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와 채널A가 선정한 ‘제13회 영예로운 제복상’ 수상자들이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상패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고 김우태 총경의 배우자 신정주 씨, 엄민규 소방장, 강동진 순경, 한덕수 준위, 윤영흠 소방위, 고 김영수 소방위의 아버지 김현중 씨. 뒷줄 왼쪽부터 김홍윤 경정, 김상범 경감, 고건웅 소방위, 유병률 경감, 정다정 소령, 이강하 경위.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온몸이 망가져도 실종자를 가족들에게 보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 컸습니다. 수많은 동료들이 저와 같은 마음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동료들을 대신해 받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3회 영예로운 제복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해군 특수전전단 해난구조전대(SSU) 구조관 한덕수 준위(50)는 지난해 11월 제주 앞바다에서 침몰한 135금성호 실종자를 수색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영예로운 제복상이 2012년 제정된 이래 SSU 대원이 대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매년 해양 침몰 사고 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전선에서 생명 구조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한 준위는 1995년 해군 부사관으로 임관한 뒤 30년 가까이 심해잠수사로 복무하며 각종 해상 사건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 그는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군의 기습 포격에도 마지막까지 조타실을 지켰던 한상국 중사 시신을 수습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2010년 천안함 침몰 당시 두 달간 잠수를 하며 선체 내부 탐색 임무를 맡아 시신들을 수습했다. 지난해 제주 135금성호 침몰 현장에서도 시신 수습 작업에 나섰다.
한 준위는 오랜 세월 잠수 작업을 반복한 탓에 고막이 손상돼 영구 이명(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판정을 받았다. 그는 올 7월부터는 후방에서 후배 구조관을 지원하는 부서로 옮길 예정이다. 그는 “후배 교육 등을 담당하며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이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영예로운 제복상을 받은 김홍윤 경정이 손자들로부터 뽀뽀를 받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제복 공무원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동아일보와 채널A가 2012년 제정했다. 13회째를 맞은 올해에는 대상 1명, 제복상 7명, 위민경찰관상 1명, 위민소방관상 2명, 위민해양경찰관상 1명 등 12명에게 시상했다.
“자부심 강했던 경찰” 순직 남편 영상에, 말없이 상패만 바라본 아내
보이지 않는 곳서 국민 위해 헌신… 경찰-소방관-군인 등 12명 수상 “KF-21 전력화 임무 성공적 마무리”… “국민 위한 일, 소방에 뼈 묻고 싶어” 수상자들 담담한 소감… 상금 기부도
“우리나라가 만든 전투기가 이제는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고 더 발전할 가능성도 보았다. 시험비행을 하는 내내 뭉클했다.”
공군 최초의 여성 개발시험비행 조종사인 공군 시험평가단 소속 정다정 소령(39)은 ‘제13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이 열린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자신의 임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 소령은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의 실전 배치를 1년 앞두고 무장 시험 등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 제복상을 수상한 정 소령은 “동료들이 밤낮 가림 없이 안전하게 KF-21을 전력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성공적으로 이 임무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가 개발 중인 다른 여러 항공기, 전투기에 대해서도 건설적인 피드백을 줘서 국방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상금은 사회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기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3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에서 김상범 경감이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훔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제복상을 받은 중부해양경찰청 인천해양경찰서 김상범 경감(51)은 마약 사범 중 마약을 끊으려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 상금을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시상식장에서 밝혔다.
김 경감은 지난해 8월 서울 반포한강공원 주변에서 잠복한 끝에 국내에 잠입한 캐나다 마약 판매 총책을 검거했고, 이후 122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의 마약을 압수했다. 김 경감은 “마약 사범 중 마약을 끊고 싶어 하는데 전과가 있다 보니 취업도 잘 안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 상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자격증 등을 따며 업무시간 외에도 끊임없이 공부한 수상자들도 있었다. 인천 중부소방서 소속 엄민규 소방장(43)은 원활한 구조 활동을 위해 소형선박 조종사, 초경량비행장치 조종자 등 20여 개의 자격증을 땄다.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것을 계기로 구조 활동에 대해 더 깊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9년엔 휴가 동안 멕시코에서 사비 1000만 원을 들여 동굴 재난 구조 노하우를 배우기도 했다.
경기 평택소방서 소속 고건웅 소방위(49)는 화학사고 대응능력 1급과 인명구조사 1급, 화재 대응능력 1급 등 인명 구조와 관련한 각종 자격증을 딴 데 이어 요즘에는 화재 감식 평가 기사 자격증을 위해 틈틈이 공부 중이다. 비번 날에도 로프 구조 동호회 활동을 하며 동료들과 함께 구조 훈련을 하는 등 현장 출동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고 소방위는 “공부를 해야 현장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며 “시민들의 안전은 물론이고 나와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민경찰관상을 수상한 고 김우태 총경(순직 당시 50세)의 아내 신정주 씨(53)는 “남편은 경찰관으로서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며 “남들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하는 열정 가득한 경찰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김 총경의 생전 사진들을 담은 영상이 스크린에 상영됐다. 이를 본 신 씨는 “영상을 통해 남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하다”며 한동안 말없이 남편의 상패를 들여다봤다.
김 총경이 2023년 7월 경북 문경경찰서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경북 예천, 봉화 등에는 역대급 폭우와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 김 총경은 한 달간 현장에서 피해 상황을 살피고 복구 작업을 지원했고 그해 9월 과로로 인한 급성심근경색으로 순직했다. 신 씨는 “자녀들에게 고민이 생기면 자료도 직접 찾아주는 등 가정적인 아빠였다”며 “아이들도 아빠의 수상 소식을 듣고선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고 밝혔다.
위민소방관상을 받은 강원 속초소방서 간성소방파출소 소속 고 김영수 소방위(순직 당시 38세)는 2004년 3월 강원 고성군 간성읍 광산리에서 산불 현장에 출동하던 중 소방차 전복 사고로 순직했다. 그의 여동생인 김정숙 씨(51)는 “오빠는 평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수상 소식이 기쁘면서도 오빠가 곁에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날 수상한 12명의 경찰, 소방관, 군인 중에선 업무를 수행하다 부상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서울 광진소방서 소속 윤영흠 소방위(52)는 도로에 쓰러진 시민을 구급차에 태우다 추돌사고를 당하는 등 큰 사고를 두 차례 당했다. 윤 소방위는 “두 번이나 큰 사고를 겪은 후 소방관 말고 다른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많이 받았다”며 “하지만 살면서 (소방관만큼) 남한테 도움 줄 수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싶어 소방에 뼈를 묻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윤 소방위는 현재도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위민해양경찰관상을 받은 동해해양경찰서 강릉파출소 소속의 강동진 순경(33)도 지난해 9월 발생한 9.77t급 어선 화재 현장에서 배와 배 사이에 발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인대가 손상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요즘도 종종 다친 부위에 통증을 느낀다는 강 순경은 “아프긴 했지만 다리가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니 구조를 이어갈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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