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후 남미 등으로 공급망 이동
물류 현장서 글로벌 경제 흐름 조망
◇공급망 붕괴의 시대/피터 S. 굿맨 지음·장용원 옮김/536쪽·2만4000원·세종서적
2022년 2월 멕시코시티 외곽에 있는 한 의류 공장엔 월마트로부터 계약 금액 100만 달러(약 14억3880만 원)어치의 옷 5만 벌 제작 주문이 들어왔다. 이전까지 많아 봐야 한 번에 1000벌 정도 주문이 들어오던 곳이었다.
월마트는 원래 주로 중국에 생산공장을 두고 각종 상품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월마트는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고 있었다. “미국과 바다로 분리된 한 나라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고, 육로 운송이 가능한 멕시코로 생산 공장을 선택한 것이다. 멕시코 공장주들에게는 경제 공급망 지형이 뒤바뀌면서 뜻밖의 행운이 돌아간 셈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행운은 과연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신간은 도널드 트럼프 1기부터 시작돼 팬데믹을 거치며 재편된 세계 공급망을 조명한 책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경제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우연히 한 사업자로부터 “항구 물류대란이 극심하다”는 얘길 듣고 이를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팬데믹으로 2020년부터 마스크, 생수, 생필품이 곳곳에서 동나는 상황을 보며 취재에 더욱 매진했다.
책은 한 장난감 판매 사업자가 중국에서 생산한 상품을 미국 대도시 곳곳으로 운송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책의 장점은 공급망 재편이라는 주제를 숫자나 경제 지표 등을 나열해 설명한 것이 아니라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웠다는 점이다.
특히 선적할 배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생산업자, 높아진 해운료로 막대한 이득을 챙긴 해운업자들, 리쇼어링(생산시설의 자국 이전), 니어쇼어링(인접국 이전)을 고려하는 소규모 사업체 간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중국에서 양말을 생산하던 한 사업가는 트럼프 당선에 앞서 이미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 주목받았다. 딱딱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내 쉽게 읽힌다.
장기화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무역 갈등 등으로 공급망은 언제고 크게 휘둘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다소 이상적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으나, 저자는 “혁신과 경쟁을 촉진하고,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몫을 줄 수 있는 합리적 규제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어판 특별 서문에선 “미국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는 현대자동차의 미 조지아주 공장이 현명한 판단으로 기록될까, 미래 예측이 어렵다는 교훈이 될 것인가”라고 묻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