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앞에 서 있는 김소희 역무원. (출처=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찜통더위 속, 창원에서 올라온 다섯 살 손자와 함께 특별한 지하철을 타기 위해 2시간 넘게 플랫폼을 서성이던 할머니. 결국 눈앞에 나타난 건 ‘꿈씨테마열차’였고, 그 뒤에는 18년째 지하철을 지키는 역무원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다.
대전역 개찰구의 모습. (출처=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지난 8월 3일, 대전교통공사 오룡역 역무원 김소희 씨는 동료 김경민 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두 시간 넘게 손자와 특별 열차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할머니가 찾은 건 내부 전체가 대전 마스코트 ‘꿈씨패밀리’로 꾸며진 ‘꿈씨테마열차’. 운행 횟수가 적어 쉽게 만나기 힘들었지만, 손자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마음 하나로 판암역과 서대전네거리역을 오가며 두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결국 허탕이었다.
“내일은 꼭 타실 수 있어요”…1대뿐인 열차 약속
할머니를 처음 발견하고 도움을 준 김경민 역무원. (출처=김경민 역무원 제공)지친 발걸음을 돌리던 할머니 곁에 다가온 건 김경민 역무원. 그는 “아이랑 너무 고생하셨다”며 “내일은 꼭 타실 수 있도록 알아보겠다”고 위로했다. 추가 요금이 나오지 않도록 직접 역 바깥까지 안내하는 세심함도 보였다.
다음 날 새벽 5시, 혹시 또 허탕칠까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오룡역을 찾은 할머니를 맞이한 건 야간 근무 직후의 김소희 역무원이었다. 그는 시간표를 내밀며 “오늘은 꼭 타실 수 있을 거예요. 좋은 추억 만드세요”라고 약속했다.
8시 53분, 꿈의 열차가 도착하다
꿈씨테마열차를 이용 중인 대전 시민들. (출처=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마침내 오전 8시 53분, 플랫폼으로 ‘꿈씨테마열차’가 들어왔다. 벽에는 대형 고래가, 좌석과 천장에는 대전 곳곳의 풍경이 가득했다.
손자는 열차 안을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그림을 구경했고, 할머니는 “열차 전체가 꿈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통의 손편지와 손수 만든 식혜로 전한 감사
김소희 역무원이 할머니로부터 받은 손편지와 수제 식혜. (출처=김소희 역무원 제공)며칠 뒤, 김소희 역무원 앞으로 한 통의 손편지와 손수 만든 식혜가 도착했다. 할머니는 “추억, 경험, 체험, 모든 게 최고였다”며 “대전 토박이로서 자랑스럽다”고 감사의 마음을 적었다.
할머니가 써내려 간 손편지의 내용. (출처=김소희 역무원 제공)김소희 씨는 “큰일 한 건 아니다”라며 멋쩍게 웃었지만, ‘말 한마디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지하철 우대권을 요구하던 승객이 거절당하자 “총으로 쏴 죽여버린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며 막말을 퍼부었던 경험 때문이다.
그는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았다. 결국 하루를 결정짓는 것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라는 걸 알았다”고 회상했다.
18년차 역무원의 철학 “하루를 바꾸는 건 진심 한마디”
오룡역을 방문한 고객. 최모씨는 “이곳저곳 다녀봤지만 대전이 가장 살기 좋다”며 “대전 지하철은 쾌적하고 친절하다”고 칭찬했다. (출처=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2006년 입사해 18년째 대전 지하철을 지키는 김소희 씨는 매일 아침 개찰구 앞에서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무심히 지나치는 이도 있지만, 환하게 웃으며 답례하는 시민들 덕분에 오히려 힘을 얻는다.
올해 1월 오룡역으로 옮겨온 뒤에는 매일 아침마다 먼저 인사하는 20대 승객도 생겼다. 김소희 역무원은 “그런 분들을 만나면 나도 따라 웃게 된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오룡역을 찾은 60대 최모 씨는 “여러 곳에서 살아봤지만, 역무원들이 친절해 어른들이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항상 행복할 순 없지만 ‘따뜻한 진심이’ 있다면
역사 내 사무실에서 업무 중인 김소희 역무원. (출처=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그는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말 한마디가 크게 와닿는다”며 “나로 인해 하루가 조금이라도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정성껏 대하려 한다”고 말했다.
“진실되게 다가가고 싶어요. 결국 하루를 바꾸는 건 따뜻한 말 한마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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