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스포츠 브랜드 1위이자 패션 브랜드 1위. 어디인지 아시겠죠? 바로 나이키(Nike)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매출과 시장점유율이 쪼그라들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그야말로 암흑기를 지나는 중이죠. 지난해 10월 CEO가 갑자기 교체된 이후 ‘재건’ 작업이 한창인데요.
잘나가던 나이키를 극적으로 망친 건 잘못된 경영전략입니다. 전임 존 도나호 CEO의 과도한 ‘DTC(Direct-to-Consumer, 소비자 직접판매) 전략’이 그 중심에 있는데요. 불과 3년 전만 해도 DTC는 ‘나이키의 놀라운 성공 비결’로 칭송받았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평가가 이렇게 완전히 뒤집혔을까요. 오늘은 1등 브랜드 나이키의 패착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최근 나이키가 아마존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세계 1등 패션 브랜드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재결합 선언이죠. 2019년 11월 나이키가 아마존에서 철수한 지 6년 만입니다.
이로써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듯합니다. 6년 전 나이키의 아마존 철수는 나이키 전략 변화의 중요한 신호탄이었거든요.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엔 그해 10월 나이키 차기 CEO로 발탁된 존 도나호가 있었습니다. 베인앤컴퍼니 컨설턴트와 이베이 CEO를 지낸 디지털 전문가, 도나호 CEO의 과감한 베팅은 큰 관심을 끌었는데요.
2019년 10월 마크 파커(왼쪽)의 뒤를 이어 나이키 CEO로 임명된 존 도나호(오른쪽). 나이키 디자이너 출신인 파커와 달리, 도나호는 컨설턴트와 이베이 CEO를 지낸 외부 출신으로 운동화나 패션 업계엔 문외한인 디지털 경영 전문가였다. 나이키 제공그의 전략은 간단하면서도 과감했습니다. 취임 직후 도나호 CEO는 “도매 중심이 아닌 DTC(소비자 직접 판매) 중심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죠. 중간 유통업체를 통하지 않는 직접 판매, 그러니까 나이키 자체 매장과 자사몰 ‘nike.com’ 판매에 집중하기로 한 겁니다.
이를 위해 나이키는 도매로 제품을 공급해 왔던 소매업체 30%가량과 거래를 끊었습니다. 2020년 말 자포스·메이시스·어반아웃피터스·디자이너브랜드 같은 미국 대형 판매업체에도 납품을 중단했죠. 남은 소매업체에 판매하는 물량도 줄입니다. 인기 있는 프리미엄 제품은 자체 매장에서만 팔고, 풋로커 같은 소매점엔 제공하는 상품 수를 줄인 거죠.
이런 DTC로의 급격한 전환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요. 보통 DTC의 장점으로는 제조업체가 고객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고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히는데요. 실제 DTC 전략이 각광받는 중요한 이유는 이겁니다. 마진 극대화. 중간 판매업자를 제거하면 그 몫까지 제조업체가 모두 챙길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단기간에 이익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죠.
DTC는 당시 전자상거래 업계의 큰 화두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DTC를 표방한 브랜드가 마구 쏟아져 나왔고요. 소셜미디어 시대와 함께 ‘DTC 혁명’이 찾아왔다는 식의 그럴싸한 분석이 이어졌죠. 안경 판매점 와비파커, 신발 브랜드 올버즈 같은 DTC를 전면으로 내세운 소매 브랜드가 각광받았고요. 그 최신 유행에 나이키가 올라탄 겁니다.
DTC 혁명이라고?
한동안 나이키 DTC 전략은 대성공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매장이 죽을 쑤던 와중에 나이키의 온라인 판매는 급증합니다. 공식 온라인 몰 가입자 수가 1년 만에 7000만명 늘었죠.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직장인 패션 트렌드가 구두 대신 편안한 운동화 중심으로 바뀐 것도 나이키 매출 증대에 한몫했고요.
