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제아무리 모두 갖춘 인생이라도 건전하게 교감하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동시대에 ‘한국판 장국영’이 한꺼번에 데뷔했다?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로 여심을 강타했던 가수 조정현(왼쪽)과 이규석. KBS 유튜브 캡처
처음에는 성격이나 살아온 궤적 등이 너무 달라 서로 먼 사람으로 느끼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급속하게 친해지는 인간관계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생각하지 못 한 부분에서 통하는 점을 발견해 동질감을 느껴 ‘찐친(진짜 친구)’이 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원조 꽃미남 가수’라고 하면, 예전 한 인물한 가요계 대선배들이 서운해 할까. ‘원조 아이돌’이라고 하면 지금의 아이돌이 한번 찾아라도 볼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그해, 만화를 찢고 나올 만큼 훤칠한 비주얼과 감미로운 가창력으로 소녀팬을 울리고 여심을 강타한 가수 조정현(61)과 이규석(62). 두 사람은 서로를 멀리서 지켜보던 숙성 과정을 거친 뒤 지금은 거의 매일 붙어 다니면서 노래하러 다닐 만큼 무르익은 관계다. 한 살 터울인데 굳이 따지면 이규석이 나이와 데뷔 시기로 선배다.
이규석은 1987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중앙대 밴드 ‘블루드래곤’ 멤버로 동상을 받았다. 청순한 외모가 주목을 받아 1988년 KBS 가요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 MC로 발탁됐다. 그러면서 싱어송라이터로 솔로 앨범을 준비했다. 그해 11월 내놓은 데뷔곡 ‘기차와 소나무’가 대히트를 쳤다. 어쿠스틱 감성의 잔잔한 포크송이 듣는 이들 가슴을 적셨다. 가을에 듣기 좋은 대표적인 노래로 아직도 첫손에 꼽힌다.
기차와 소나무
기차가 서질 않는 간이역에 키작은 소나무 하나 기차가 지날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남겨진 이야기만 뒹구는 역에 키작은 소나무 하나 낮은 귀를 열고서 살며시 턱을 고인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야기는 산이 되고 우리들에게 버려진 추억들은 나무 되어
기적 소리 없는 아침이면 마주하고 노랠 부르네 마주보고 노랠 부르네
1980년대 후반 가요계는 춘추전국시대였다. 조용필 전영록은 물론 이문세 민해경 최성수 이선희 박남정 소방차 주현미 김완선 등에 이어 ‘홀로된다는 것’의 변진섭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여기에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의 이승철이 밴드 부활에서 솔로로 나와 인기 몰이를 했다. 다양한 장르에서 전설과 청춘스타가 혼재했다. 이규석은 이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잔잔한 포크송 ‘기차와 소나무’로 가요계 춘추전국시대에서 이름을 알린 이규석. KBS 유튜브 캡쳐 반 년쯤 지난 1989년 6월 조정현이 파란을 일으키며 치고 들어왔다. 첫 앨범 타이틀곡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라는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팝발라드 멜로디가 기가 막히게 귀에 꽂혔다. 귀공자 같은 외모에 발라드 가수라니…. 여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남학생들은 장기자랑할 때 부르려고 그의 1집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테이프가 끊어져라, 늘어져라 반복해 듣고 가사를 외웠다.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너를 처음 만난 날 소리없이 밤새 눈은 내리고 끝도 없이 찾아드는 기다림 사랑의 시작이었어 길모퉁이에 서서 눈을 맞으며 너를 기다리다가 돌아서는 아쉬움에 그리움만 쌓여도 난 슬프지 않아
눈 내리고 외롭던 밤이 지나면 멀리서 들려오는 새벽 종소리 혼자만의 사랑은 슬퍼지는 거라 말하지 말아요 그대 향한 그리움은 나만의 것인데 외로움에 가슴 아파도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보고 있으면 누구든 푹 빠져 버린 조정현의 무대. 멜로디에 어울리는 감성이 뿜어내는 무대 흡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KBS 유튜브 캡처 당대 홍콩 슈퍼스타 장국영을 빼쏜 듯한 외모에 하릴없이 빠져 드는데, 경성고와 한양대 아이스하키 선수였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인기가 폭발했다. 운동 잘하고, 노래 잘하는 ‘한국의 장국영’이었으니.
