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못 만드는 미국…법률 하나가 그렇게 만들었다[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30일 10시 00분


“미국 조선산업을 부활시키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이렇게 선언했죠. “조선에 많은 돈을 쓰겠다”며 얼마 전 ‘조선업 재건’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고요. 유독 배에 진심인데요.

왜 그럴까요. 조선업이 해군력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해군 역량을 끌어올리려면 배를 만드는 능력부터 되살려야 한다고 보는 건데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쇠락한 미국 조선업을 들여다보겠습니다.

2024년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의 전경. 한화그룹 제공
2024년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의 전경. 한화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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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세계 최강?
“우리는 예전에 배를 정말 많이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아니지만, 곧 아주 빨리 만들 겁니다.”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한 말입니다. 미국의 잊혀졌던 산업, 조선업을 되살리겠다고 선언한 건데요.

이것만 보면 미국 조선업이 과거엔 아주 잘 나갔는데, 지금은 쇠락한 것만 같죠.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미국이 배를 정말 많이 만들었던’ 그 시절. 그게 도대체 언제일까요? 아마 미국 조선업이 존재감 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요. 왜냐하면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1941~45년 미국은 ‘리버티선’이라 불리는 수송선을 무려 2710척이나 만들었습니다. 기록적인 생산량이었죠. 독일 잠수함 공격으로 배가 부족해진 유럽에서 주문이 밀려든 영향이었는데요. 리버티선은 당시 연합국의 전쟁용 물자 수송을 담당하며 활약했습니다. 이 시절, 미국이 잠시 세계 조선 생산 1위 국가에 올랐죠.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산했던 리버티 선박 중 하나인 존 브라운 호의 모습. 그 시절 미국은 전례없는 속도와 규모로 리버티 선을 생산했다. 위키피디아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산했던 리버티 선박 중 하나인 존 브라운 호의 모습. 그 시절 미국은 전례없는 속도와 규모로 리버티 선을 생산했다. 위키피디아
전쟁이 끝나고 평시로 돌아오자, 미국 조선업은 급속히 쪼그라듭니다. 애초에 전쟁 때문에 잠시 반짝했던 거지, 사실 미국 조선업의 경쟁력 이전부터 별로였습니다. 근로자 임금과 철강 가격 모두 유럽보다 높다 보니 선박 가격도 훨씬 더 비쌌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미국 조선소는 굳이 배를 싸게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국내 시장에선 경쟁이 없었거든요. 1920년 제정돼 10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굳건한 ‘존스법’ 때문입니다.

존스법은 무엇
존스법(Jones Act). 미국 조선산업이 현재 왜 이 지경이 됐나를 논할 때마다 등장하는 법률입니다. 정식 명칭은 상선법(Merchant Marine Act 1920)이지만 당시 대표 발의자 웨슬리 존스 상원의원 이름을 따서 존스법이라 부르죠.

존스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보호무역주의적인 해운 관련 법률로 꼽히는데요. 미국 내 항구를 오가는 선박은 ①미국에서 건조돼야 하고 ②미국인이 소유해야 하고 ③선원의 75% 이상이 미국인이어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이중 특히 ①번, 미국산 배만 미국 내 항구를 오갈 수 있다는 조항이 핵심인데요.

존스법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당연히 미국 조선업을 키우고, 해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장비와 물자를 배로 수송해야 하고요. 그래서 민간 상선이 대거 해군수송선으로 동원되곤 합니다. 평시엔 상선을 몰던 선원들은 전쟁이 나면 군수 물자 수송에 투입되죠.

즉, 전쟁 상황에서 필요한 배와 선원을 즉각 동원하려면 미국산 상선과 미국인 선원이 꼭 필요하니까, 미국 조선업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게 존스법 논리였습니다.

미국 조선업은 2차 세계대전 때 반짝 하고 곧 가라앉았다. 1970년대 미국은 일본과 협력해서 조선업을 다시 재선하려 했지만, 석유파동과 경기침체 여파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82년 레이건 정부가 미국산 선박 구매자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폐지하면서 조선업의 존재는 더 희미해진다. 미국 조선업 협의회 제공
미국 조선업은 2차 세계대전 때 반짝 하고 곧 가라앉았다. 1970년대 미국은 일본과 협력해서 조선업을 다시 재선하려 했지만, 석유파동과 경기침체 여파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82년 레이건 정부가 미국산 선박 구매자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폐지하면서 조선업의 존재는 더 희미해진다. 미국 조선업 협의회 제공
그래서 실제론 어떻게 됐을까요. 미국산 상선 가격이 자꾸만 치솟습니다. 왜? 미국 배가 아무리 비싸도 미국 내 항로를 이용하려면 해운업자는 그걸 살 수밖에 없거든요. 조선업계는 외국 업체와 수주 경쟁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 놓고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있게 된 거죠.

