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를 알아본 백락…‘신궁’ 박성현 “나를 만들어준 사람은”[이헌재의 인생홈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1일 12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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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부부 박성현과 박경모가 지난해 파리올림픽이 열린 앵발리드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성현 제공

한국 여자 양궁에는 ‘신궁(神弓)’ 계보가 있다.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 5관왕에 오른 김진호를 시작으로 김수녕, 윤미진, 박성현, 안산, 그리고 지난해 파리올림픽 3관왕 임시현까지 신궁들은 한국 양궁을 세계 최강으로 만드는 데 일조해 왔다.

이들이 국제무대에 딴 금메달은 수십, 수백 개에 이르지만 그중 박성현 전북도청 감독(42)이 가장 먼저 달성한 기록이 있다. 박성현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밖에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금메달까지 획득하며 한국 양궁 선수로는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을 달성했다.

하지만 박성현이 세계적인 선수를 넘어 ‘신궁’이 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있다. 서오석 현 코오롱 양궁팀 감독(68)이다.

고교 시절까지 박성현은 ‘진흙 속의 진주’ 같은 선수였다. 잠재력은 있었지만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질 못했다. 전북체고를 졸업할 때까지 박성현이 딴 국내대회 메달은 고교 마지막 전국체전에서 기록한 동메달 1개가 전부였다. 어찌보면 그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게 당연했다.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대학이나 실업팀에 입단할 때 ‘경기실적증명서’라는 서류를 제출한다. 박성현의 경기실적증명서에는 달랑 동메달 1개만 기입되어 있었다.

평범하다 못해 양궁을 잘하지 못했던 박성현이 전북도청에 입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역 안배’ 차원이었다. 전북도청 양궁팀이니만큼 전북 지역선수를 한 명 넣다 보니 그게 박성현이었던 것이다.

부부의 연을 맺은 박성현과 박경모. 동아일보 DB
부부의 연을 맺은 박성현과 박경모. 동아일보 DB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서오석 감독이 박성현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당시 전북도청을 지휘하고 있던 서 감독은 신체조건이 좋은 박성현의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봤다. 서 감독은 박성현에게 1년 내내 활을 쏘게 하는 대신 기본기 훈련만 시켰다. 초등학생 시절에나 할 법한 팔굽혀 펴기와 시위 당기기만 줄기차게 했다. 박성현은 “다른 선수들은 모두 70m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데 나만 혼자 떨어져 팔굽혀 펴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 서러워서 어느 날은 엄마한테 ‘나는 이렇게 1년만 하다가 끝나는 거 같다’라고 하소연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1년간 꼬박 팔굽혀펴기 등 기본기 훈련만 하다가 나간 첫 대회는 2000년 종별선수권대회였다. 서 감독은 박성현에게 “첫 대회니까 10점을 쏘려 하지 말고 제 타임에만 늦지 않게 쏘고 나오라”고 말했다.

박성현은 서 감독의 말을 따랐다. 경기가 끝난 후 전광판을 보니 개인전 가장 높은 곳에 박성현의 이름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도대체 박성현이 누구야?”라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성현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한 말이었다.

이날 이후 박성현의 앞에는 거칠 게 없었다.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했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후 2010년 은퇴할 때까지 항상 정상을 유지했다. 박성현은 “저는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첫 실업팀에서 서오석 감독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양궁선수 박성현’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후에도 서 감독님은 오늘날까지 내 인생의 멘토다. 지도자로 첫발을 내딛는 데도 도움을 주셨다. 요즘도 아빠보다 더 자주 통화한다”라며 웃었다.

박성현이 지난해 파리올림픽에서 임시현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이헌재 기자
박성현이 지난해 파리올림픽에서 임시현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이헌재 기자

서오석 감독이 박성현에게 ‘신궁’의 길을 열어줬다면 그가 ‘신궁’으로 자리 잡는 데 함께 했던 사람은 남편 박경모 공주시청 감독(50)이다. 박경모 역시 올림픽 금메달 2개를 딴 남자 신궁이다. 박경모는 2004년 아테네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두 사람의 집에는 올림픽 금메달 5개를 비롯해 각종 국제대회에서 수집한 금빛 메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두 신궁의 만남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한국 양궁 대표팀은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극기 훈련을 한다. 박성현이 처음 태극마크를 단 2001년 대표팀은 경남 진해의 해군 특수전전단(UDT)에 입소해 특수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이때 남자 대표팀 선수들이 훈련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한양궁협회는 남자 선수들의 대표팀 자격을 박탈하고 2진 선수들을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박경모는 그때 태극마크를 단 4명 중 한 명이었다.

선수촌에서 동고동락하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박성현은 2003년부터 여자팀 주장을 맡았고, 박경모는 남자팀 주장이었다. 힘들 때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다만 둘의 만남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둘의 교제 소식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양궁 경기가 끝난 뒤에야 알려졌다.

박성현에게 세 딸은 삶의 존재 이유이자 원동력이다. 박성현 제공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개인전에서 중국 선수에게 1점 차로 뒤져 은메달에 그쳤다. 박성현은 “연애하느라 개인전 금메달을 못 땄다는 불편한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서로가 있었기에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단체전에서는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둘은 그해 말 곧바로 결혼했다. 그리고 아이를 가지면서 박성현은 예상보다 빠른 은퇴를 했다. 그는 2010년 플레잉코치를 거쳐 2011년부터 전북도청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박경모도 2011년부터 공주시청 팀을 맡았다. 박성현은 “선수 때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집에서 양궁 얘기를 많이 한다. 나는 여자팀, 남편은 남자팀을 맡고 있는데 서로의 조언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성현. 동아일보 DB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성현. 동아일보 DB

부부는 금메달 해설위원으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은 한 지상파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2021년 도쿄 올림픽,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함께 했다. 한국 대표팀은 2016년 리우 대회에서 전 종목(당시 금메달 4개)을 석권했고, 2021년에도 금메달 4개를 땄다. 지난해 파리에서는 금메달 5개로 또 한 번 전 종목을 제패했다. 박성현은 “항상 같이 공부하고 같이 준비한다. 언제든 믿을 수 있는 내 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르겠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방을 하나만 줘도 되니 좋을 것 같다”라며 웃었다.

신궁 부부의 미래는 세 딸이다. 박성현-박경모 부부는 슬하에 예진(14), 수진(12), 나윤(9) 등 세 딸을 뒀다. 세 딸은 아직 전문적으로 양궁 선수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다. 두 사람의 집에는 작은 마당이 있는데 취미 삼아 이곳에서 활을 쏘곤 한다. 가끔은 박경모 감독의 공주시청 훈련장에서 쏠 때도 있다. 박성현은 “아직은 재미이자 취미로 가르치고 있다”라고 했다.

소속팀을 15년째 맡고있는 감독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박성현에게 세 딸은 존재만으로도 삶의 동력이 된다. 박성현은 “아이들이 커 가면서 대화가 되니 너무 재미있다. 함께 모여서 이야기만 하고 있어도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며 “든든한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내게는 축복인 것 같다. 감독이자 아내, 엄마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양궁#신궁#올림픽#금메달#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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