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우주서 지구를 본다는 건, 아이가 처음 거울을 보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14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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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부커상 수상한 작가의 장편소설… 우주정거장서 생활하는 비행사들
하루 16번씩 지구 궤도 돌며 관찰… 우주서 본 지구 ‘시적 언어’로 표현
◇궤도/서맨사 하비 지음·송예슬 옮김/240쪽·1만7000원·서해문집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 저자는 “발아래서 지구가 빠르게 구르고 있었다. 놀랍도록 적나라한 지구. 여기서 보는 지구는 단단한 고체 같지 않다. 표면은 흐르고 있고 반질반질하다”고 묘사한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 저자는 “발아래서 지구가 빠르게 구르고 있었다. 놀랍도록 적나라한 지구. 여기서 보는 지구는 단단한 고체 같지 않다. 표면은 흐르고 있고 반질반질하다”고 묘사한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검은 바다 위에 파란 구슬 하나가 고요히 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내려다본 지구다.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가 그 풍경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지구는 익숙한 별이 아니다. 빛과 색, 느낌마저 낯설다.

“오늘 네 번째 궤도를 돌며 맞이한 새 아침, 사하라 사막의 흙먼지가 수백 마일 띠를 이뤄 바다로 쓸려 간다. 뿌옇게 담녹색으로 반짝이는 바다, 뿌연 주황빛 땅, 빛이 울리는 이곳은 아프리카다. 우주선 안에 있어도 빛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을 지난해 수상한 영국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ISS에 머무는 우주비행사 6명이 하루 동안 겪는 감각을 그렸다. 읽는 동안 미국 우주과학자 칼 세이건의 천문학서 ‘창백한 푸른 점’(사이언스북스)이 떠오를 만큼 아름답고 기이하다.

ISS는 시속 약 2만8000km로 지구 궤도를 돈다. 그 덕에 ISS에선 하루에 해가 16번 뜨고 진다. “90분마다 아침이 찾아오는” 환경 속에서 비행사들은 시간의 경계조차 흐릿하게 느낀다. 실험과 운동, 우주유영이 반복되지만, 비행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늘 창 너머의 지구다.

저자는 비행사들의 감각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무중력 공간에서 육체는 방향을 잃고 시간도 모호해진다. ISS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정물화처럼 고요하다. “왼발 아래는 프랑스, 오른발 아래는 독일, 손끝으로는 중국 서부를 가린다”는 표현처럼 지구는 작게 느껴진다. 지구는 때때로 빛과 색의 흐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구는 빛으로 만들어진 환영 같았다.”

ISS에서는 국경도, 이념도 사라진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비행사들은 협력해 움직인다. “하나의 유기체처럼” 행동한다. 작은 우주정거장 안의 조화는 국가 간 이해관계로 위기를 겪는 지구의 모습과 대비된다.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에 길게 쭉 뻗은 빛의 자취. 문명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은 그뿐이다.”

특별한 사건은 펼쳐지지 않는다. 외계인의 침략도, 기계의 고장도 없다. 사건보다 감각, 서사보다 분위기를 좇는다. 마치 종교 경전이나 철학서처럼 느껴진다. 작품에서 한 비행사는 묻는다. “우주에서 신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이 책이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낯선 곳으로 떠나는 문학을 통해 자신을 겸허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않았던가. “세계를 낯설고 새롭게 만드는 기적”(부커상 심사위원단)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실제로 얼마나 작은지”(미국 잡지 뉴요커)에 대한 통찰이 작품 안에 담겨 있다.

저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기간에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제공한 방대한 영상과 사진 자료, 우주비행사들의 회고록과 인터뷰를 참고해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저자는 부커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아이가 처음으로 거울을 보고 그 속 존재가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것과 같다.”

#우주비행사#국제우주정거장#지구 관찰#부커상#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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