1990년 2월부터 6월 초까지 KBS와 MBC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가 1위를 여섯 번 차지한 데 이어 같은 앨범 후속곡 ‘슬픈 바다’까지 히트하면서 그해 가요계는 ‘조정현’으로 마비됐다.
인연이 무섭다. 조정현이 데뷔 무대를 치른 ‘젊음의 행진’ MC가 이규석이었다. 이규석은 내심 놀라면서 지켜보다가 자신이 무척 초라하다고 느꼈다는데….
# 5만 원과 4만8000원
기자는 얼마 전 서울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LP 레코드 가게를 찾았다. 종로3가 큰길가에 있는 이 가게에 출시 30년 넘은 두 사람 음반이 있을까. 사장님에게 물으니 단번에 찾아서 내민다. 이규석 1집 앨범 가격은 5만 원. 조정현 1집 앨범은 4만8000원이다. 두 앨범 모두 찾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이규석 2집은 2만5000원인데 조정현 2집 앨범은 없다고 한다. 기자는 두 1집을 샀다. 두 사람을 인터뷰할 때 사인 받고 싶었다. 허탕 치지 않아 다행이다. 14일 조정현 이규석 두 사람을 만나자마자 음반들을 꺼냈다.
“1집, 잘 없는데 찾으셨네.”(이규석)
“제 1집은 너무 많이 돌아 다니나 봐요. 그래서 선배님 것보다 2000원 싼가? 하하. 사실 2집이 비쌀 거예요. 거의 없거든요. 50만 원에 사는 사람도 있다던데요.”(조정현)
분위기가 잡혔다. 당대 최고 청춘스타만 맡을 수 있었다는 ‘젊음의 행진’ MC가 왜 막 데뷔한 신인가수에게 놀랐을까. 왜 스스로가 초라해 보였을까.
14일 이규석(왼쪽) 조정현이 자신의 분신 같은 1집 LP 앨범에 사인을 한 뒤 들어 보이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강렬했던 발라더의 데뷔 무대
“전주를 듣는데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기차와 소나무’가 사랑을 받긴 했지만 조금 밋밋했어요. 나중에야 가치가 있다는 걸 알긴 했지만요. 정현 씨가 분위기 좋은 팝발라드를 부르는 거예요. 무조건 뜬다 싶었죠. 원래 제가 하고 싶은 장르였어요. 순간 제가 초라해지더라고요.”(이규석)
―잘 생겨서 더 그랬을까요. “데뷔했을 때 싱어송라이터라서 주목도 받았지만, ‘한국의 장국영’이라고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6개월 정도 지났을까요? 저보다 더 장국영 닮은 사림이 나온 거죠. 제가 봐도 정말 닮았더라고요. ‘이 사람 정말 뭐지?’ 그랬어요. 하하하.”(이규석)
피나는 연습 끝에 1989년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로 가요계를 휘몰아친 조정현. 간주 중에 감정이 더 폭발한다.KBS 유튜브 캡처
―조정현이 기억하는 조정현의 ‘첫 방’은요. “생생하게 나죠. 그때 PD께서 AR(반주와 노래 모두 녹음된 트랙)을 틀고 노래하라고 했어요. ‘첫 방(첫 방송)’이니까 위험하다고. 제가 안 한다고, 라이브로 하겠다고 했어요. 생으로 노래했어요.”
―MC였던 이규석 선배를 알고 있었을 텐데요. “‘기차와 소나무’가 나왔을 때 저는 정신이 없었어요. 매일 운동하고 연습실에 와서 8시간 노래 연습만 했거든요. 데뷔해서 선배님하고 마주쳤는데, 피부가 예술이었어요. 멀리서도 광이 나더라고요. 너무 예쁘게 생기고 노래도 잘하시는데 알고 보니 싱어송라이터에 연주도 하고 기타도 잘 쳐? 또 놀란 거죠.”
