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찬반 소음에 대화 못할 지경… 봄철 특수는커녕 손님 더 떨어져
“매일 尹탄핵선고 기일만 검색중”
주민-학부모들 불만도 갈수록 커져… 인근 학교 6곳 휴교-재량휴업 검토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인도를 점거한 탓에 주변 시민들은 통행에 불편을 겪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동네가 언제까지 이렇게 시끄러워야 하나요? 걷는데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편향된 헌재가 무슨 재판이냐”, “탄핵 각하” 등 확성기 소리가 집회 현장에서 울려 퍼졌다. 이를 듣던 주민 김가인 씨(48)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면서, 이날도 안국역 일대에는 전광판이 달린 방송 차량이 “탄핵을 멈추라”는 구호를 내보내는 등 시위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 상인은 “8일엔 헌재 인근에서 탄핵 촉구 집회도 열렸다”며 “찬반 양측이 자칫 충돌하다가 (주변 상인들에게) 피해가 생길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지속되는 탄핵 찬반 집회로 인해 헌재 인근 상인과 주민, 학부모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 “코로나 때보다 어려워” 안국동 상인들 울상
안국역과 경복궁역 인근 주민들은 매주 이어지는 집회와 교통 통제로 불편을 겪고 있다. 경복궁역 인근에 거주하는 조모 씨(27)는 “8일 혜화동에 갈 일이 있었는데, 안국역에서 열린 집회로 교통이 통제돼 결국 1시간 넘게 걸어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이모 씨(26)는 “안국역에서 주말마다 집회가 열려 외출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집에 있으면 소음 공해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헌재 인근의 한 상인은 “집회 날 경찰 차벽이 인근 도로를 둘러쌀 때면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며 “이대로 계속 가면 장사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봄철 특수를 기대했던 안국동 일대 상인들도 집회로 인해 매출 회복이 더뎌 근심이 커지고 있다. 주말인 9일에도 안국역에서 헌재까지 2분 남짓 걸어가는 동안 “탄핵 각하” 구호와 북소리, 1인 시위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안국역 6번 출구 인근에서 15년째 노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58)는 “헌재 앞 시위가 시작된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보다 장사가 더 어렵다”며 “하루 매출이 15만 원에서 2만 원으로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헌재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배모 씨(29)도 “외국인 손님이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정도였지만, 최근 한 달간은 외국인 손님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국역 인근 카페 직원 김모 씨(34)는 “매출이 90% 이상 줄어 매일 헌재 선고 기일만 검색해 보는 중”이라고 했다.
소음과 쓰레기 문제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크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김 씨는 “집회 발언이 하루 종일 이어진다”며 “소음 때문에 손님이 가격을 물어봐도 제대로 듣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배 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과격한 발언이 계속되는 집회 소음을 듣다 보면 정신적으로도 지친다”라고 했다. 이날도 한 집회 참가자가 지나가던 시민을 향해 “빨갱이 새X야. 당장 꺼져”라고 소리치며 욕설을 퍼부어 시민들이 놀라 발길을 돌리는 걸 볼 수 있었다.
헌재 맞은편에서 돈가스집을 운영하는 유모 씨(28)는 “가게 앞에 일회용 컵과 팻말 등이 자주 버려져 있는 것도 정말 곤란한 일”이라며 “쓰레기를 내놓는 장소도 차벽에 막혀 있어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 “헌재 인근 식당은 가게 내부에서조차 손님들끼리 윤 대통령 문제를 놓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탄핵심판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교육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헌재 인근에는 교동초, 재동초, 덕성여중·고 등 6개의 학교가 있다. 이들 학교는 선고 당일 휴교 또는 재량휴업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학교들에 안전대책 마련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헌재에서 100m 거리에 있는 재동초교 관계자는 “등·하굣길에 학생들이 시위대의 거친 발언을 듣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까 학부모와 학교 모두 우려하고 있다”며 “현재는 보호자가 동행하거나 교내 안전지킴이가 학생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고 관계자도 “교육청으로부터 선고 당일 학생 안전을 주의하라는 공문을 받았고, 재량휴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고일엔 안국동 일대 교통도 통제된다.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사고 우려가 커질 경우 안국역을 폐쇄하고, 종로3가역과 종각역 등의 혼잡 관리 대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종로구청은 헌재 경내에 있는 천연기념물 ‘서울 재동 백송’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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