1920년대에도 미국에서 제조한 배가 다른 나라보다 20% 정도 비싼 편이었는데요. 가격 차이는 점점 벌어져서 1930년대엔 30%, 1950년대엔 100%가량 비싸졌죠. 지금은? 미국산 선박은 국제가격의 4배쯤 됩니다.

동시에 미국 조선업의 제조 역량은 후퇴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해외 시장 진출은 포기하고, 마진 높고 안정적인 국내 시장에 안주했기 때문이죠.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배를 마치 레고 블록 조립하듯이 만드는 ‘대형 블록 건조’ 기술입니다. 이 기술 덕분에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리버티선 한 척을 짧게는 며칠 만에 뚝딱 만들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미국 조선사 상당수는 문을 닫았고, 제조법도 이전 방식으로 되돌아갑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없었던 거죠.

이 기술은 엘머 한(Elmer L. Hann)이라는 미국인 조선소 관리자를 통해 일본으로 전수됐고요. 이 신기술과 일본 정부의 지원 덕분에 일본 조선업은 급성장을 거둡니다. 1956년 일본은 그때까지 조선업계를 지배했던 영국마저 제치고 세계 최대 조선 강국이 됐죠.

100년의 실패
존스법은 법이 의도했던 목적과 정 반대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국 조선업계는 경쟁을 멈췄고 선가는 올라갔고요. 미국 국내 해상운송 역시 점점 쪼그라들고 경쟁력을 잃어갔죠.

숫자로 비교하면 더 명확한데요. 미국의 선박 생산량은 1950년대보다 85% 감소했습니다. 1970년대엔 전 세계에서 건조된 선박 중 5%가 미국 조선소에서 생산됐는데요(총 톤수 기준). 이젠 고작 0.1% 수준입니다. 그래프를 그리면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이죠(아래 그래프 참조). 최근 미국 조선소는 상업용 선박을 연간 3~5척을 생산할까 말까인 수준이고요. 당연히 수십년 동안 미국산 대형 선박의 해외 수출은 없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엔 미국 연안 무역에서 약 400척의 선박이 운항했는데요. 이젠 존스법을 준수하는 선박은 100척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트럭 운송과의 경쟁에서 해운업이 뒤쳐진 거죠.

그로 인한 부작용은 적지 않은데요. 예컨대 하와이에서 ‘콜로아 럼’이란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업가 밥 건터는 제품을 호주로 처음 수출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하와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편도 운송비용이 5000달러로, LA에서 시드니까지 가는 비용 1900달러보다 훨씬 비쌌죠. 국제 해상운송과 달리, 하와이와 LA 사이 국내 운송은 존스법 적용을 받아서 생긴 일입니다.

같은 이유로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는 액화천연가스(LNG)를 미국이 아닌 나이지리아에서 수입해옵니다. 미국에서 천연가스를 운송해줄 존스법 준수 미국산 선박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럼 존스법은 국가 안보에는 도움이 됐을까요? ‘전쟁을 하려면 자국 선박과 선원이 필요하니까 조선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은 그럴 듯한데요. 실제 결과는 그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1990~1991년 걸프전쟁을 보면 알 수 있죠. 당시 미군은 중동으로 군수품을 수송하기 위해 외국국적 선박 177척을 빌렸습니다. 동원할 미국산 선박이 너무 모자랐기 때문이죠. 심지어 너무 급해서 소련 국적 화물선 사용을 요청했다가 두번이나 거절 당했다고 하죠.

미국 위스콘신의 핀칸티에리 마리네트 마린에서 건조 중인 해군 군함의 모습. AP 뉴시스
또 ‘사막의 방패’와 ‘사막의 폭풍’ 작전 수행을 위해 미군은 4200명의 상선 선원을 급히 모집했는데요. 그들은 누구였을까요? 대부분이 은퇴한 고령의 전직 선원들이었다고 합니다. 미군 공식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이 60, 70대였고요. 80대도 두명 있었고, 심지어 최고령 선원은 92세였다고 하죠.

배는 급하면 다른 나라에서 빌려올 수 있지만, 군사작전인데 외국인 선원을 쓸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존스법으로 인해 해운업과 조선업이 하나로 묶인 탓에 둘다 역량이 쪼그라들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케이토연구소는 2019년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죠. “존스법은 미국 조선업을 2류로 전락시켰습니다. 100년 간의 실패 끝에 이제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건조능력 230배의 격차
조선업은 기본적으로 많은 육체노동자가 필요한 노동집약적 산업입니다. 세계 최대 조선 강국의 지위가 1950년대 영국에서 일본으로 2000년대 일본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2010년대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 이유인데요.

