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심장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흉부외과는 생명과 직결된 큰 수술이 많아 전문의, 전공의, 간호사 등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제공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은 지난해 3명 있었던 심장혈관흉부외과 레지던트가 현재 한 명도 남지 않았다. 4년 차는 입대했고, 2년 차는 올 하반기 모집에서 수도권 병원으로 떠났다. 1년 차는 아예 전공을 안과로 바꿨다. 이 병원 김재범 흉부외과 교수는 “위 연차가 없으니 당장 내년에 신규 지원자가 들어올지 걱정”이라며 “현재 주축인 50대 교수들이 대거 은퇴하면 10년 후 대구 경북에선 심장 수술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상급종합병원 45%만 흉부외과 전공의 남아
25일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심장 수술을 시행하는 전국 수련병원 89곳 중 68곳(76.4%)은 흉부외과 레지던트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 갈등 전(61곳)보다 7곳이 늘어, 수련병원 4곳 중 3곳은 사실상 수련·교육 명맥이 끊긴 셈이다.
심장, 폐 등을 다루는 흉부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를 다루는 중요한 과다. 국내 주요 사망 원인인 심혈관 질환과 폐암 등을 치료하고 심장·폐 이식 수술도 담당한다. 하지만 근무 강도가 높고 의료소송 위험이 커 대표적인 기피과로 꼽힌다. 고령화로 인해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전문의 수는 감소하고 있어 ‘수술 절벽’이 우려되고 있다.
신규 전문의 수급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달 초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대거 돌아왔지만, 흉부외과는 46명 복귀에 그쳐 충원율이 낮았다. 의정 갈등 전인 지난해 2월 107명이 수련을 받았지만, 현재 68명(63.6%)만 남았다. 연차별로는 4년 차 14명, 3년 차 12명, 2년 차 22명, 1년 차 20명이다.
대형병원조차 흉부외과 수련 명맥이 끊길 위기다.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있는 곳은 21곳(44.7%)에 불과하다. 국립대병원 17곳(분원 포함) 중 9곳(52.9%)에만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수련 중이다. 12곳은 레지던트가 단 1명뿐이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 교수)은 “레지던트 1명인 병원은 야간이나 응급 수술 교육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 “향후 4년간 전문의 30∼40명씩 줄어”
지방은 더 심각하다. 대구·경북은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의정 갈등 전 10명에서 3명으로 급감했다. 부산·울산·경남은 8명에서 3명으로, 광주·전남은 3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강원, 충북, 제주는 의정 갈등 전에도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지방에서 수련받아야 현지 정착 가능성이 높은데, 79%가 수도권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4년 차 레지던트 1명만 남은 전남대병원 흉부외과 정인석 교수는 “7년간 전공의가 없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에 현 상황이 특별하진 않다”면서도 “수련과 교육이 무너지면 연구나 진료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조원철 강릉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교수 5명 중 1명이 최근 그만뒀고, 1명은 정년이 지났다. 영동 지역 심혈관 질환 거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인력 수급이 안 된다”고 했다.
향후 전문의 수는 더욱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흉부외과는 2022년부터 은퇴 전문의가 신규 전문의보다 많아 전문의 수가 순감하고 있다. 연간 20∼30명 수준이던 은퇴 전문의 수는 2026년 54명, 2027년 56명 등 향후 4년 동안 222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수련 중인 레지던트들이 모두 전문의를 취득한다고 가정해도, 매년 30∼40명씩 전문의가 줄어든다.
현장에선 흉부외과 붕괴를 막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 교수는 “대학병원 상황이 열악하니, 전문의를 취득해도 절반은 개원해서 하지정맥류 진료를 본다. 지방은 수술을 포기하고 외래 환자만 보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정의석 교수는 “수가 인상뿐 아니라 상급종합병원 평가 기준을 바꿔 흉부외과 레지던트를 확보한 병원에 가점을 주는 등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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