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 생활 - 부인기자 최은희 양기자는 다시 부인 기자(婦人記者)로 계신 최은희(崔恩喜)(23) 양을 방문하였습니다. 언제나 바쁜 직업이기 때문에 전화로 미리 간다는 통지를 하고 지난 9일 오후에 신문사로 양을 찾아가서 바쁜 시간을 한 시간 얻어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양은 지금부터 7년 전 1919년 봄에 시내 여자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 봄은 누구든지 조금도 앞일을 헤아리지 않고 뜨거운 피에 날뛰던 때입니다. 양은 학교의 몇 동지들과 더불어 만세를 부르러 나아갈 때에 창과 칼에 상하는 이를 구호코자 붕대와 고약을 지니고 학교를 나와 종로에 나와선 일어나는 불길에 만세삼창을 부르고 곧이어 잡혀가게 되어 무수한 고초를 받다가 일주일 후에 감옥으로 넘어가서 24일 구류를 받은 후에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온 후 학교에서 주는 졸업장을 억지로 받아 가지고 고향 연백(延白)으로 내려간 양은 다시 그곳에서도 운동을 쉬지 않아 역시 출판법 위반으로 해주(海州)감옥에서 여섯달 동안 예심에서 쓰라리고도 적적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 박행한 그의 반생, 천하에 외로운 몸이러는 동안에 아버님은 일흔셋이신 높은 춘추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어린 딸을 면회코저 다니시던 중 너무나 심려하신 결과 불행히도 불치의 병으로 병석에 누우시게 되었습니다. 6개월의 철창 생활을 벗어난 양은 2년의 집행유예를 받아 가지고 불이나케 아버님을 뵈러 왔으나 아버님은 다정한 이야기 한마디 하실 사이 없이 혼미한 주에서 양이 출감한지 사흘 만에 사랑하던 자녀를 남기시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황천길을 떠나시었습니다. 불행한 운명에 기구한 신세가 되어 버린 양은 집행유예의 몸이 어디로 갈 수도 없어 얼마 지난 후 수원으로 평양으로 안주로 물 위에 뜬 부평초 같이 이곳저곳에서 교편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원 생활이 때때로 취미있는 때도 있었으나 다시 더 배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동경에 건너가서 여자 대학에서 2년 동안 형설의 공을 쌓다가 여름 방학이 되어 돌아오자 하나이던 남동생이 급성폐렴으로 죽게 되어 그의 마음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아픈 인이 박히게 되었습니다. 설상에 가상으로 동경에 지진까지 일어나게 되어 다시 더 공부를 계속지 못하고 고양산천에서 꽃피는 아침 달지는 저녁에 오직 고약한 운명에 부딪치는 자기의 외로운 신세를 늙으신 어머님께 의탁하고 일년 동안을 책보는 것을 소일 삼아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 숙려 후에 입사 - 처음으로 사내 기자들 속에그러다가 작년 가을에 어떤 선생의 소개로 신문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양은 기왕부터 문학에 취미가 있었으며 지금 같은 그러한 생활을 한번 하여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 그 기별을 듣고 일주일 동안 깊이깊이 생각하여 본 후 기자가 되기로 승낙하였습니다. 처음 신문사에 들어갔을 때는 한번도 보지 못하던 이들이 늘어앉아 일하고 한편으로 쉬는 시간에 웃고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 언제나 혼자로서 또 처음되는 부인기자로서 항상 근신하는 것을 맘에 품고 바쁜 시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 여유없는 생활 - 가정 방문과 기사 쓰기에매일 아침이면 일찍이 일어나서 밥도 뜨는 듯 마는 듯 마치고는 동으로 서으로 아는 집 모르는 집으로 장안이 좁다고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리하여 추운 날이던지 더운 날이던지 한결 같이 집에 앉아 있는 사이 없이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사회상(社會相)을 대할 때마다 각별한 느낌을 얻게 됩니다. 또 이렇게 분주히 찾아 다닐 때 혹 어떤 곳에는 찾아가면 만날 사람이 없고 혹 어떤 곳에서는 사양하며 보기 좋은 거절을 당하여 그저 돌아설 때에 그 마음 가운데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게 됩니다. 그것으로만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또 다른 기사 재료를 구하러 가지 않으면 아니 될 바쁜 몸입니다.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녀서 신문사에 정오에 들어가서 단촉한 시간에 기사를 쓰노라면 이마에 땀이 흐르고 마음껏 조급하여 펜을 놀리는 것이 마치 기계 돌아가듯이 바삐바삐 돌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바쁜 기사를 마치고 3시쯤 나오면 또 이곳저곳으로 기사 할 일로 또 쉴 새 없이 바쁘게 다닙니다.
◇ 몸은 날로 허약 - 그래도 재미있는 직업이렇게 바쁜 생활이기 때문에 몸에는 큰 영향이 있어 건강에 많은 해를 받게 된답니다. 그 까닭은 제 시간대에 음식을 맞추어 먹지 못하고 이때저때 불규칙하게 먹게 되므로 자연히 몸이 쇠약하여집니다. 밤에는 여자 단체에서 모임이 있으면 집에 들어갔다가도 또다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 곳에 참석하여야 됩니다. 그런 여가에는 돌아다니는 몸임으로 옷은 잘 안 입더라도 정하게는 입어야 하겠으므로 집에 들어가면 바느질하기에 손톱만치도 쉴 여가가 없게 됩니다. 양은 현재 당주동(唐珠洞) 136번지에 혼자 객지 생활을 하고 있으며 어머님은 연백(延白)에서 형님과 함께 계시다는데 한식이 지나면 서울 올라오셔서 양과 함께 살림하실터이랍니다. 기자가 앞으로도 기자생활을 계속하실터입니까 하고 물은 즉 “네. 저도 기왕부터 취미르 가졌던 직업이므로 앞으로 될 수 있는데까지 열심히 이 직업에 종사하려고 합니다”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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