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입니다. 곳곳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가 이어지는 계절이죠. 4악장에서는 명상적인 3악장에 이어 인류가 하나 되기를 호소하는 ‘환희의 송가’ 합창이 펼쳐지므로, 한 해를 보내며 감상하기에는 딱 좋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베토벤에게는 이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형제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합창교향곡’보다 16년 앞서 1808년에 쓴 ‘합창환상곡(Choral Fantasy)’입니다. 관현악단과 피아노 솔로, 솔로 성악진이 출연합니다. 피아노가 들어간 점을 빼면 합창교향곡과 닮은꼴입니다.
작품을 들어보면 공통점이 더 확연히 드러납니다. 모호한 혼돈의 느낌으로 시작해서 당당하고 낙관적인 느낌으로 이어지는 점도 그렇고, 끝부분 주제선율의 느낌도 비슷합니다. ‘합창환상곡’은 나중에 ‘합창교향곡’을 만들기 위한 테스트, 즉 ‘시험적 작품’이었을까요?
그런데 ‘합창환상곡’이 단지 ‘작은’ 합창교향곡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베토벤 시대는 계몽적 이상주의의 영향력이 강한 시대였고, 이 시대 예술가들은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개인과 인류의 모습을 작품에 그려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먼저 발표된 ‘합창환상곡’ 가사에는 이상적인 개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외면적으로는 평온이, 내면적으로는 기쁨이 지배하는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간주합니다. 반면 이후 실러의 시 ‘환희에의 송가’에서 가져온 ‘합창교향곡’ 가사는 이상적인 인류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관습이 엄중히 갈라놓았던 것을 다시 묶어, 환희의 마법으로 한 형제가 된’ 인류입니다.
2016년, 인류는 많은 ‘갈라놓음’을 만났습니다. 영국은 유럽연합과 갈라지게 되었고, 미국도 더 많은 장벽을 주장하는 인물이 나라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해도, 인류의 역사는 조금씩 서로 마음을 여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고 믿습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합창교향곡 연주의 대표 격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합창교향곡 콘서트는 28,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지휘로 열립니다. 이어 30일에는 음악감독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이 ‘합창환상곡’과 ‘합창교향곡’을 잇달아 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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