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정의선, 젠슨황 엔비디아 대표가 회동하기로 한 서울 강남구 깐부치킨 삼성점에 30일 오후 5시 30분 기자들이 몰려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가이드라인 제시와 풀단 구성
오후 6시 반경, 엔비디아 측 홍보담당자들과 한국 기업 홍보팀 직원들이 기자들과 조율을 위해 나왔다. 주로 엔비디아 측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한국 기업 홍보팀이 기자들과 구체적인 풀단(full-team) 구성을 논의했다. 방송 영상용 카메라맨 1명, 신문사진기자 2명, 취재기자 5명으로 풀단을 구성하라는 주문이 있었고, 많은 기자들이 그 가이드라인을 받아들였다.
기자단 사이에 잠깐 안도감이 흐른 순간이었다. “아, 이번엔 홍보팀이 확실히 정리를 잘 했구나” 하고 말이다.
● 돌발 변수의 등장
그러나 그때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풀 취재 필요없이 치킨집 창가 쪽 문을 열어 많은 기자들이 밖에서 세 명의 CEO 회동을 찍을 수 있게 하겠다던 새로운 안이 제시되었고 기자들로서는 더 좋은 제안이었다. 그런데 황이 도착하기 5분 쯤 전, 엔비디아 측 경호팀이 “문을 열지 않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내부 경호 쪽에서 창가-문 동선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였다. 이로 인해 처음 정해졌던 풀단이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런데 엔비디아 경호팀이 한국 기자들을 외국 기자와 구별하지 못하면서 풀단조차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마침 뒤편에서 VIP출현을 암시하는 환호성이 터졌고, 경찰이 뒤늦게 인파를 정리하려 호각을 불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혼잡해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0일 저녁 서울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을 마친 후 취재진 및 시민들에게 치킨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예상치 못한 셔터 찬스 풍년
오후 7시 25분경, 세 회장이 자리를 잡고 본격 회동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돌발이 있었다. 황이 반팔 차림으로 밖으로 나왔고, 시민들에게 무언가를 나눠주는 모습이 연출됐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김밥이었다. 기자와 시민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외부로 집중됐다.
그가 치킨집 안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이번에는 치킨 조각을 들고 다시 나왔다. 취재진은 3인 회동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그야말로 폭풍처럼 기록할 분량이 주어진 셈이었다.
젠슨 황(왼쪽부터)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서 회동을 갖고 러브샷을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치킨집 사장님도 이날의 히어로 중 하나였다. 세 명의 회장이 내민 커다란 치킨 사진 옆에 연달아 사인을 남기고, 매상이 올라간 것은 물론 현장 사진에도 담겼다.
● 코엑스까지 걷겠다고? 우려 속 동선
회동을 마친 세 회장은 처음에는 다음 일정으로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GeForce Gamer Festival)을 위해 코엑스로 걸어가겠다는 언급이 있었지만, 한국 상황을 잘 모른 무모한 플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동선이 변경되어, 들어왔던 길의 반대편에 주차된 검은색 밴을 타고 다음 행사장으로 떠났다. 오후 8시 40분이었다.
● 폭풍 같았던 등장과 퇴장
소맥 러브샷을 나누고, 시민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고, 인파 속을 걸어든 AI 칩업계의 거물의 모습에서 여러 생각이 스쳤다.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한 황CEO는 생각보다 많은 방송/사진 분량을 확보했다. 어쩌면 세상을 상대로 자신의 비즈니스를 알려야 하는 그와 참모들에게는 이런 퍼포먼스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분명 고단수였다.
이재용, 정의선과 회동하기로 한, 젠슨황 엔비디아 대표가 서울 강남구 깐부치킨 삼성점에 30일 오후 8시 경 시민들에게 치킨을 나눠주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취재 현장에서는 ‘계획된 사진 연출’과 ‘돌발 메이킹 포인트’가 혼재했다. 홍보팀이 사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음에도 경호 및 현장 변수 하나가 계획을 뒤엎었다. 그 반대로, 예상치 못한 순간이 오히려 더 강렬한 사진과 영상을 만들어냈다. 사진기자 입장에서는 이 변화 자체가 기회였고, 아마 보는 시청자와 독자들도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시총 만큼 강렬했던 젠슨 황의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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