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통신기기 장사 20년에 이런 난장판 보조금은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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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판매점주의 넋두리

임우선 기자·산업부
임우선 기자·산업부
“이 바닥에서 20년 장사했지만 요즘처럼 시장이 난장판인 건 처음입니다. 이젠 정말 시장을 ‘리셋’해야 할 때란 생각이 듭니다.”

본보 6일자에 보도한 ‘휴대전화 보조금, 하루에도 열두 번 널뛰기’ 기사를 취재하며 1990년대 무선호출기(삐삐) 시절부터 이동통신 업계에 몸담아 왔다는 한 휴대전화 판매업자를 만났다. 그는 기자에게 판매업자의 눈으로 본 이동통신 시장 변천사를 들려줬다.

삐삐 판매업자들은 자신의 자본으로 서울 용산 지역에서 ‘공(空)기계’를 싸게 떼다가 마진을 붙여 팔았다. 전화국에서 고객들의 가입 업무를 대행해 주며 받는 수수료도 마진의 한 축이었다.

이런 담백한 시장 구조는 1997년 개인휴대통신(PCS)폰이 등장하며 바뀌었다. 판매업자가 자신의 돈으로 직접 기기를 확보하지 않고 이동통신사가 대준 휴대전화를 팔게 됐다. 그는 “가입자를 많이 끌어와야 돈을 벌고 그 실적에 따라 보조금도 달라지는 시장 구조가 이때 처음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피처폰’ 시대까지는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대당 가격이 비싸야 수십만 원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만 원대를 호가하는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보조금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는 “스마트폰 갈아타기가 한창이던 2, 3년 전만 해도 대당 수십만 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챙겨 월 1000만 원, 2000만 원씩 수익을 남기는 판매업자들이 꽤 있었다”며 “너도나도 휴대전화 판매업에 뛰어들면서 ‘유령 대리점’이나 ‘호갱’(‘호구 고객’이라는 뜻의 은어)도 대량 양산됐다”고 말했다.

뒤늦게 정부가 과징금, 영업정지 등의 제재 수단을 쓰고 있지만 그는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이렇게 몇 달에 한 번 단속해서는 누가 주도적으로 물을 흐리는 사업자인지 절대로 잡아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 보조금 단속이 시작된 뒤 변한 것이라고는 단속이 뜸한 주말과 단속이 쉽지 않은 온라인 판매점으로 보조금이 몰린다는 점뿐”이라며 “영업정지 조치로 이동통신사를 제재해도 정작 피해는 매장 임차료 내고 직원 월급 주면서도 장사를 못하는 영세 판매업자들이 본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강국’이지만 국민이 IT 서비스를 구매하는 이동통신 시장은 조선시대 저잣거리만도 못하다는 말이 나온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유통 구조만 놓고 보면 ‘삐삐 시절’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우선 기자·산업부 imsun@donga.com
#통신기기#보조금#휴대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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