―외모도 비슷하고 인기도 있고, 금방 친해지지 않았나요. “정현 씨는 뭐랄까. 저하고는 태생이 다르다고 할까요. 하하하. 저는 전남 영광에서 올라와 자취하면서 밴드 생활을 하니 딱 봐도 ‘지하실’ ‘언더’ 느낌 나는 사람이었어요. 방송하면서는 동료로서 어울리기도 했지만 방송 끝나고는 정현 씨에게 다가가질 못 했어요. 부럽기도 했고요. 팝발라드를 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가.”(이규석)
“선배님처럼 곡을 쓸 줄 알았으면 더 좋았겠죠. 선배님은 순수하셨고, 저는 능글능글했으니까 분명 다른 면이 있었겠죠. 그래도 선배님하고 방송하면서 재밌는 추억도 많아요.”(조정현)
“맞아요. 운전?”(이규석)
“네. 규석 선배님하고 저하고 운전을 워낙 좋아해서 지방에 방송이나 행사가 있으면 서울에서 나란히 각자의 차로 출발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누가 먼저 도착하나 내기도 했어요.”(조정현)
친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서로 스케줄도 바빴고 마음 편치 않은 일도 있었다. 방황도 했다. 조정현은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2, 3집 활동을 제대로 못했다. 아까운 노래들이 묻혔다. 소속사에 유리한 ‘아주 불편한’ 계약 때문에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독립해 활동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당시 가요계 환경이 저하고는 안 맞았어요. 저는 불량한 사람을 싫어하거든요. 하대를 받는 것도 싫고요. 그런 문화가 만연해 있었어요. 나중에는 활동을 안 해 버렸죠.”(조정현)
이규석도 소속사와의 갈등, 매니저 잠적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마음고생을 오래 했다. 1992년 3집까지 내고 언더 무대나 미사리 카페에서 노래하다 2011년에서야 4집 음반을 냈다.
“ ‘기차와 소나무’가 워낙 강렬해서 나중에는 어떤 노래를 해도 묻히더라고요. 정체성이 뭘까, 혼란스러웠어요.”
아깝고 아쉬운 노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조정현에게는 3집 수록곡 ‘꿈이 아니길’이 그렇다. 힘들게 녹음했고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가는 노래다.
꿈이 아니길
바람이 불어와 내 맘 우울한 날엔 나 홀로 언덕에 올라 노을 붉게 물든 하늘 종이에 그리운 너의 모습 그려 바라보네 친구로 알았던 나 혼자 만의 생각 때로는 외롭겠지만 나를 사랑했던 너의 마음을 나는 알지 못했어 이제 넌 없는데
# 알고보니 ‘연예인 조정현’이 아니다
어느 순간 가까이 가고 싶었다. 나와는 조금 달라 보여 거리감을 느끼던 조정현의 진면목을 봤을 때였다.
“정현 씨는 저에게 오랫동안 ‘연예인’이었어요. 언젠가 저를 본인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했어요. 정현 씨 연습하는 것을 봤는데, 정말 열심히 하는 거예요. 감동을 받았아요. 정현 씨를 사람으로 다시 보게 된 계기에요.”(이규석)
“성대 결절 때문에 1년을 고생했는데, 그걸 이겨 내고 노래 부르는 것을 보셨나 봐요.”(조정현)
“충격을 먹었어요, 솔직히. 콘서트를 하는데 정현 씨 목 상태가 안 좋아서 고음 부분에서는 객석으로 마이크를 돌릴 정도였거든. 회복이 될까 걱정했는데 이겨 내더라고요. 지금은 예전보다 더 예쁜 색깔의 목소리가 나와요. 입체감이 느껴진다고 할까요.”(이규석)
“선배님이 저하고 음악 얘기는 자주 안 했는데, 그날 이후 제 음악을 공감해 주고 칭찬해 주셨어요. 속으로 이제야 선배님과 인생 친구가 됐구나 싶었죠.”
이규석은 환갑의 나이에도 여전히 귀공자다.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규석 제공 마음이 통하니 거칠 게 없었다. 말이 없고, 계산 빠르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음악만 생각하며 살아온 이규석을 조정현은 자주 잡아 끈다. 진짜 무대가 있는 곳으로. 펼치지 못한 이규석의 능력이 아깝다.
