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하다 보면 슬그머니 싹트는 궁금증. ‘글쓴이는 어떤 사람일까.’ 번역 외서(外書)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해외 저자는 만남의 문턱이 높죠. 한국 독자와 해외 작가 간 소통을 주선합니다
전율을 부르는 탁월함은 재능의 영역일까 노력의 결과일까. 지난해 12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구단 최다 어시스트인 68개를 기록한 손흥민 선수가 이를 축하하기 위해 팀이 제작한 유니폼을 들어 보이며 웃음 짓고 있다. 토트넘 인스타그램
종일 책을 붙들고 있는데 성적은 신통치 않은 A . 매일 새벽같이 연습해도 축구 실력이 늘지 않는 B. 동기들보다 일찍 나와 늦게 퇴근하는데 일머리 없다는 수군거림을 듣는 C. 독하게 노력해도 잘 못하는 이들은 알고 싶다.최선을 다해도 매번 뒤처지는 나의 문제가 뭔지. 설렁설렁 깨작깨작 준비하고도 늘 앞서는 그들의 비결은 뭔지. 아이큐도 비슷한 것 같은데….
손흥민, 김연아, 임윤찬…. 전율을 부르는 탁월함은 재능의 영역일까 노력의 결과일까. 뛰어난 성취의 배경을 둘러싼 논쟁과 별개로 ‘배움의 기술’에 대한 열망은 언제나 뜨겁다. 요람부터 무덤까지 인생 전반에 학습력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투로 E. 허낸데즈(Arturo E. Hernandez) 미국 휴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의 ‘제대로 연습하는 법’(북트리거)은 배움의 왕도를 들여다본 책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비롯해 성인기 이후의 학습, 비선형 교육 방법론, 학습 토대인 뇌 발달 과정, 올바른 연습 과정 등을 분석했다.
그는 이중언어 전공자로 언어 학습이 인지 기능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탐구해 왔다. 4개 국어와 선수급 테니스 실력을 익히며 탁월함에 이르는 길을 몸소 체득하기도 했다.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언어 학습과 인지 기능 간 관계를 스포츠, 게임, 음악 같은 분야로 확장해 연구했다”며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무언가를 더 잘하게 되는 과정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노력해도 잘 안되는 이들을 위한 학습 전략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2014 소치 겨울올림픽 갈라쇼에서 스파이럴 연기를 선보이는 김연아 선수. 동아일보 DB
‘공부머리’ ‘일머리’ 탓하지 말라
―남들보다 열심히 하는데도 성과가 별로인 이들이 있다. 이들은 ‘공부머리’ ‘일머리’ 탓을 하면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어릴 때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며 스페인어와 영어를 동시에 사용하며 자랐고, 성인이 된 후에는 포르투갈어와 독일어를 배웠다. 또 테니스 선수로도 활동했는데, 언어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학습의 원리를 깨달았다. 분야를 불문하고 학습은 단순 반복이 아니라 작은 기술들이 시간에 비례해 변형되고 발전하는 과정이었다.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학습 전략이다.”
―효과적인 학습 전략이라니 다소 모호하게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4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구조화된 피드백을 바탕으로 연습하는 ‘의도적 연습’ △배우고자 하는 기술을 정신적 이미지로 구체화하는 ‘정신적 표상’ △학습 세션을 시간 간격을 두고 배치해 기억 정착과 통합을 촉진하는 ‘분산 연습’ △한계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깊은 집중’이다. 이렇게 하면 뇌가 끊임없이 도전에 대응하며 학습 효과가 극대화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뭔가.
“의도적 연습은 전문성 개발의 핵심 요소다. 단순 반복이 아니라 현재 수준을 넘어서겠다는 목표와 의지를 갖고 연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목표 설정, 지속적인 피드백, 그리고 정신적 표상을 활용한 기술 정교화가 필요하다.”
―의도적 연습으로 4개 국어와 테니스를 마스터했나.
“의도적 연습은 현재 수준보다 약간 어려운 과제를 설정한 뒤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반복과 성찰을 통해 기술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독일어 문법을 배울 때 작은 단위로 나눠 반복 연습을 했고, 원어민 피드백을 받으며 개선해 나갔다. 테니스에서는 서브 연습할 때는 팔과 손목 움직임과 상·하체 조화 등을 개별적으로 익힌 뒤 이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훈련했다. 이처럼 기술을 잘게 나눠서 연습하고 점진적으로 결합하는 과정이 학습 효과를 높인다.”
