 빼오는 돈은 거의 없습니다. 제작사 친구들이 모두 어린데 정말 열심이예요. 제게 유튜브는 대국민 방송을 위한 스피커 역할로 충분해요. 수입은 그냥 제작비로 쓰라고 나눠줍니다. 집사람도 의사여서 경제적 어려움은 별로 없습니다.”

―서울시 건강총괄관은 언제까지?

“임기 2년이니까요. 많은 분들이 내년 지방선거 때를 지적하는데, 가봐야 알겠죠. 다만 벌써부터 여러 오해를 하시는데 저는 정책을 하고 싶을 뿐, 정치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당과도 상관없고요.”

―일하면서 실망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는 거죠. 일단은 최대한 배워볼 생각입니다. 노인 관련 사안은 통합적으로 일해야 할 게 많은데, 정부 부처는 장벽들이 너무 심해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서울시는 역할과 책임이 좀 섞여 있는 편이라 오히려 유연한 것같습니다. 실제로 서울시 정책들은 굉장히 빨리 구현되거든요. 긴급 돌봄 사업이나 병원 동행 서비스 등 선진적인 서비스도 되더라구요.”

개인브랜드로 살아가는 ‘호명사회’
―3년 전 제가 인터뷰했던 기사를 다시 보니까 지금 하고 있는 얘기가 다 들어 있더라고요.

“바로 그거예요.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그 핵심은 안 바뀌는 거죠. 저는 그걸 남은 생애에 걸쳐서 실현시키면 되는 거예요.”

―10년 뒤 자신의 모습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정치는 안 할 것 같고 연구는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더 큰 스케일로 연구하고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병원 나오면서 ‘저속노화연구소’라는 법인을 만들었는데,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를 모델로 해서 민간연구소로 키우고 싶습니다. 연구조직을 만들어 코호트 연구나 데이터 분석을 하고, 젊은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줄 수도 있죠. 이걸 누구의 입김도 없이 ‘내돈내산’으로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돈을 모으긴 모아야겠죠.”

―환자 진료는 계속하나요.

“고민입니다. 아직 한국에서 노인 의학적인 진료를 하면 무조건 적자거든요. 그렇다고 강남에서 하는 항노화클리닉 같은 건 아닌 것같고…제가 세웠던 목표 중에 ‘2030년까지 한국에서 환자 중심 통합진료 노인의학 모델이 정착되도록 노력한다’는 게 있었는데 여기저기 계속 두드리다가 지금은 빈사 상태가 됐어요. 다만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내과의사로서 환자를 보지 않으면 ‘감’을 잃게 된다며 매달 며칠이라도 어느 병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밤샘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의사의 활동무대가 꼭 진료실만은 아닐 수 있다. 병원 밖으로 뛰쳐나온 스타 의사.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실망과 좌절이 그에게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그의 목표는 여전하다. 세상을 더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요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병폐와 고난을 극복해나갈 길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격려와 기대를 보내줄 만하다.

시청 사무실 베란다에서. 그의 사무실 여기저기에는 색상도 선명한 서울시 마스코트들이 붙어 있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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