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부터 전해온 미신-괴담
전문가들이 학술적으로 설명
◇우리는 모두 조금은 이상한 것을 믿는다/한국 스켑틱 편집부 엮음/384쪽·1만7800원·바다출판사
2006년 한국의 한 학술지 논문에 이런 이야기가 실렸다. 21세 남성이 큰 고통을 겪는 병을 앓게 됐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저승사자가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침대 위로 알 수 없는 여성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는 으스스한 말을 하기도 했다.
2014년 다른 학술지에는 역시 큰 병에 시달린 27세 여성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봤다는 내용이 실렸다. 그 여성은 잠을 잘 때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눈을 뜨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 환자는 밤에 옷을 벗은 채로 다른 사람의 침대에 가서 우두커니 서 있는 기이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납량특집 TV극을 위해 지어낸 허구가 아니다. 의학 학술지에 공식적으로 보고된 내용이다. 아마 조선 시대였다면 정말로 저승사자가 나타났거나 악령이 사람에게 붙어 이상한 일을 벌인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들을 쫓기 위해 신비한 힘이 있다는 사람들을 불러 거하게 굿을 벌이거나 귀한 부적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막대한 비용을 썼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건들이 의학 학술지에 실린 이유는 현대 과학자들이 이런 증세를 일으킨 공통의 진짜 원인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두 연구 모두 증상의 원인으로 추정된 것은 뇌염. 즉 뇌에 세균, 바이러스 따위가 침투하여 뇌를 망가뜨리는 염증 반응을 일으킨 일이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상상 속의 저승사자가 지금 정말로 눈앞에 보인다고 착각하는 뇌의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과거 한국에선 여름마다 뇌염을 일으키는 감염병이 만연했다. 바로 모기가 옮기는 일본뇌염이다. 20세기 중반에는 매년 300∼900명의 한국인이 일본뇌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일본뇌염은 결코 굿을 잘한다고 몰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85년 대대적으로 백신 접종 사업을 벌이면서 일본뇌염은 빠르게 감소했다. 저승사자를 보는 사람들을 구해낸 진짜 해결책이었다.
옛사람들이 신비로운 이야기나 헛된 미신에 매달렸던 이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한 막막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의 동물인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도 어떻게든 설명을 만들어 내고자 애쓴다. 모기가 옮기는 일본뇌염 바이러스를 결코 생각해 낼 수 없었던 시대에는 저승사자나 악귀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라도 만들어 믿으려고 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조금은 이상한 것을 믿는다’는 바로 이런 엉뚱한 믿음과 극복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영역에 걸쳐 모아 정리해 둔 책이다. 혈액형별 성격론에서부터 심령사진 이야기, 만병통치약 같은 물질에 대한 과대광고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문가들의 해설이 모여 있다. 신비롭고 이상한 이야기에 처음 관심을 품기 시작했을 때 찾아보기에 제격인 책이다. 주제별, 분야별로 단락이 나뉘어 있어서 가볍게 끊어 읽기에도 편리한 구성이다. 예전처럼 납량특집 프로그램이 자주 제작되지 않는 요즘, 휴가 때 즐길 책으로도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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