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데뷔해 연기 외길 ‘못하는 배역 없는’ 국민배우 칭송…혈액암 투병중 별세, 향년 74세
배우 안성기가 5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향년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는 배우 안성기. 2026.1.5/뉴스1그마저 떠났다.
‘국민배우’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대한민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 1980년대 최고의 은막 스타였던 배우 안성기가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다섯 살 꼬마배우로 데뷔해 70년 가까이 연기 외길을 걸어온 그는 한국 영화사(史) 전체를 훑어봐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배우다. ‘얄개전’ ‘꼬방동네 사람들’ ‘바람불어 좋은 날’ ‘칠수와 만수’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 ‘투캅스’ ‘실미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스타’, ‘화려한 휴가’….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고인의 대표작만 나열해도 한국 영화가 걸어온 길을 되짚을 수 있다.
배우 안성기. 뉴스1많은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고인은 ‘후배 배우들의 영원한 선생님’으로도 불렸다. 영화 현장에선 물론 사석에서도 예의가 바르고 정도를 지켰다.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을 굳게 믿은 고인은 좋은 작품이면 노개런티 출연도 서슴지 않았다. 30년 넘게 국제구호기금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은 고인은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긴 했으나, 최근 몇 년 간 사실상 연기 활동을 멈춘 상태였다. 투병 생활 중에도 여러 영화제나 시상식 등에 모습을 드러내며 복귀 의지를 불태웠으나 끝내 우리 곁을 떠나갔다.
배우 안성기가 혈액암 투병 중에도 영화를 향한 식지 않은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투병 중 촬영한 ‘탄생’을 30일 선보인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민영화사 제공“1980년대 한창 시절엔 영화며, TV며, 광고(CF)며 정말 많이 쏟아졌죠. 보통은 그렇게 잘나갈 때 확 ‘땡기죠’. 주위에서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속삭이면 다들 흔들리기 쉬워요. 하지만 전 자제했어요. 왜냐하면 영화를 오래 하고 싶었고, 평생 할 거니까요.”(2006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 ‘천재소년’에서 ‘국민배우’로
1952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5세에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10년이 넘는 아역 생활 동안 출연한 영화만 70여 편. 일찍이 충무로판에서 고인은 ‘천재소년’이라 불렸다.
하지만 ‘얄개전’(1965년)을 끝으로 그는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길 택했다. 베트남에 진출할 생각으로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고인에게 배우의 길은 천명(天命)이었을까. 영화 ‘병사와 아가씨들’(1977년)으로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연기 인생 2막의 시작이었다.
제22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안성기고인의 화려한 무대는 1980년부터 시작됐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로 대종상 남우신인상을 받은 뒤 당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우뚝 섰다. 탄탄한 연기력과 폭넓은 인지도, 온화한 성격 그리고 “내 최고의 작품은 언제나 다음 작품”이라며 장르를 가리지 않는 도전정신은 그를 넘볼 수 없는 스타로 만들었다.
반공법에 연루된 아버지 탓에 해외에 나갈 수 없는 청년 ‘만수’를 연기한 ‘칠수와 만수’(1988년)에선 시대의 아픔을 담아냈다. 저주받은 걸작이란 재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영화 최초 컬트물 ‘개그맨’(1989년)에선 한국의 찰리 채플린을 마주한 듯했다. 청춘의 부유를 담은 ‘고래사냥’(1984년) 속 노숙인 민우와 ‘깊고 푸른 밤’(1985년)의 야망에 찬 백호빈, ‘투캅스’(1993년)에서 세파에 찌든 조 형사까지. 고인은 언제나 천변만화(千變萬化)했고, 그때마다 아름다웠다.
배우 안성기(사진)가 12일 개봉하는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 주연과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이 “마음에 울림을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엣나인필름 제공고인은 영화가 갖는 사회적 영향력과 가치를 믿는 배우이기도 했다. “영화로까지 표현되면, 그 사회는 거기까지 열려 있다”고 말해왔던 그는 시대정신을 담은 영화 출연에 적극적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1000만 영화인 ‘실미도’(2003년)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2007년), ‘아들의 이름으로’(2021년) 등이 대표적인 작품. ‘아들의 이름으로’는 출연료를 받지 않은 것은 물론 제작에 사비를 보탰다.
“당시 책임자들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이런 영화는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에 계속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에 출연하는 거죠.“
2019년 제9회 아름다운예술인상에서 인사말하는 배우 안성기. 2026.1.5/뉴스1영화에 대한 열정은 투병 중에도 꺼질 생각이 없었다.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종이꽃’(2020) ‘한산’(2022) 등에 출연하며 연기혼을 불살랐다.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이렇게 버텨 주는 게, 제가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여러 차례 복귀 의지를 드러냈다.
● “큰 별 졌다” 애도 물결
제24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남녀 주연상을 수상한 안성기(왼쪽)와 김지미.문화계 안팎에선 고인의 죽음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며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60년 넘게 활동하며 구설수 한 번 없었을 정도로 선한 인품을 가진 고인이었기에 지인들의 상실감은 더욱 컸다.
고인과 수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명세 감독, 배창호 감독, 이장호 감독, 심재명 명필름 대표 등은 “믿음이 쌓인 감독 영화는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할 정도로 의리가 있었다”며 그의 별세를 안타까워했다.
안성기 ‘브랜드 로레이 어워드’ 레전더리상 수상‘개그맨’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남자는 괴로워’ 등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명세 감독은 “지금까지 형과 작업할 때 한 번도 시나리오를 들고 만난 적이 없다”며 “당대 최고 스타와 소속사 없이 일대일로 만나 다음 작품을 결정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지나고 보니 행운이었다”며 조의를 표했다.
고인은 많은 연출자들에게 언제나 머리 속에 ‘섭외 1순위’로 떠오르는 배우였다고 한다. ‘꼬방동네 사람들’ 등 수많은 영화를 함께 찍었던 배창호 감독은 그런 그를 “카멜레온 같다”고 했다. 배 감독은 “뚜렷한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라기보다는 어떤 색도 입힐 수 있는 무채색의 배우”라며 “고뇌, 우수, 사랑과 같은 기본적인 특질을 갖고 있는가 하면, 그 밖의 모습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배우”라고 회상했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특별한 우정을 보여준 안성기(왼쪽)과 박중훈고인을 평생의 선배이자 지기로 여겼던 배우 박중훈도 2025년 10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안 선배님을 뵌 시간이 우리 아버지 뵌 시간보다 더 길어요. 아버지는 제가 30대 초반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안 선배님은 40년을 가까이서 뵀잖아요. ‘라디오 스타’나 ‘투캅스’ 같은 작품을 하나 더 찍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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