“선배가 조금만 나쁜 남자였으면 가요계 쓸어버렸을 수도 있었어요. 미국 싱어송라이터 레니 크래비츠처럼 말이죠.”(조정현)
“정현 씨가 제 길을 터 주고, 챙겨 주고, 멍석을 깔아 주고 있어요.”(이규석)
밑어붙이는 후배, 그런 후배를 선배는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보고 있자니 환갑이 넘었는데도 두 사람 외모가 방부제 뿌린 것 같다. 정말 동안(童顔)이다. 헤어스타일도 그대로다. 몸도 아이돌처럼 슬림하다. 산전수전 다 거쳤는데도 세월이 비켜간 게 맞다.
―장국영 닮은 두 분 헤어스타일 따라하려고 학생들이 별별 시도를 다 했지만 실패했다. ‘무스발’이 대단했다. “아버지가 30대부터 대머리였는데 기적적으로 제 머리는 그대로에요. ‘유전 단절’에 감사하죠. 행운입니다. 하하하. 그래도 정현 씨 스타일은 못 따라갈 거예요.”(이규석)
“제가 머리숱도 많지만, 그때 ‘아쿠아 OO’이라는 스프레이가 있었어요. 드라이하고 이걸 뿌린 다음 살짝 드라이를 해 주면 세운 머리카락이 굳어요. 태풍이 몰아쳐도 끄덕 없었습니다. 하하.”(조정현)
‘기차와 소나무’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슬픈 바다’의 재해석 버전을 사람들이 기다리게 만들고 싶다. 주목 받지 못한 곡들도 ‘역주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규석은 지난해 후배가 준 노래를 발표하면서 더 흥이 났다. ‘내 삶은 아직 진행 중’이라는 곡이다. 포크와 블루스 풍인데 가사가 이렇다.
내 삶은 아직 진행 중
뻔하게 살기 싫었어 세상에 물들기 싫어 철없다 욕하지마 난 다르고 싶어 돈보단 가슴 뜨거운 우정을 지키고 싶어 바보 같다 말하지마 난 다르고 싶어 모든 걸 걸고 사랑할 사람도 아직 필요해 가슴이 식지 않았어 내 삶은 아직 진행중 나이는 잊고 살잖아
정작 이규석 본인은 몰랐는데 곡을 쓴 후배가 ‘이규석’ 같다며 썼단다. 이규석은 “주변 사람들도 가사를 읽고 제 얘기한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 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아니고, 세상을 잘 알아 앞서가는 사람도 아니지만, 뻔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구나.’ 아직 열정 가득한 내 정체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줬다고 본다”고 했다.
무대를 향한 갈증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서 지나간 꺾인 꿈을 기억해 봐야 하지 않을까. 꺾인 꿈이 비슷하다면 다시 같이 ‘젊음의 행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음악을 제일 좋아했을 때가 대학 다닐 때였어요. 이후 꿈이 꺾이지 않았나 싶어요. 데뷔 이후로는 노래하는 게 직업이 되고, 일이니까…. 꿈, 있죠. 영화 ‘헤어질 결심’ OST ‘안개’를 부르신 정훈희 선배 있잖아요. 아이유가 첫 소절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죠. 정현 씨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도입부를 듣고 느꼈던 그런 감동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까. 정현 씨하고 둘이 같이 하면 승부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이규석)
“꺾인 꿈? 있었어요. 선배님처럼 저도 역시 노래를 취미처럼 하는 게 꿈이었죠.”(조정현)
꿈을 이어 본다면 조정현은 대중가요를 접하는 문화가 복원됐으면 한다. 추억의 가수들이 인생 노래를 전부 부르고 감성을 발산할 수 있는 무대나 라이브 클럽이 많아졌으면 한다. 돈벌이가 늘었으면은 아니다. 한두 자리 객석이어도 좋다. 조정현은 “데뷔했을 때 감성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것 같다. ‘조정현’을 기억하면서 그때 낭만으로 돌아가고 싶은 팬들이 분명 계실 텐데,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많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감미롭던 목소리에 입체감을 입혀 곡을 더 풍부하게 소화하는 조정현. 조정현 제공 “취미처럼 노래하고 싶은데요. 음악 좋아하는 분들이 다양한 장르에 귀 열고 눈 감고 ‘들을 수 있는’ 곳이 많았으면 해요. 그런 라이브 클럽이 다 없어졌어요. 외국에 가 보면 라이브 클럽에서 나오는 생음악을 거리에서 늘 들을 수 있잖아요. 팝송은 전부 클럽에서 시작해 인기를 얻거든요. K팝이 발전했는데, 정작 우리 대중가수들 노래가 라이브 클럽에서 들리지 않아요.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한국 대중음악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시절을 추억해 보세요. 길거리에도 음악이 넘쳤고, 음악을 들으러 클럽을 찾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술 한잔하고 본인들이 노래할 수 있는 곳만 늘어났어요. K팝의 근본인 대중가요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클럽이 많다면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 외국 팬이 더 많이 한국을 찾을지도 모르죠.”(조정현)
어디서든 노래하고 싶다. 객석에 한 사람이라도 앉아 있다면. 조정현은 팬들이 눈 감고 자기 노래를 들어 줬던 낭만이 그립다. KBS 유튜브 캡처
# 먼저 ‘우리’를 검색해 보세요
환경 탓하면 뭐 할까. 초라하지만 우리가 노래를 여전히 부르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크겠다 싶어 둘은 무대의 크고 작음을 신경 쓰지 않고 듀엣으로 다니기로 했다. 이규석은 담배도 끊었다. 조정현은 체질적으로 술을 못한다. 다시 ‘젊음의 행진’ 출발점에 건강하게 서 있다.
