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윌리엄 달림플 지음·최파일 옮김/656쪽·3만7000원·생각의힘
1765년 8월 무굴 제국의 젊은 황제 ‘샤 알람’은 영국의 한 무역 회사와 ‘알라하바드 조약’을 맺었다. 황제는 당시 많지 않은 금액이던 260만 루피를 대가로 이 회사의 정복을 인정하고 세금 징수 권한까지 넘겼다. 이 회사가 바로 ‘동인도회사’다.
영국과 인도 역사를 탐구해온 저자가 무굴 제국의 몰락과 동인도회사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린 책이다. 동인도회사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참조했다고 한다. 학술서에 가까운 무게감을 지닌 덕에 정밀함이 높다. 저자는 “동인도회사는 영국 정부보다 먼저 ‘제국’이 된 최초의 초국적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무굴 제국이 몰락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내부 정치’를 꼽았다. 무굴 제국은 동시대 오스만 제국의 4배가 넘는 인구를 가진 거대한 나라였다. 하지만 내부의 권력 다툼에다 황제와 지방 토착세력의 끊임없는 내전으로 국가 역량은 갈수록 소진돼 갔다.
이는 동방 무역을 확대하려던 동인도회사엔 절호의 기회였다. 회사는 무굴 제국의 소왕국들을 차례로 굴복시켜 식민지로 삼았다. 그러다 1764년 무굴 제국의 3개 대군과 맞붙은 ‘북사르 전투’에서도 승리하며 인도에 대한 지배가 현실화됐다. 3개 대군 중 한 축인 샤 알람 황제가 전투 내내 비밀리에 교신했던 회사와의 관계를 복구하기 위해 알라하바드 조약을 맺은 것이다.
문제는 동인도회사가 주식회사란 점이었다. 회사가 무굴 제국으로부터 행정권을 넘겨받은 순간에도, 통치의 제1기준은 ‘주주의 이익’이었다. 이에 세금은 끝없이 늘었고 지역 경제는 피폐해졌다. 극심한 기근으로 수많은 이들이 아사하는 와중에도 동인도회사는 과세 산정액을 높이기도 했다.
이런 과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뭘까. 저자는 이를 통해 오늘날 기업 권력의 오남용에 대해 경고한다. 특히 거대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이 과거 동인도회사와 닮았다고 지적했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충분하지 않거나 대기업의 구매력이 정부의 재정을 능가하는 약한 국가들은 특히 위험하다. 지금 동인도회사 이야기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현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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