특히 2021년 초 나이키가 1980년대의 로우탑 농구화를 부활시켜 내놓은 게 적중합니다. ‘판다 덩크’로 불리는 이 농구화(정식 명칭은 나이키 덩크 로우 레트로)는 중고 판매가가 제품가격의 3배에 달했을 정도로 리셀(Resell) 열풍을 일으키며 대히트를 쳤죠.
한국에선 ‘범고래’로 불린 흑백의 ‘판다 덩크’는 2021년 나이키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이에 힘입어 나이키는 색색깔의 덩크를 속속 선보였지만, 이는 희소성이란 가치를 훼손해 오히려 브랜드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나이키 제공나이키는 오래전부터 브랜드 이미지 광고로 유명한 기업이죠. 직접적으로 제품을 드러내기보다는 스포츠와 브랜드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강렬한 광고를 대대적으로 해왔는데요. 도나호 CEO는 DTC 전략에 맞춰 ‘데이터·디지털 중심’ 마케팅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모호한 메시지의 이미지 광고보단 돈을 쓰는 데 비례해 클릭 수가 늘어나는 퍼포먼스 마케팅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죠. 이 역시 처음엔 눈에 보이는 효과가 뚜렷해 보였습니다.
2021년 6월, 나이키는 분기(3~5월) 매출이 1년 전보다 96%, 순이익은 291%나 증가했다고 발표합니다. 월가는 열광했고, ‘도나호가 나이키를 구했다’는 찬사가 이어졌죠. 이코노미스트지는 “나이키가 신성한 ‘일대일 세계’를 재창조했다”면서 DTC 전략을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주가는 급등세를 탔고 2021년 11월엔 사상 최고치(177달러)를 찍었죠. 주가가 오르면 막대한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었던 도나호 CEO는 돈방석에 오릅니다.
이듬해인 2022년에도 겉보기엔 나이키는 순항하는 듯했습니다. 매출은 꾸준히 늘었고, 매출 총이익률은 2년 연속 높아졌으니까요(2020 회계연도 43.4%→2022 회계연도 46%).
하지만 조금씩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애플이 개인 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앱 추적 투명성’ 정책을 도입하면서 디지털 마케팅 효율이 급격히 떨어졌고요. 동시에 나이키가 떠안는 재고가 점차 불어납니다. 도매 판매를 위주로 할 땐 재고는 유통업체가 알아서 하니까 신경 쓸 일이 없었는데요. 직접 판매 구조에선 나이키가 이를 직접 관리해야만 하게 된 겁니다.
무엇보다 심상찮은 조짐은 오프라인 소매 매장에서 나타났습니다. 풋로커 같은 소매점들이 나이키의 빈자리를 아디다스·뉴발란스·푸마·리복 같은 경쟁업체와 호카(Hoka)·온(On) 같은 후발업체 제품들로 빠르게 채워갔고요.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그 매장에서 나이키 제품은 점점 덜 눈에 띄게 됐습니다.
재고 폭탄이 터지다
돌이켜 보면 나이키는 이때라도 노선을 바꿨어야 합니다. 하지만 존 도나호 CEO는 주주들에게 “핵심 사업 계획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계속 이야기했고요. 디지털 투자를 더 강화해야 한다면서 Nike.com에 더 많은 마케팅 예산을 쏟았죠.
2021년 11월 177달러로 정점을 찍은 나이키 주가는 이후 내리막을 탔다. 현재 주가는 60달러로, 201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구글 금융재고를 떨어내고 판매를 끌어올리기 위한 할인이 남발됩니다. 시즌 종료 세일, 미드시즌 세일, 연말 세일, 회원 전용 세일, 친구·가족 세일 등등. 일 년 내내 할인 이벤트가 벌어졌죠. 그래서 결과는? 2023 회계연도에 접어들자 재고 물량이 나이키 역사상 최고 수준(97억 달러)으로 불어납니다. 과도한 할인 판매 탓에 매출 총이익률은 43.5%로 뚝 떨어졌고요. 갈수록 늪에 빠지고 있었죠.
