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가득한 현장. 그러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8월 22일, 북한 노동신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조선인민군 장병들이 귀국해 훈장을 받는 장면을 보도했다. 이어 전사자들의 초상 앞에서 국화를 바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김정은의 모습도 공개했다. 장소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였다. 먼 타국에서 희생된 젊은 군인들을 국가가 최대한 예우한다는 형식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망한 병사의 부모들이 자식들의 사진을 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북한이 공개한 영상에선 울음 소리가 ‘음소거’ 되었다. 평양= 노동신문 뉴스1
연단에 설치된 액자 앞을 줄을 지어 지나가면서 어머니들은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울음을 참지 못한다. 젊은 군인들과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아빠를 잃은 아이들의 우는 모습도 보인다. 북한 내부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북한 당국이 공개한 현장 영상에는 전우를 잃고 살아 돌아와 훈장을 받는 군인들과 유족들의 울음 소리가 없었다. 북한 선전 매체는 행사장의 현장음을 모두 지우고, 아나운서의 멘트와 음악으로 화면을 덮었다. 화면 속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표정만 볼 수 있을 뿐, 오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북한은 ‘침묵의 추모’를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눈물은 허용하지만, 통곡은 제어한 것이다.
北, 러시아 파병 지휘관에 국가표창…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귀국한 조선인민군 해외작전부대 주요지휘관에게 국가표창을 수여했다고 22일 보도했다. 표창장 수여에 앞서 생존 군인이 김정은에 안겨 울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 라운드형 추모의 벽과 생전의 사진
행사의 형식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액자 속 얼굴 사진이 차례로 놓이고, 정치 지도자가 국화를 헌화한 뒤 유족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번 행사의 무대에는 독특한 장치가 있었다. 전사자 초상들이 전시된 구조물이 직선이 아닌 원형으로 설치된 것이다. 화면에 담았을 때 중앙 집중도가 높아지고, 지도자를 중심에 세우는 효과가 강화된다.
희생자들의 증명사진은 정복에 흰색 배경으로 동일하다. 파병에 앞서 준비되었다는 의미다. 곡선의 구조물에 사진을 붙임으로써 시선이 중앙에 집중되는 효과가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전시된 사진의 형식은 주목할 만하다. 모두 정복을 입고 흰 배경 앞에서 촬영한 생전의 모습이다. 파병 직전, 국가가 공식적으로 촬영한 사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기록’이자 동시에 ‘죽음을 전제로 한 준비’였다.
우리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직후, 국방부는 장병들을 추모할 영정 사진이 충분치 않다는 문제에 직면했다. 그해 뒤늦게 국방부는 전군에 증명사진을 새로 찍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복을 입고 태극기와 부대기를 배경으로 세운 사진이었다. 미국이 중동전쟁 전사자를 기릴 때 성조기 배경의 사진을 사용한 방식을 참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병들 사이에서는 “미리 영정사진을 찍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확산됐고, 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살아 있는 자들에게서 ‘죽은 자의 사진’을 미리 뽑아내려는 발상 자체가 장병들의 불안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 준비된 죽음의 이미지, 산 자의 정치
군인의 희생을 예우하고 추모하는 일은 체제와 상관없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무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죽은 자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산 자의 권력을 결속하기 위한 것인지 말이다.
북한의 장면은 분명 후자에 가깝다. 김정은은 전사자의 초상 앞에서 눈물을 보였고, 유족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어린이를 끌어안고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제스처는 계산된 연출이었다. 지도자의 눈물이 클로즈업되고, 그 뒤에 침묵한 유족들이 배경처럼 서 있다. 죽은 자는 조용히 자리만 채우고, 특히 살아있는 지도자의 존재감만 부각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귀국한 조선인민군 해외작전부대 주요지휘관에게 국가표창을 수여했다고 22일 보도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유족들의 통곡은 선전 담당자들에게 소음(noise)일 수 있다. 화면을 흐트러뜨리는 요소는 지워지고, 대신 김정은의 눈물과 국가가 일괄적으로 촬영한 증명 사진만 남았다. 개별적이고 우발적인 흔적은 제거하고, 일관된 형식과 깔끔한 화면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곧 ‘죽음을 정리해 산 자의 정치에 봉사하는 방식’이다.
● 남는 질문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사진을 남기는가. 죽은 자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산 자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인가. 북한이 보여준 장면은 분명 후자다. 죽은 자의 사진은 원래 기억과 위로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권력의 손에 들어가면 산 자의 정치적 무기가 된다. 북한이 이번에 보여준 ‘소리 없는 추모’는 그 극단을 잘 보여준다. 울음소리를 지운 추모, 준비된 사진, 지도자의 눈물이 강조된 영상은 모두 ‘산 자의 이미지 정치’를 위한 연출이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