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이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지정학적 위협 등 예측 가시성이 떨어지는 변수들이 산업에 영향을 끼치며 전망의 난도도 그만큼 높아졌다. 다만 여러 불확실성 속에서도 호황 국면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먼저 한국 반도체 산업이 AI에서 추가 성장의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세대 전환이 지속되면서 내년부터 주류 제품으로 거듭날 HBM4는 D램 수급과 평균 판매가에 긍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HBM이 기존 제품 대비 크기가 큰 만큼 물리적 캐파(생산 능력) 제약 효과가 확대될 것이고, HBM4부터 시작될 커스텀(맞춤 제작) 반도체 양산 시도도 부가가치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AI 전용 제품의 출시도 기회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상호작용하는 중앙처리장치(CPU) 진영에서는 더 빠른 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SO-압축부착메모리모듈(CAMM)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AI 디바이스에서도 같은 이유로 대역폭을 늘린 신제품 혹은 범용 제품의 용량 확대 등이 예상된다.
두 번째로 범용 반도체에 대한 공급 업계의 전략이 변화했다. D램은 선단 제품 중심의 믹스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단기 판매에 손해를 볼지라도 구제품을 빠르게 단종해 선단 제품 중심으로의 구조 변화를 앞당길 계획이고, 이를 통해 중국과의 격차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따라온 구제품인 DDR4, LPDDR4 등의 생산을 급격히 줄이면 구제품 가격은 급등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미국이 잘하는 선단 제품과의 가격 격차는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AI로 제품의 선단화가 지속되고 있는 환경에서 가격 격차까지 줄어든다면 고객 수요 또한 그만큼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이전시키기 용이하다. 중국 D램 업계가 기술적 한계로 고부가가치 제품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러한 전략적 노선 변화는 중국의 추격 위협을 낮출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낸드에서는 공급 정책의 유연화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수요 변화에 좀 더 기민하게 공급 대응을 하고 있으며 점유율보다는 수익성 강화 중심으로 공급의 정책적 노선을 변화해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단기적으로는 가동률 조정을 통해, 중장기적으로는 구제품 라인 철수 등 생산라인 효율화를 통해 수급 환경에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낸드 산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될 위협은 제한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AI와 공급업계의 전략적 변화를 통해 한국 반도체는 추가 성장할 기반을 마련했다. 지속적인 수익성 중심의 경영 전략과 중국의 추격을 물리치기 위한 전략적 협업 등이 앞으로 이 산업의 추가 성장을 이끌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비관보다는 긍정적 시선으로 산업을 바라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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