―어학, 스포츠, 예술 등에서는 의도적 연습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다양한 감각 입력과 운동 기술, 그리고 기억 체계를 활용해 숙련도를 높이는 과정은 무엇을 배우든 중요하다. 언어 학습에서는 반복과 맥락 활용이 어휘가 머릿속에 정착하는 것을 돕는다. 음악에서는 연주자가 특정 부분을 반복 연습하며 유창함을 기른다. 운동선수는 경기 직전 정신적 이미지를 활용해 동작을 시뮬레이션한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최종 작품을 그리기 전에 스케치를 통해 개념을 정리한다.”
―깊은 집중은 실천이 쉽지 않다.
“깊은 집중을 유지하려면 과제에 온전히 몰입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해 요소를 없애야 한다. 명확한 목표 설정, 과제 세분화, 그리고 번아웃 방지를 위한 짧고 강도 높은 연습이 효과적이다.”
유아기에 축구 기술을 익히면 공을 직관적으로 다루게 된다고 아투로 교수는 말한다. 아이스톡포토
공이 발인지 발이 공인지…
―하나를 잘하면 나머지도 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무언가를 빨리 배우거나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을까.
“책에서는 기술을 익히는 과정을 세 가지 주요 단계로 설명한다. 첫째, 탐색 단계로 새로운 기술을 접하고 기본 개념과 원리를 익히는 과정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알파벳과 기본 문장을 익히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다음은 강화 단계다. 특정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정확도를 높이는 과정으로, 의식적 연습과 피드백이 핵심이다.
마지막은 기술에 익숙해져 무의식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자동화 단계다. 테니스 선수들이 경기 중 반사적으로 움직이거나, 피아니스트가 악보 없이 극강의 연주를 들려주는 경지가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학습은 ‘탐색 → 강화 → 자동화’의 연속 과정이며, 각각의 단계에서 적절한 학습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뿐 아니라 연구나 학습에 뛰어난 이들도 이 과정을 따른다.”
―책에는 축구 코치가 16개월 된 아들에게 축구 기술을 가르친 사례가 나온다. 조기 학습은 얼마나 효용이 있나.
“축구 선수 출신 코치 톰 바이어는 훌륭한 선수 대부분이 5세 이전에 놀면서 기본 기술을 익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그는 작은 축구공을 집으로 가져와 16개월 된 아들에게 들고 걸어 다니도록 했다. 이후 나이를 먹어 가는 아들에게 간단한 기술을 조금씩 더 가르쳤다. 축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술은 공을 발로 다루는 것인데, 아주 어린 나이에 이를 익히면 공이 발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정신적 표상’을 형성하게 된다. 즉, 공을 다루는 것이 완전히 직관적인 과정이 되는 것이다. 기본 기술은 조기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다. 수학, 독해, 외국어 학습과 같은 학문적 기술에도 적용된다.”
―성인이 돼서 외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습득하는 다중언어 구사자들 사례도 나온다. 어른이 되면 언어 유창성이 크게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구에 따르면 4개 이상 언어를 배우는 능력은 몇 가지 요소와 관련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각 언어의 고유한 리듬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예컨대 스페인어 ‘propio’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어에서는 ‘proprio’로 변하는데, 이들은 여기서 ‘r’ 발음이 확장되는 패턴을 감지한다. 이들은 또 언어를 시스템(문법)으로 바라보고 몰입해서 지속적으로 해당 언어를 연습한다.”
―미국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는 20대에 영어를 배웠음에도 뛰어난 작가가 됐다는 내용이 책에 나온다.
“콘래드는 뒤늦게 영어를 배웠지만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청소년기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도 배웠다. 그는 주로 앵글로색슨 어원을 가진 일상적인 단어를 바탕으로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단어를 적절히 섞어 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런 접근 방식 덕분에 그의 문체는 매력적이고 읽기 쉬웠다. 다국어 지식이 그의 글쓰기 스타일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독일어를 배우는 과정과 고급 테니스 기술을 훈련하는 과정이 비슷하다고 했다.
“언어 학습과 스포츠 훈련 모두 뇌의 신경가소성(神經可塑性·neuroplasticity, 뇌가 스스로 신경 회로를 바꿔 적응하는 능력.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일생 내내 변할 수 있다는 뜻)에 기반해 이뤄진다. 두 경우 모두 작은 단위로 나눠 연습하고 반복을 통해 자동화하며 이를 바탕으로 더 복잡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을 거친다. 독일어를 익힐 때 문법, 발음, 어휘를 각각 연습해야 하듯이, 테니스 서브를 익힐 때도 동작을 세분화해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학습 원리는 언어, 스포츠, 그 외 모든 기술 습득 과정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호주 테니스 선수 애슐리 바티는 크리켓을 하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다. 이런 사례가 일반적인가.
