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인구 절벽과 지역 소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수십 년간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실패한 원인은 명백하다. ‘청년이 자립할 수 없는 사회 구조’라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N포 세대’라고 자조하는 청년들이 안정적인 경제 기반 위에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때 지역 정착과 결혼, 출산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직업 교육의 혁신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 교육은 모든 학생을 대학 입시라는 하나의 좁은 문으로 내몬다. 직업 교육은 차선책으로 취급받는다. 중학교 3학년 담임교사 시절 특성화고 교사가 현장실습의 우수성, 졸업 후 취업까지 연계되는 학교 시스템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학생 대부분은 대학 진학을 위해 일반고를 선택했다. 한국의 중등 직업교육 참여율은 2022년 기준 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3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직업계고의 위기는 졸업 후 산업 현장과 사회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2025년 한국교육개발원 발표에 따르면 직업계고 졸업자 6만3000여 명 중 취업자는 26%에 불과한 1만6600여 명으로 나타났다. 대학 진학자는 절반에 가까운 3만여 명이었다. 직업계고 졸업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지가 되려면 취업률을 높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먼저 직업교육진흥법 제정이 시급하다. 산학연 협력을 강화하고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교원의 역량을 높일 지원 사업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또 5년 단위의 직업계고 발전 계획을 의무화해야 한다. 산업 현장 수요를 적시에 반영해 실습 교육을 강화하고, 실습 장비를 현대화하며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개편하는 내용을 여기에 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직업교육을 국가의 백년대계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관련 정책의 운영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직업계고 졸업생에게 지역산업 기관과 연계한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망한 산업을 지역 단위로 적극 유치하고, 기존 향토 기업을 강소 기업으로 육성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 내 직업계고 졸업자를 채용하는 기업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직업계고 채용 우수기업 인증제나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고졸 채용 목표제도 강화하는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 ‘선(先)취업 후(後)학습’ 수준을 넘어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성장 경로를 확대하고,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등 신사업 분야에서 고교-대학-기업이 연계된 계약학과가 운영되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제 ‘청년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에서 ‘청년은 왜 희망을 갖지 않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 해답은 직업 교육에 대한 인식 변화와 이를 지원하는 국가 시스템의 혁신에 있다.
청년들이 꿈꾸는 미래는 다양한 진로가 보장되고, 개인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다. ‘고졸 전문가’가 학력의 벽을 넘어 안정적인 직장에서 자립하고, 지역에 뿌리내리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결혼과 출산이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 되고, 소멸하던 지역은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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