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생태계 ‘약체’ 포유류… 지구를 지배하기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5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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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 충돌로 생물 70% 소멸
포유류, 숨어서 잡식하며 버텨
뇌-턱 근육 등 진화하며 생존
◇경이로운 생존자들/스티브 브루사테 지음·김성훈 옮김/624쪽·3만2000원·위즈덤하우스


중생대를 지배한 거대 공룡은 소행성 충돌 이후 대멸종을 피하지 못했다. 공룡들이 사라진 지구에 크기도 형태도 다양한 포유류가 엄청난 속도로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생물의 70%가 소멸한 대멸종에서 포유류는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 고생물학 및 진화학 교수인 저자가 지구 역사상 가장 번성한 포유류의 진화사를 살폈다. 포유류가 어떻게 대멸종에서 살아남아 지금의 지배적인 위치로 진화했는지, 다양한 화석을 증거 삼아 심도 있게 분석한다.

파충류로부터 포유류가 갈라져 나온 석탄기에서 공룡이 멸종한 백악기 말까지, 포유류는 작은 몸집을 유지하며 숨어 지냈다. 공룡들이 생태계에서 큰 동물의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유류는 크기가 쥐나 토끼만 하거나, 커 봐야 오소리만 했다고 한다. 공룡 때문에 기를 못 펴고 살았다. 먹이사슬의 바닥을 차지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건 포유류였다. 역으로 체구가 작아 쉽게 숨을 수 있었고, 다양한 걸 먹을 수 있었던 덕이다. 소행성 충돌 이후 포유류는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특징들을 획득하며 은신처를 나올 준비를 마쳤다. 저자는 털과 젖샘, 측두창(側頭窓·눈의 뒤쪽에 있는 개구부), 턱 근육, 큰 뇌, 큰 어금니가 주요 특징이라고 보고, 각 기관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포유류의 조상 격으로 고생대 석탄기 후기에 살았던 아르카이오티리스의 턱 근육은 ‘씹기 혁신’을 일으켰고 그 덕에 포유류는 먹잇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수궁류가 털을 이용해 열을 보존하게 되면서 포유류의 본질적 특성을 가진 내온동물이 출현했다. 포유류의 역사뿐 아니라 각 시대를 대표한 매력적인 생명체들과 극단적인 진화의 사례도 소개한다. 무게가 20t이 넘던 코뿔소, 네 다리로 걷는 고래, 자동차 크기의 아르마딜로….

화석을 찾으려고 세계를 누비는 고생물학자들의 연구 일상도 가감 없이 담겼다.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이 있다면 세계 어디든 간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 땅을 파헤쳐 얻는 뼈 한 조각의 희열이 있다고 한다.

저자가 밝히듯 ‘인간에 관한 책’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오늘날 존재하는 6000종 이상의 포유류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포유류 진화라는 긴 틀에서 보면 우리는 3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타났던 수백만 종 중 하나일 뿐이다. 책은 10개 장으로 구성됐는데, 인간의 이야기는 마지막 장에서야 나온다.

멸종 동물을 고증한 섬세한 일러스트를 비롯해 다양한 이미지가 120여 장 담겼다. 양막류(羊膜類·양막이 있는 알을 낳는 네발 동물), 이궁류(二弓類·눈 뒤로 턱 근육을 수용하는 구멍이 두 개인 동물), 단궁류(單弓類·구멍이 한 개인 동물) 등 학술 용어가 압박감을 주지만, 네 개의 거대한 날개가 달린 비둘기 크기의 잠자리 ‘메가네우라’, 최초의 천산갑 중 하나인 ‘에오마니스’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공룡#대멸종#포유류#진화#고생물학#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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