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낮아지면 부동산 불장 기름
금융당국, 금리 대신 대출목표 점검
與 대출금리 인하 법안 추진도 부담
“우리나라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가 주요국에 비해서 높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당일인 4일 직접 주재한 첫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금융위원회 직원들에게 이같이 말하면서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대출금리가 높다고 지적했지만 부동산 ‘불장’ 조짐에 당장 금융당국이 나서서 대출금리 인하를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출금리를 낮추면 들썩이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첫 비상경제점검TF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언급에 금융위 관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해외 예대금리차가 우리나라보다 더 높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아, 그런가요”라고 말하며 예대금리차 관련 대화는 약 15초 만에 종료됐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 취임 당일 오후에 열린 이 회의는 갓 취임한 대통령의 관심사를 확인하고 이재명 정부의 국정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자리였습니다. 약 15초의 짧은 대화였지만 대통령의 예대금리차 언급이 의미심장한 발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현재 예대금리차는 공시 이래 역대 최대 수준입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에서 취급한 가계 대출(정책 서민 금융 제외)의 4월 예대금리차는 1.35∼1.51%포인트입니다. 통상 금리 하락기에는 예대금리차가 줄어야 하지만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를 이유로 대출금리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은행에 대출금리 조정을 주문하기보단 월별, 분기별 가계대출 목표치 점검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높은 대출금리의 문제점보다 당장 가계대출이 더 크게 불어나는 상황을 막는 게 더 급하기 때문입니다.
이 대통령의 언급과 같은 맥락에 있는 여당의 은행법 개정안도 당국은 “추진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은행법 개정안도 지금처럼 부동산 불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법 개정안은 대출금리 가산금리에 보험료, 교육세 등을 제외해 대출금리를 낮추는 법안입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패스트트랙을 탔으니 이제 은행이 고민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