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리포사’에서 그레고리오 선생님(가운데)은 나비를 관찰하며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나비의 혀에 대해 설명한다. 동숭아트센터 제공
한시의 이미지는 단순한 실재의 반영에 그치지 않고 시인의 미래를 암시하는 징조로 해석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남용익(南龍翼·1628∼1692)의 시에 나오는 나비도 그런 예 중 하나다.
시는 알에서 태어난 누에가 애벌레가 되어 자란 뒤 고치를 지어 나비(실제론 나방)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읊고 있다. 시인이 어린 시절 어떤 어른의 요청으로 누에를 주제로 즉석에서 지은 시라고 한다. 그 어른은 시를 칭찬하며 장차 높은 자리에 오르겠지만 마지막 구절들을 볼 때 끝이 좋지 못할 것 같다고 예상했는데, 과연 시인은 대제학까지 올랐지만 말년에 적대 당파의 탄핵을 받아서 유배지에서 삶을 마치게 됐다고 한다(李宜顯, ‘雲陽漫錄’). 장자의 ‘호접몽(胡蝶夢)’과 연결시킨 나비로의 변신이 불길한 미래의 징조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호세 루이스 쿠에르다 감독의 ‘마리포사’(1999년)에서는 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비가 비극의 상징이 된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소년 몬초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부조리한 세상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나비는 몬초가 믿고 따르는 고매한 인품의 공화주의자 그레고리오 선생님과 등치된다. 아이들에게 늘 자연의 신비와 자유의 가치를 일깨워 주던 선생님은 프랑코의 쿠데타로 인해 파시스트들에게 붙잡혀 간다. 몬초는 선생님을 태운 트럭을 쫓아가며 부모님의 강요대로 돌을 던지며 욕하면서도 선생님이 가르쳐준 ‘프로보시스’(나비의 혀)란 말을 함께 외친다. 몬초가 멀어져 가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나비에 대한 시를 많이 남긴 당나라 이상은은 일찍이 가을이 와 예정된 종말이 가까워진 나비로 자신의 불행한 신세를 한탄한 바 있다(‘蜨’). 가을 나비의 슬픈 운명처럼 영화와 한시 속 나비 이야기도 각각 소년의 눈에 비친 불투명한 미래와 잔혹한 현실에 대한 우화라고도 볼 수 있다. 영화 속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나비의 혀’가 부정한 현실 속 자유에 대한 염원과 좌절을 나타냈다면, 한시 속 애벌레로부터 나비로의 변화와 혼돈은 시인 자신의 성장과 불투명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 읽힌다. 길상(吉祥)으로 받아들여지던 나비 이미지가 한시와 영화에서 전복된 결과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