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17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결정을 두고 ‘위험 관리 인하(risk management cut)’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장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에 큰 변화는 없지만, 미국 경제의 고용 둔화 조짐을 반영해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는 뜻이다.
이날 연준은 지난해 12월 금리 동결 이후 9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연 4.0∼4.25%로 낮추면서 추가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올 10월과 12월에 있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인하가 단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8일 국제금융센터는 주요 10개 글로벌 투자은행(IB) 중 7개가 연내 2회 추가 금리 인하를 예상한다고 밝혔다.
● 고용 냉각에 “위험 관리 차원”
연준은 이날 성명을 통해 두 가지 목표인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 모두 우려스럽다고 진단했다. 7월 물가 상승률은 연준 목표(2%)를 상회하는 2.6%. 연준은 물가에 대해 “인플레이션이 상승했고 여전히 다소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영향이 장기화될 경우 향후 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용에 대해선 기존 성명의 ‘고용 시장이 견고하다’는 표현을 삭제했다. 대신 파월 의장은 “실업률이 소폭 상승했고, 고용에 대한 하방 위험은 이제 현실이 됐다”고 밝혔다. 미국의 8월 기준 실업률은 4년 만에 최고치인 4.3%로 집계됐다. 3개월 평균 일자리 증가 규모는 6월 15만 개에서 8월 2만9000개로 급락했다.
파월 의장은 “역동성이 떨어지고 다소 부진한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 공급과 수요 모두가 현저히 둔화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현 상황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지금은 위험 없는 길이 없다”고 말했다. 기업의 노동 수요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단속으로 공급도 함께 줄어드는 ‘이상한 균형’이 발생했다는 것.
블룸버그통신은 “연준의 노동 시장 평가는 파월이 ‘이상한 균형’이라고 부른 상황 때문에 더 복잡해지고 있다”며 “실제 고용 시장이 얼마나 취약한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 “연준 내년에는 금리 인하 신중해질 듯”
이날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금리 인하)은 이미 시장이 예상한 결과다. 투표권을 가진 12명의 FOMC 위원 중 11명의 찬성으로 결정됐다. 이에 유일하게 반대한 한 명은 ‘트럼프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스티븐 마이런 연준 이사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를 강력하게 지지해온 그는 홀로 빅컷(0.5%포인트 인하)을 주장했다. 친트럼프 성향으로 분류되는 미셸 보먼 연준 부의장과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일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베이비 스텝에 동조했다.
앞서 연준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줄곧 대통령으로부터 금리를 내리라는 강력한 압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지명된 리사 쿡 연준 이사가 해임 위기에 놓인 데 이어, 마이런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연준 이사를 겸직하는 등 전례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한편 연준이 내년에는 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FOMC가) 올해와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모두 기존 대비 0.2%포인트 올려놨다”며 “올해까진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는 금리 인하를 유지하지만 내년에는 금리 인하에 좀 더 신중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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