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학원가에 의과대학 준비반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7개 시도 교육감 중 14명은 선행학습을 위한 사교육을 규제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 교육과정을 앞서가는 사교육을 막아야 공교육 신뢰가 회복되고 사교육비가 줄어들며 가정 소득 차이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완화된다는 이유에서다. 사교육을 무조건 막으면 고액 과외 시장이 오히려 커지고 자녀 교육권과 학습 자율권이 침해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보수 성향 교육감도 3명 있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선행 사교육 규제에 대한 교육감 입장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매년 사교육비 통계가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공교육을 관장하는 전체 교육감의 사교육 규제 관련 의견이 조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감이 공석인 세종, 전북은 부교육감이 답변했다.
●“사교육 규제해야 공교육 살아”
‘선행 사교육 규제에 대한 교육감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진보성향 교육감 10명 및 보수성향 교육감 중 4명은 선행 사교육 규제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학교 중심의 교육환경으로 공교육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은 “선행 사교육은 학생 간 학습 격차를 심화시키며 학교 수업의 정상 운영을 방해하고 있다”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선행 사교육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도 “선행 사교육은 학교 수업 시간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못하게 하고, 교사의 정상적 수업을 방해하는 폐단이 있다”고 말했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은 “학교 수업에 대한 참여와 흥미도를 떨어뜨리고 학습 격차를 유발한다”고 했다.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선행 사교육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천범산 세종시교육감 권한대행은 “경제적 격차를 확대하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한다”, 정 서울시교육감은 “가정 소득에 따른 차이가 발생해 교육 격차를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사교육비를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은 “선행 사교육이 주도하는 사교육 시장의 꾸준한 확대는 지속적인 사교육비 지출 확대와 입시 경쟁 심화로 이어져 교육개혁 걸림돌”이라고 했다. 김광수 제주도교육감도 “자녀가 뒤처진다는 우려로 필요 이상의 지출을 감수하게 만들며 무리한 지출로 가계 경제에 부담을 주고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신중 검토’라고 밝힌 윤건영 충북도교육감과 임종식 경북도교육감은 “학생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선행 사교육을 규제해야 한다”며 영유아 대상의 선행 사교육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규제로 “고액 과외 커질 수 있어” 신중론도
사교육 규제 범위와 방법에 대해서는 교육감별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 사교육까지 적용하되 선행학습의 명확한 정의, 위반시 제재 사항, 예외 적용 사항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광주시교육감은 “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온라인 강의, 공부방, 해외 유학까지도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전남도교육감은 “학원 반발이 커지고 편법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발생하겠지만 극복해야 한다”며 “입시 정책이 바뀌어야 하지만 우선 선행 사교육 규제로라도 학생들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경기, 충북, 경북도교육감은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에 정부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규제에 의해 사교육이 지하화, 음성화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영어유치원 금지법으로 불리는 발의안에 대해 학부모들이 “고액 과외, 영어 유학이 더 성행할 것”이라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윤 충북도교육감은 “학생의 학습 선택권, 자율권 보장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예습과 선행학습 경계의 모호성으로 한계가 있다”, “사교육 시장의 문제 제기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찬성이라고 밝힌 강은희 대구시교육감도 “학생 수준이 다양하고 맞벌이 등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사교육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교육권, 자율성 침해가 우려된다”며 “선행학습 수요가 여전히 존재할 수 있고 사교육이 생존하기 위해 불법 고액 과외 등으로 음지화할 가능성이 높아 교육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은 올해 7월 이른바 ‘영어 유치원’ 등 유아 사교육 기관의 운영 시간과 레벨 테스트를 제한하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각에서는 교육과정을 넘어선 과도한 선행 위주의 사교육은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교육정상화법은 학교가 교육과정을 앞서는 내용을 가르치지 못하게 막을 뿐 사교육은 포함하지 않아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계속돼 왔다. 반면 사교육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 침해라는 반대 주장도 있다. 고 의원은 “유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 사이에서 선행 사교육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인됐다”며 “사교육 규제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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