“한 분야에서 익힌 기술은 다른 분야로 전이된다. 애슐리 바티는 크리켓을 하면서 손과 눈의 협응, 전략적 사고, 운동 조절 능력을 키웠고 이 능력은 테니스에도 그대로 발휘됐다. 이런 교차 분야 학습은 뇌가 패턴을 일반화해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능력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음악가는 리듬과 구조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언어 학습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정 기술에 대한 선천적인 능력 차이는 존재하지만, 장기적인 성취는 의식적 연습과 효과적인 학습 방법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유전자는 확실히 학습 잠재력에 영향을 미치지만 과장된 경우가 많다. 신경가소성, 즉 뇌가 스스로를 재조직하고 적응하는 능력 덕분에 재능이 없어도 학습을 통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뇌에서 학습을 위한 기본 시스템은 언제 어떻게 형성되나.
“얼굴 인식 학습 시스템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신생아는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얼굴을 처리하는 학습 시스템은 태아기에 형성되는 셈이다. 출생 전 감각 경험을 통해 형성된 신경 연결은 유아기 때 주변 어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반복과 피드백을 통해 더욱 정교해진다. 얼굴 인식 능력은 복잡한 인지 기능의 기초가 된다. 그러니 학습 시스템은 태아 발달 단계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는 셈이다.”
―유아기 학습 능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뇌의 가소성이 높은 유아기에는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배운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감각 자극이 학습 능력을 높인다. 또래 친구나 아이들, 그리고 성인들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다양한 물성(物性)을 접하고 관찰하는 경험도 도움이 된다.”
―책에서 언급한 숫자 폭 연구를 통해 기억력도 노력으로 키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숫자 폭 검사는 제한된 시간에 기억해 내는 숫자가 몇 개인지를 통해 단기 기억력을 알아본다. 단기 기억은 제한적인데 대부분 성인은 약 7자리 숫자를 기억한다. 그런데 연구에 참여한 스티브 팔룬은 훈련을 통해 80자리까지 기억해 냈다. 그는 정보를 의미 있는 단위로 묶어 더 쉽게 기억하는 전략을 썼다. 앞쪽 네 자리, 뒤쪽 세 자리로 나눠 묶어서 각각 달리기 기록과 나이로 머릿속에 저장했다. 정보를 ‘덩어리’로 묶어 저장하면 더 많은 정보가 유지되는 것이다. 기억력도 타고나는 부분이 있지만 연습으로 기억력을 확장할 수 있다.”
―한국에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널리 알려져 있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시간 투자는 얼마나 중요한가.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이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스웨덴 심리학자 앤더슨 에릭손 연구를 소개하며 1만 시간의 법칙을 대중화했다. 하지만 에릭손조차 시간만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연습의 질이 양보다 더 중요하다. 목표지향적이고 피드백이 수반되는 의도적 연습을 해야 투자한 시간이 전문성으로 이어진다.”
―학습에서 동기부여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나.
“동기부여는 장기적인 학습을 지속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보상과 칭찬 같은 단기적이고 외적인 동기에만 의존하면 쉽게 지치기 때문에 내적 동기를 키워야 한다. 명확한 목표 설정, 작은 성취 경험, 학습을 재미있게 만들기 등이 도움이 된다. 재미와 성취감을 고려해야 동기를 유지할 수 있다.”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휴식과 회복의 역할은 무엇인가.
“학습에서는 충분한 휴식과 회복이 필수적이다. 뇌는 학습한 정보를 잠자는 동안 정리하고 강화한다. 너무 많은 연습은 인지적 피로를 불러서 학습 효율을 저하시킬 수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짧은 휴식을 취해야 한다. 또 수면은 기억력을 강화하고 운동은 뇌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켜 학습 효과를 높인다. 결론적으로 ‘끊임없는 연습’이 아니라 ‘효율적인 학습과 휴식의 균형’이 중요하다.”
―학습은 몸과 뇌를 동시에 사용해야 하는 작업처럼 들린다.
“모든 학습 과정은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동반한다. 학습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뇌와 몸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발전할 수 있으며, 올바른 학습 방법을 적용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무언가를 배울 때 적어도 한 번씩은 슬럼프에 빠지곤 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초보 단계를 인정해야 한다. 도전을 시작할 때는 느리고 서툴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은 성장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실패도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예컨대 운동을 배울 때 틀린 동작을 교정하는 자체가 실력을 키우는 과정인 셈이다. 어쩌면 평생 학습에 열려 있는 태도가 배움의 기술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운동선수들이 특정 동작을 느린 속도로 연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속도를 늦추면 동작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고, 천천히 반복 연습하면 숙달이 된다. 그러면 자연히 속도는 따라온다. 아직 숙달되지 않은 기술을 빠르게 연습하는 것은 효용이 떨어진다. 느린 동작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프로 선수들 기술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또 속도를 늦추면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줄어들어 더 깊이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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