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음악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평론가인 팀 그리빙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스타워즈 음악을 만든 존 윌리엄스(1932~)를 두고 “영화음악을 고상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He elevated film music to a high art form)라는 평가를 내린다. 음표 두 개로도 상어가 다가오는 위협을 표현해내고(죠스), 대규모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악의 제국의 압도성을 표현한(스타워즈) 거장에 보내는 극찬이다.
그런데 막상 그리빙과 만난 윌리엄스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다. “저 영화음악 별로 안 좋아해요” 이렇게도 덧붙인다. “영화음악이 좋다면, 그건 향수 어린 기억 때문일 겁니다.” 영화를 재밌게 봤으니 음악도 좋게 들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영국 매체 가디언이 소개한 일화다. 그리빙은 윌리엄스의 전기(John Williams: A Composer’s Life) 집필하기 위해 그를 인터뷰했다.
윌리엄스는 음악이 영화의 감정과 분위기를 고조 시킨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콘서트에서 연주되는 클래식 넘버들과는 달리 따로 떼어놓고 감상할 만한 가치는 없다고 단언한다. 이래서야 윌리엄스 이전까지 단순히 영상을 보조하는 기능음에 불과하던 영화음악을 격상시켰다는 평가가 머쓱해진다.
존 윌리엄스 전기를 쓴 팀 그리빙(왼쪽)과 책 표지 속 윌리엄스 모습. 더레거시오브존윌리엄스 캡처
윌리엄스는 클래식 작곡가를 지망했지만, 젊은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영화사 오케스트라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영화계로 흘러들어갔다. 영화음악은 생계를 고려한 선택이다. 영화음악을 하면서도 더 좋아하는 건 교향곡과 협주곡 클래식이라고도 수시로 밝혔다. 2020년 뉴요커에 소개된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한다. “영화음악을 하지 않고, 콘서트 연주용(클래식) 음악만 계속 했더라면 즐겁고 꽤 잘했을지도 모르죠.”
윌리엄스는 경력 초기엔 음악에 대해서라면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영화감독들 때문에 불평했다. 그러나 생계를 보장해주는 업계에 남았다. 아카데미상을 다섯 번이나 받아 이 분야에선 독보적이다. 마음이 가는 클래식 작곡은 계속 시도했고, 바라던 대로 무대에 올렸고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거둔 명성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전문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겠다는 것도, 40년 동안 스타워즈 아홉 편 음악을 맡는 것도, 뜻한 바 있어 추구한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된 거죠. 이 모든 것은 자비로운 우연(beneficent randomness)의 결과였습니다. 그 우연이 종종 인생에서 최고의 결과를 낳기도 하죠.” (뉴요커 2020년 7월 21일 인터뷰중)
존 윌리엄스의 미 공군 군악대 복무 시절 모습. 래거시오브존윌리엄스 캡처 더 좋아하는 일을 해야 성공하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한다. 윌리엄스는 반례다. 명백히 덜 좋아하는 작업에서 더 큰 명성을 얻었다. 좋아하는 일이어야 행복한가? 그럴 가능성이 더 높지만, 모를 일이다. 윌리엄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영화음악 선택이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다지 않나. 클래식 작곡만을 고수했더라면 받지 못했을 많은 기회도 얻었다. 처음엔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열정이란 자라나기도 하는 법이다. 윌리엄스는 ‘영혼의 단짝’이자 음악을 아는 스티븐 스필버그(어머니가 음악가였다)를 만나면서 작업에 보다 흥미를 붙인다.
너무 많은 자기 계발서나 유튜브의 자칭 멘토들이 너무 쉽게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 식의 조언을 한다. 그러곤 성공한 사례들을 꼽지만, 거장들의 실제 삶도 봐야 한다. 애플 창립자로 이 분야 조언 원조격인 스티브 잡스도 그렇다. 고집불통 자연주의 히피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명상원 대신 IT기업을 세웠다. 막상 자기 조언(“열정을 따르라”)대로 하지 않아서 성공한 사례로 해외 매체에서 주기적으로 언급되곤 한다.
영화감독이라는 꿈 대신 게임 개발로 방향을 틀어서 메탈기어 솔리드라는 걸작을 남긴 코지마 히데오는 어떤가. 그들을 보면, 한 분야에서 쌓은 취향이 견고하다면, 어느 분야이든 빛이 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개성이란 늘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당신이 어디로 향하든, 무엇을 선택하든, 당신을 위한 무대는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일이 안 풀리면 가슴을 따르지 말고, 자비로운 우연이 우리 삶을 어디로 끌고 갈지 지켜보자. 나는 윌리엄스가 그런 조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계발서나 자칭 멘토 유튜버들은 보통 잘 안 하는 조언이다. 그런 조언은 대개 각 집안에서 엄마들이 한다.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예술가 지망생 등짝을 때리는 손바닥 소리. 짜짝짜짝짝. 그 리듬이 윌리엄스에 공명한다. 무엇이 두려우랴, 그대여. 거장의 음악을 들어라.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종종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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