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제인 구달’로 불리는 저자
생물 다양성-기후-나무의 생식 등
생명 치유하고 품는 숲 생태 담아
◇세계숲/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 지음·노승영 옮김/320쪽·2만 원·아를
“숲은 미생물, 곤충, 새, 포유류, 식물의 보금자리다. 벌 한 마리, 늑대 한 마리도 꿈꾸거나 죽을 권리가 있으며 경이로운 삶을, 나름의 독특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아일랜드 출신 식물학자인 저자는 숲을 중심으로 하는 지구 생태계 복원을 외치며 ‘나무의 제인 구달’로 불려 왔다. 이 책에는 숲의 생물다양성, 약용식물, 꽃, 기후변화, 나무의 성생활까지 40편의 에세이를 담았다. 연재물을 모은 느낌이지만 일관되고 탄탄한 주제의식으로 묶여 있으며 불필요한 중복은 거의 찾기 힘들다.
제목 ‘세계숲’은 신화 세계에서 세상을 떠받치는 나무 ‘세계수(世界樹)’에 빗댄 표현이다. 지구가 하나의 유기체라는 ‘가이아’ 이론을 떠올리게 하지만, 책 전체에 있어서 의심스러운 신비주의적 관점이 불거지지는 않는다. 북아메리카 토착민이나 고대 켈트 전통의 숲에 대한 통찰이 인용되기도 하지만 상징적 차원에 그친다. 오히려 지질학부터 물리학, 화학, 의학, 영양학에 이르는 치밀하고 상세한 과학적 접근이 책을 풍요롭게 한다.
동물의 색이 피의 붉은색이라면 나무의 색은 초록색이다. 동물의 혈색소와 나무의 엽록소는 쌍둥이 자매 분자로서 손을 맞잡고 지구 위의 생명들을 빚어낸다. 햇살이 주는 풍요로움은 식물의 빛 수용체에 의해 생명들에게 전달된다.
숲은 은혜롭게 풍요롭다. 각각의 나무 종마다 40여 종의 곤충을 먹여 살린다. 나무의 수액은 달콤하다. 다람쥐가 껍질을 벗기고 수액을 맛본다. 벗겨낸 상처에는 굳은살이 박이지만 상처 입은 나무는 열매를 더 많이 맺는다. 다람쥐는 견과를 먹고, 그들의 상위 포식자인 몸집 큰 동물들도 찾아온다. 큰 짐승들은 씨앗을 멀리 퍼뜨리며 생태계에 기여한다.
숲은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숲이 뿜어내는 성분은 유해 미생물을 막아주며 공기 오염으로 고통받는 인간을 지켜줄 최후의 방벽이 된다. 새들은 딱총나무 열매를 먹고 시력을 유지한다. 북아메리가 원주민은 산사나무 열매를 따먹고 심장 건강을 지켰다. 늑대와 코요테도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약 성분을 숲에서 찾아낸다.
저자는 나무들이 ‘얘기한다’거나 ‘환경을 의식한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식물들의 상호작용은 때로 동물들과 유사하다. 어떤 나무는 위기가 닥치면 초저음을 발하며 주변에 정보를 공유한다. 이성을 유혹하는 나무의 변화는 때로 황홀할 정도로 다채롭다.
저자가 얘기하는 ‘세계숲’은 우리가 상상하는 빽빽한 삼림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초원과 사바나, 바다를 아우른다. 단세포 생물로 이뤄진 ‘바다의 숲’이 세계 산소의 절반을 만들어낸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숲에서도 벌과 나비, 이끼, 버섯까지 사소해 보이는 모든 생물들이 각각의 장에서 주인공이 된다.
큰 숲이나 나무 한 그루를 온전히 표현한 도판은 의외로 이 책에 없다. 그러나 여러 나무와 풀의 줄기, 열매, 꽃을 상세히 묘사한 다양한 그림들이 친절하게 설명을 도우면서 잠시 쉬어갈 공간들까지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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