―익숙한 듀엣 실루엣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맞다. 선배님, 왬(Wham!) 스타일이 맞을 것 같아요. 제가 조지 마이클을 좋아하잖아요. 앤드류 리즐리가 있던 왬이요.”(조정현)
“나도 조지 마이클을 무지 좋아했잖아요. 그의 노래 ‘키싱 어 풀(Kiss a Fool)’을 피아노 치면서 부른 적도 있어요. 라디오 DJ 할 때 어느 팬이 제가 부른 ‘키싱 어 풀’을 들으시고 영어로 새 일범 냈냐고 물어봤어요.”(이규석)
인생은 60부터. 나이를 잊은 원조 귀공자들이 평생 젊은의 행진을 하려 한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둘이 주축이 돼 다음 달 8일부터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한다. 첫 콘서트는 3월 8일 오후 6시 서울 관악아트홀이다. 여행스케치 등이 공연한다. 둘의 감성을 잘 아는 50~70대를 위한 무대다. 컨셉트는 추억의 시간 여행.
20, 30대 분들이 찾아오면 더 영광이겠다. 그 세대에게 둘의 ‘걸작’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곡이다. 노래방에서 한번 흥얼거렸을 법도 하지만(40대 후반인 기자는 노래방에 가면 무조건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를 부른다) 가수가 누군지는 잘 모를 것이다.
“어릴 때 스승이나 다름없는 김수철 선배님의 ‘일곱색깔 무지개’에 꽂혀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20, 30대 분들이 제 노래로 위안을 받고 서로 소통하면 좋겠어요. 더 어린 분들이 제 노래를 듣고 음악을 시작했다고 하면 정말 보람 있을 것 같네요.”(조정현)
“정현 씨 20, 30대가 진짜 많이 오시면 어떻게 하려고요?”(이규석)
“한 번은 우리 둘이 무대에 섰는데 대략 봐도 20대 분들이 객석을 꽉 채웠잖아요. 그 분들도 우리를 모르고, 저희도 20대 스타일을 잘 몰라서 순간 너무 긴장했죠. 그래서 선배님한테 ‘제가 먼저 노래할 테니까 긴장하지 마시라’고 했죠. 노래를 부르는데 저도 모르게 달달 떨었어요. 하하하. 다행히 반응은 좋았어요.”(조정현)
“두려웠는데 정현 씨가 분위기를 잘 풀어 줬어요. 정현 씨가 여유가 있었거든요. 제가 무대에 올라서 관객에게 이렇게 말한 것 같아요. ‘여러분은 저를 잘 모르실 텐데 여러분 부모님은 잘 아실 거예요’ 하하하.”(이규석)
확실하게 의기투합하는 분위기다.
“아, 그럼 선배님이 하셨 듯 젊은 팬들에게는 부모님 얘기를 먼저 해보자고요. 그러면 다들 휴대전화로 우리를 검색해 볼 거잖아요. 하하하. ‘기차와 소나무와 저의 아픔까지 사랑해 줄 것’ 같은데요.”(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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