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봉 주교. 동아일보 DB 초대 안동교구장을 지내며 70여 년 동안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돌봐온 두봉(杜峰·본명 Rene Dupont) 주교가 10일 선종했다. 향년 96세.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난 두봉 주교는 1953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인 1954년 한국에 파견됐다. 이후 대전교구 학생회 지도신부, 가톨릭 노동청년회 지도신부, 대전교구청 상서국장,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등을 역임했다. 1969년 주교 서품을 받고, 같은 해 초대 안동교구장으로 취임해 20여년간 교구를 이끌다 1990년 12월 퇴임했다.
두봉 주교는 1973년 한센병 환자를 위해 경북 영주에 다미안 의원을 설립하는 등 평생을 한국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았다. 농촌과 농민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를 창립하는 등 농민 인권 신장에 앞장섰으며, 상지여중·고와 가톨릭 상지대학을 세워 지역 교육 확대에도 힘썼다.
일생을 직접 농사를 지으며 검소하게 살아온 그는 주교의 특권인 문장(紋章)과 사목 표어도 만들지 않았다. 주교 서품 당시 “문장은 귀족이나 갖는 것”이라며 시골 신부인 자신에게는 필요 없다고 사양했기 때문이다. 또 교구장 재임 중에도 “한국의 교구장은 한국인 사제가 해야 한다”라고 교황청에 네 차례 탄원해 스스로 물러났다.
두봉 주교. 동아일보 DB 1979년 안동교구장 시절에는 ‘안동교구 가톨릭 농민회 사건’으로 군사정권으로부터 추방령을 받기도 했다. 당시 군청에서 나눠준 불량 감자씨로 농사를 망친 농민들이 보상을 요구하자 정부 기관원들이 농민 대표를 납치해 모진 폭행을 한 것. 안동교구가 중심이 돼 이를 전국에 폭로하자 군사정권은 앞장을 선 두봉 주교에게 출국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국내외 여론은 물론 교황청에서 두봉 주교를 지지하면서 출국 명령은 철회됐다.
은퇴 후인 2019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그는 6일 뇌경색으로 입원해 치료받던 중 선종했다. 장례미사는 14일 오전 11시 안동교구 목성동 주교좌성당(054-858-2460)에서 봉헌한다. 장지는 경북 예천군 농은수련원 성직자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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