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경의선 숲길, 뉴욕 센트럴파크… 도시 리듬 바꾸는 조경의 힘

  • 동아일보

조경이 주는 일상 속 자연의 감각
회색빛 도시에 활기 불어 넣어
◇조경, 가까운 자연/전진형 지음/280쪽·2만2000원·21세기북스


“조경은 인간에게 자연을 돌려주는 일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에서 잃어버린 자연을 되찾게 하는 일이다. … 출근길의 그늘, 공원의 새소리, 산책로의 흙냄새, 계절마다 달라지는 색과 바람의 질감이 감각을 일깨운다. 사람은 그 안에서 위로를 얻고 도시는 다시 숨을 쉰다. … 일과 놀이의 틈, 자연과 인공의 사이, 예술과 과학의 접점. 조경은 그 경계에서 피어난다.”(‘프롤로그’에서)

복개됐다가 20년 전 복원된 서울 청계천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걷는다. 걷다 보면 ‘왜가리와 잉어, 족제비가 함께 사는 이 하천이 없었다면 도심에서의 일상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싶다.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인 저자는 “인공 하천일 뿐이라는 우려까지 온갖 논란이 쏟아졌지만 지금 청계천을 걸어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복원’이라는 더 큰 맥락 속에서 수용됐음을 알 수 있다”고 썼다. 남은 과제가 없진 않지만, 청계천 복원은 ‘삶의 질 중심 위주의 도시 만들기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전환점을 상징한다’는 얘기다.

도시와 조경의 관계를 다룬 교양서다. 저자는 “살기 좋은 도시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해 시민공원에 숨겨진 설계, 서울 경의선 숲길, 선유도 공원, 서울숲, 미국 뉴욕의 고가철로가 탈바꿈한 선형공원 ‘하이라인’, 센트럴파크 등을 통해 도시의 리듬을 바꾸는 조경의 힘을 담담한 인문학적 필치로 조명한다.

“서울 종묘의 은행나무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조선 중기인 1519년쯤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거대한 은행나무들이, 조선 왕조 수백 년의 격변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왔다. 매년 5월 종묘대제가 거행되는 날이면, 이 나무들 아래에서 과거와 같은 제례가 이어진다. 나무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연대기이며 나이테에 새겨진 시간의 기록이다.”

저자는 “시간을 품은 경관은 역사의 기록을 넘어 인간 문명의 증언”이라며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거울이며, 변화 속에서도 이어지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운다”고 강조했다.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를 자문해 본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만하다.

#조경#청계천#도시재생#자연복원#시민공원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