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당시 ‘특별 군사 작전’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전쟁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을 막으려는 러시아의 침략적 의도가 다분했다.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테러 용의자들에게 ‘고강도 심문 기법’을 이용했다는 발표를 한다. 이 역시 거창해 보이지만, 비밀 감금 시설에서 가혹한 물리적 심리적 심문 즉 ‘고문’을 했단 뜻이다.
이 책은 이처럼 언어가 얼마나 교묘하게 진실을 왜곡하고 현실을 숨길 수 있는지를 다룬다. 제목 ‘더블스피크(doublespeak)’는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묘사한 ‘신어(newspeak)’와 ‘이중사고(doublethink)’를 결합해 나온 용어다. 실제 의미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하거나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감추거나 왜곡하는 언어 표현을 일컫는다.
책에 따르면 더블스피크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불쾌하거나 부정적인 사실을 부드럽고 긍정적으로 표현해 직접 언급을 피하는 ‘완곡어법’, 특정 집단이나 기관에서 사용하는 어려운 용어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게 해 실상을 숨기는 ‘전문용어’, 정부 문서에서 흔히 쓰는 과도하게 장황하고 모호한 문장인 ‘관료적 언어’, 실제보다 더 웅장하거나 중요하게 보이도록 표현해 실체를 왜곡하는 ‘과장된 표현’ 등이다.
이러한 더블스피크는 정치판이나 관가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책은 기업 운영이나 광고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분야에서도 맞닥뜨릴 수 있는 더블스피크의 사례를 충실히 보여준다. 이를테면 월스트리트에선 주식시장이 절대 ‘무너졌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기술적 조정’, ‘후퇴’, ‘완화’ 등을 자주 쓴다.
또 치약 광고는 ‘충치를 예방해 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 책임을 회피한다. 저자는 이런 더블스피크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대중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무기임을 여실히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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