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맛보기] 〈3〉 영국화가 로세티 ‘마음의 여왕’
19세기 英 유명 모델인 시달 초상화
두사람 결혼직후 기념으로 그려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가 연인 엘리자베스 시달을 그린 초상화 ‘마음의 여왕’. 요하네스버그아트갤러리 제공
폭 25cm, 높이 20cm. 생각보다도 더 조그마한 크기인 이 그림은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에서 클로드 모네의 작품 다음으로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불꽃이 타오르듯 굽이치는 여성의 빨간 머리카락, 하트 모양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 손에 들고 있는 보랏빛 팬지꽃에 화려한 금박을 두른 배경까지. 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1828∼1882)가 그린 연인 엘리자베스 시달의 초상화 ‘마음의 여왕’(레지나 코르디움)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시달은 19세기 영국 화가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모델이다. 상점 점원으로 일하던 시달을 1850년 화가 월터 데버럴이 발견하고 처음으로 자기 작품에 그려 넣었다. 이후 시달은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 등 여러 화가를 위해 포즈를 취했다.
시달이 모델을 섰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밀레이의 ‘오필리아’.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에서 햄릿의 연인이지만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아버지마저 살해당하는 비극에 휘말린 오필리아는 결국 실성해 배회하다가 실수로 물에 빠져 익사한다.
이 장면을 그리려는 밀레이를 위해, 시달이 몇 시간 동안 물속에서 불편한 자세로 포즈를 취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시달은 물을 채운 욕조에 들어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물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램프를 켜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밀레이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 나머지 램프가 꺼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에 시달은 차가운 물속에서 오랜 시간 포즈를 취하다 감기에 걸려 폐렴 증세까지 보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린 밀레이의 ‘오필리아’가 공개되며 시달은 더욱 유명해졌다. 로세티도 그런 시달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로세티와 시달은 연인 관계가 됐지만 10년에 걸친 연애 끝에 시달의 건강이 나빠지고 나서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부부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둘의 집은 늘 어둡고 습기가 가득했으며, 시달은 결혼 생활 2년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된다. 그 옆에는 빈 아편 병이 놓여 있었다. 사인은 사고였지만 극단적 선택이나 다름없는 죽음이었다. 시달이 떠난 뒤 로세티도 술과 마약으로 망가졌다. 10년 뒤 부인과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두 사람이 결혼한 직후 기념으로 그린 이 초상화는 관능과 신비, 숭고함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음의 여왕’이란 제목에는 시달을 향한 로세티의 뒤늦은 속죄와 사랑 고백이 담겼다는 해석이 많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