동시에 러닝화 시장에선 호카(Hoka)와 온(On) 같은 업체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옵니다. 2019년 고작 2억2000만 달러였던 호카 매출액은 2024년 20억 달러로 불어났고요, 같은 기간 온러닝 매출도 2억8600만 달러에서 28억 달러로 성장합니다. 물론 두 브랜드 매출을 합쳐봤자 여전히 나이키의 10분의 1 수준이긴 한데요. 2019년만 해도 1%밖에 안 될 정도로 미미했던 후발업체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나이키 영역을 잠식한 겁니다.
러닝화 브랜드 호카와 온은 선두업체 나이키가 스스로 소매매장 진열대에서 내려온 덕분에 쉽게 그 빈자리를 무섭게 파고들 수 있었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러닝 열풍이 분 것도 두 브랜드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온러닝 제공나이키는 도나호 CEO의 소위 ‘데이터 중심’ 전략에 따라 선수용 기능성 운동화보단 잘 팔리는 일상용 운동화에 집중했고요. 덩크·에어포스1·에어조던1 같은 1980년대에 만들어진 명작을 재탕하기 바빴는데요. 갖가지 색깔로 끊임없이 출시되는 덩크에 소비자들은 2년 만에 질려버렸고요. 나이키엔 혁신적인 신제품이 없다, 팔릴 만한 제품이 안 보인다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2023년 말, 실적이 흔들리자 도나호 CEO는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 2% 감축에 나섭니다. 성과급 명목으로 연간 약 3000만 달러를 받아 가는 CEO가 비용을 줄이려고 직원을 자른다니. 회사 분위기는 더 엉망이 됐죠.
2024년 4월, 도나호 CEO는 CNBC 인터뷰에서 “도매판매에서 의도보다 훨씬 더 많이 멀어졌다”며 실책을 인정했고요. 이어 연간 실적이 발표된 2024년 6월 28일, 나이키는 1980년 상장 이후 최악의 하루를 맞이합니다. 분기 매출이 10%나 감소할 거란 전망에 이날 하루 주가가 20% 급락하면서 시가총액 275억 달러(37.7조원)가 사라졌죠.
스스로 초래한 재앙
초반엔 잘 먹히는 것 같았던 나이키 DTC 전략은 왜 고작 2년여 만에 급격히 힘을 잃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애초에 DTC 올인 전략 자체가 결함투성이였던 거죠.
제조업체가 중간 유통업체 없이 직접 고객에게 제품을 팔면 마진이 높아진다? 이론적으론 맞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죠. 직접 판매라는 건 물류·배송은 물론 재고 관리, 고객 서비스까지 제조업체가 직접 해야 한단 뜻입니다. 그런 경험이 별로 없는 나이키는 폭발적인 재고 증가를 처리하지 못해 허둥지둥 댔죠. “그들이 마침내 깨달은 것은 (DTC는) 중개인을 없애는 게 아니라 중개인이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한다는 겁니다.”(시메온 시겔 BMO캐피털마켓 수석 애널리스트)
소비자의 구매 습관을 바꾼다는 건 원래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사몰 앱을 만든다 해도, 그게 모든 고객에 통할 순 없죠. 게다가 소비자들의 충성도란 기업이 생각하는 것만큼 높지 않기도 합니다. 그게 무려 나이키라고 해도요.
미국 오리건주 비버턴의 나이키 본사. 나이키 제공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많은 고객은 나이키 온라인몰에 들어가는 대신 여전히 다니던 백화점과 쇼핑몰 운동화 매장에서 쇼핑했고요. 거기서 나이키 제품이 보이지 않자, 그냥 다른 브랜드 운동화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아마 이런 반응을 보였겠죠. 이 브랜드도 괜찮은데? 그렇게 나이키는 매출을 잃어갔습니다. “그들(나이키)은 이 점을 과소평가했습니다. 나이키 브랜드의 힘에 대해 약간 오만했던 거죠.”(닐 손더스 글로벌데이터 리테일 분석가)
Nike.com인지, 풋로커 매장인지, 아마존인지. 고객은 어디서 제품을 사는지가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DTC는 신상품 출시와 할인 이벤트에 열광하는 기존 충성고객을 잡아두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고객 확장엔 한계가 분명합니다.