중국은 2006년 제 11차 국가 5개년 경제 계획에서 조선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고 처음 명시했고요. 이후 저렴한 인건비와 철강가격,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폭풍성장합니다. 2007년 18%였던 중국의 세계시장 점유율(건조량 기준)은 지난해엔 55.7%로 불어났죠. 수주량 기준으로는 중국의 점유율이 지난해 70%에 달했습니다. 중국의 총 건조능력은 2300만t. 미국(10만t)의 230배이죠. 어마어마한 격차입니다.

중국 장쑤성 난퉁시에 있는 조선소의 모습. 신화통신 뉴시스
조선업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죠. 대형선박을 건조하려면 고품질 철강, 초대형 크레인, 선박 엔진 등 각종 부품 산업까지 뒷받침돼야 합니다. 거대한 중공업 시스템이 필요한 건데요. 즉, 미국에서 배를 만든다는 건 비싼 미국산 철강을 쓰면서 높은 관세가 부과되는 수품 부품과 자재에 의존해야 한단 뜻이죠. 영국 런던시립대 마이클 탐바키스 교수가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건 무의미하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업”이라고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해군 함대 규모는 냉전 종식 이후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군함 수로 따지면 미국은 이미 중국에 한참 뒤집니다. 현재 유인 군함(군수지원함 포함) 보유 수는 미국 295척, 중국 400척이죠. 물론 항공모함(미국 11척, 중국 3척)와 핵잠수함(미국 66척, 중국 12척)에선 미국이 훨씬 앞서기 때문에 질적으론 미국이 한수 위이지만요.

미국 군함은 양이 적을 뿐 아니라 노후화되기도 했습니다. 중국 군함은 70%가 2010년 이후 진수된 신형인데 비해, 미국 군함 4대 중 3대는 15년 이상됐으니까요. 이 격차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얘기는 몇년 전부터 해군에서 꾸준히 나왔습니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위기감을 더 부추겼죠. 미국 해군은 최근 2045년까지 군함을 381척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공개했는데요.

미국(파란색)과 중국(빨간색) 전투함의 진수 시기를 비교한 그래픽.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만들어진 노후한 군함이 많은 미국과 달리, 중국은 대부분이 2010년 이후 선박이다. CSIS
미국(파란색)과 중국(빨간색) 전투함의 진수 시기를 비교한 그래픽.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만들어진 노후한 군함이 많은 미국과 달리, 중국은 대부분이 2010년 이후 선박이다. CSIS
너무 도전적인 목표치입니다. 미국 법에선 외국 조선소에서 해군 선박을 조달하는 걸 금지하고 있죠(단, 대통령이 면제할 수 있음). 미국 조선소는 배를 만드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비용도 비쌉니다. 미국 해군의 브렛 사이들 차관보는 의회에서 “(해군 선박) 납품이 약 1~4년 지연되고 있고, 비용은 물가상승률보다 빠르게 계속 상승 중”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많은 배를 만들어낼 능력도, 인력도 미국엔 사실상 없습니다. 미국이 동맹국, 특히 한국 조선업계로 자꾸 눈을 돌리는 이유인데요. 미국 의회엔 이미 동맹국 조선소에서 군함을 건조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죠. 존스법을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요.

하지만 업계의 반대가 만만찮을 겁니다. 미국 조선업 협의회는 물론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미국 최대 군용 조선소), 제너럴 다이내믹스(미국 잠수함 제조사) 같은 기업까지. 뿌리 깊은 이해 관계로 얽혀있는 이들이 워낙 많거든요. 과연 트럼프 행정부는 보호무역주의 장벽으로 단단히 둘러쌓인 미국 조선업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아직 많은 것이 미정이고 아마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그래도 한국 조선업을 둘러싼 기대감은 커져만 가는 분위기네요. By.딥다이브

‘트럼프는 왜 이렇게 조선업에 관심이 많지?’ 요즘 이 질문을 하는 이들이 주변에 종종 있더군요. 단순히 ‘중국보다 군함 수가 너무 적어서’라고 한마디로 설명하기엔 좀더 긴 이야기라 다뤄봤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선업 부활”을 선언했습니다. 미국 조선업의 전성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대. 전후 미국 조선업은 빠르게 가라앉았고, 이제 전 세계 선박 건조량 중 고작 0.1%만 차지합니다.

-미국 안에선 미국산 선박만 운항할 수 있다는 ‘존스법’. 미국 조선업 보호를 위해 105년 전 제정된 이 법이 조선업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미국 조선사는 마진 높은 국내시장에 안주하면서 생산성도, 기술력도 후퇴했습니다.

-이제 군함 수에서 미국은 중국에 밀립니다. 이제라도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조선업 생산능력을 끌어올려야 하는데요. 느리고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조선업이 이를 해내기엔 역부족입니다. 자꾸 한국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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