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인류는 원래 짙은 피부색 가져
인류 유전체 염기서열 99.9% 동일
◇나쁜 유전자/정우현 지음/396쪽·2만2000원·이른비
어느 과학이라고 양면성이 없겠느냐만 엇나간 유전학만큼 세계사에 악영향을 끼친 것도 없다.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일으키는 사상적 근거가 된 게 바로 우생학이 아닌가. 분자생물학자인 덕성여대 교수가 유전자에 대한 무지와 편견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오래전부터 온갖 차별과 갈등의 원인이 돼 왔고, 오늘날에도 ‘블랙 라이브스 매터(BLM)’ 운동이 필요할 만큼 영향이 큰 인종은 어떨까. 인류라는 같은 종(種) 내에 하위집단인 아종(亞種) 같은 걸까. 저자에 따르면 ‘전혀 아니다’.
4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현생인류는 원래 피부색이 짙었다. 어두운 피부색은 강한 태양광을 잘 막아줬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 진출한 고위도 지방에선 태양광을 더 잘 흡수하는 밝은 피부가 생존에 유리했다. 그래서 멜라닌 색소를 덜 만드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 이들이 강한 생존력을 가진 후손을 남겼다. 오늘날 대부분의 유럽인과 상당수 아시아인에게서 이 변이가 발견된다.
피부색의 의미는 딱 그 정도다. 사람들은 피부색이나 눈동자, 입술 등 눈에 잘 띄는 것을 가지고 인종을 구분하려 하지만 생물학적인 근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인류는 사실상 ‘클론’에 가깝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모든 유전체에 걸쳐 염기 서열이 99.9% 똑같다. 이렇게 동일한 종은 포유류 중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인종은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책은 범죄와 폭력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나쁜 유전자의 실체,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바꾼 유전적 변화 등을 조명했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와 그것을 억제하는 유전자 사이의 힘겨루기도 살폈다. 이 같은 서술을 통해 저자는 “우리의 유전자는 우월함이나 열등함의 원인이 아니라 다양함의 원천”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특히 요즘 확산하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믿음은 인간의 수많은 가능성을 닫아버릴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우리의 삶에 우연성이 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수록 삶은 활기가 넘친다. 내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도전의식과 각오가 생긴다. 타인과 연대할 필요를 느끼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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