마케팅 업계 필독서로 꼽히는 바이런 샤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대학 교수 저서 ‘브랜드는 어떻게 성장하나(How Brands Grow)’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는데요. 그에 따르면 브랜드가 성장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신규고객 수를 늘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물질적 가용성(Physical Availability)+정신적 가용성(Mental Availability)이 모두 필요하죠. 즉, 일단 제품을 온라인이든 매장이든, 고객이 사고 싶은 곳 어디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하고요(물질적 가용성). ‘러닝화가 필요한데’라고 생각할 때 고객 머릿속에 곧바로 ‘나이키’ 브랜드가 딱 떠오르는 연결성을 만들어야 합니다(정신적 가용성).
하지만 나이키는 DTC 자체에 집착했고요. 그 결과 이와 정반대로 갔습니다. 소매점 진열대라는 물리적 가용성을 스스로 포기했고요. 스포츠용 제품보단 일상 패션용 제품에 집중하고, 브랜드 이미지 광고보단 클릭 끄는 디지털 마케팅에 치중하면서 ‘스포츠=나이키’라는 정신적 가용성마저 약화시켰죠. 나이키의 전 마케팅 임원 마시모 준코는 이를 두고 이렇게 한탄합니다. “경영진이 3년 만에 나이키의 브랜드 가치와 정신적, 물리적 가용성을 파괴한 엄청난 가치 파괴의 서사시였습니다.”
2024년 10월 나이키는 갑자기 CEO를 교체했다. 새로 임명된 CEO는 뼛속까지 나이키맨으로 통하는 엘리엇 힐. 나이키 제공지난해 10월 존 도나호 CEO는 결국 물러났고요(참고로 그는 나이키에서 총 1억400만 달러를 벌었다고 알려졌습니다). 32년간 나이키에서 근속했던 ‘나이키맨’ 엘리엇 힐이 후임 CEO로 구원등판합니다. 힐 CEO는 취임 뒤 소매업체들에 “변함없는 헌신”을 약속하며 관계 회복을 꾀했죠. 이번 아마존 복귀 역시 새 CEO의 전략적 변화를 드러내 줍니다.
나이키 사례가 보여주는 건 이겁니다. 아무리 전설적인 기업이라도 치명적인 실수를 하면 추락할 수 있다. 물론 나이키는 여전히 업계 선두이지만, 망가진 500억 달러짜리 브랜드를 되살리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아마 앞으로 최소 몇분기는 실적이 암울하겠죠. 현재 주가는 8년 만에 최저인 주당 60달러 수준. 이 깊은 수렁에 빠진 나이키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By.딥다이브
나이키의 실패는 레고의 성공과 흔히 비교됩니다. 자체 매장과 자사몰에 투자한 건 두 기업이 같지만, 레고는 결코 소매점을 포기하지 않았죠. 그래서 브랜드 정체성(나이키=스포츠, 레고=놀이)이 어디에 있는지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나이키가 6년 만에 아마존에 입점합니다. 나이키의 ‘잃어버린 5년’을 초래했던 과도한 DTC(소비자 직접 판매) 전략에서 완전히 돌아섰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주요 소매업체와의 거래를 끊고 자체 판매에 집중하는 전략은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어 보였습니다. 팬데믹을 타고 온라인 매출이 급증했고 마진율도 높아졌죠. 많은 이들이 ‘DTC 혁명’이라며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곧 각종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감당 못 할 재고가 쌓여갔고, 나이키가 내려온 선반 빈자리는 경쟁업체 제품이 빠르게 채워갔죠. 숨겨진 비용을 파악하지 못한 데다, 고객 충성도에 대해 자만한 탓인데요. -CEO는 교체됐고 뒤늦은 재건 작업이 한창입니다. 나이키는 여전히 1위이지만, 과거의 영광을 찾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