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 니조성에서 열린 안젤름 키퍼 개인전 ‘솔라리스’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작품 ‘Ra’. 교토=김민 독일 출신 현대미술가 안젤름 키퍼가 에도 시대 쇼군의 궁전이자 가노파 화가들의 황금빛 병풍이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는 ‘니조성’에 ‘히로시마 원폭 참사’와 ‘신의 똥’인 황금, 곡식이 빼곡한 모래밭, 그리고 머리가 없는 강철 여신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안젤름 키퍼 개인전 ‘솔라리스’ 전시 전경. 교토=김민 키퍼의 개인전은 평소 공개되지 않는 공간인 니조성의 대형 부엌과 조리실을 활용해서 열렸는데요. 쇼군이 머물던 화려한 궁전 ‘니노마루고텐’과 달리 이곳은 어둡고 무거운 목조 건축물이었습니다.
전시는 가장 큰 공간에 대형 신작을 늘어 놓고 나머지 공간엔 각각 ‘모건소 플랜’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과 키퍼의 고향에 있는 ‘라인강’에서 출발한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모건소 플랜’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군수 산업과 중공업을 제거하고 농업과 목축 중심의 국가로 만들자는 계획을 말합니다. 즉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사건 그 이후 무렵 같은 패전국이자 키퍼의 출신국인 독일의 역사를 모티프로 한 작품입니다.
안젤름 키퍼의 ‘모건소 플랜’ 속에 숨겨진 황금빛 뱀. 교토=김민 개인적으로는 무언가를 억지로 제압하거나 거스르려는 인간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게 꼭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지금까지 그런 행동이 문명을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덫이 될 수 있다는 이중적인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현실에서도 한 가지 사건을 두고 100명의 사람이 100개의 다른 해석을 내놓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많은 사건들은 100개 중 하나만 맞다고 누군가 억지로 강요하거나 주장하며 생깁니다. 이를 통해 권력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선을 넘어 뒤틀린 사건을 만들죠.
이 ‘뒤틀림’이 제때 해결되지 않으면 원자폭탄 폭격, 전쟁 같은 커다란 비극이 생겨나고 모든 것이 파괴된 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인류가 살아온 세상이 아닐까 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런 가운데 키퍼는 풍경과 한 몸이 된 듯 윤곽선만 간신히 딴 자신을 뒷모습으로 그려 넣으며. 세상을 보는 주인은 내 밖의 이데올로기도 권력도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고, ‘내가 그 모든 걸 보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