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해킹 불안]
온라인에 버젓이 퍼진 ‘해킹 정보’
검찰-경찰-삼성-현대차 직원 신상… 작년 병원 해킹뒤 유포, 경찰은 방치
“삼성본사에 폭탄테러” 실제 협박도… “보안실태 파악, 국제수사 공조해야”
21일 기자가 한 해킹정보 공유 사이트에 접속해 중앙의 검색창에 ‘korea’라고 치니 영문 게시글 20여 건이 떴다. 7월 20일 올라온 ‘한국 대통령’이란 제목의 게시글은 유독 영문 대문자로 강조돼 있었다. 1200자가량이 담긴 이 글엔 영문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실명, 생년월일, 주소, 통신사, 휴대전화 기기 종류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이메일은 7개씩이나 나열됐고 비밀번호로 추정되는 숫자와 문자의 조합 12자리도 드러나 있었다. 조회 수는 이날 오후 기준 430건을 넘어섰다.
이 사이트는 한때 특수한 전용 브라우저로만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으로 운영됐지만 이제는 일반 대중에 공개된 인터넷 사이트를 뜻하는 ‘클리어넷’에서도 가동된다. 별도로 로그인하지 않고도 열람할 수 있었다. 게시글에 올라온 이메일 비밀번호 등이 실제와 일치한다면 대통령의 이메일에 담겨 있을 기밀까지 쉽고 빠르게 퍼질 수 있는 셈이다.
● 해킹 17만3000건 유포, 유출 이메일로 협박도
보안업계에 따르면 이 웹사이트는 2010년대부터 다크웹에서 운영되다가 2014년 유럽경찰기구 유로폴, 미 연방수사국(FBI) 등이 대대적으로 다크웹 불법 활동을 단속하면서 폐쇄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 도메인으로 부활했다.
웹사이트 규정에 따르면 세계 해커 누구나 정보를 올릴 수 있지만 모든 게시물에 대한 책임은 사용자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미성년자 관련 불법 콘텐츠를 올려선 안 되며, 15세 미만 아동의 개인정보를 게재해서도 안 된다.
취재팀이 해당 사이트를 확인한 결과 총 17만3000건의 글이 게시돼 있었다. 성범죄자나 불륜을 저지른 사람, 유명인의 정보임을 주장하는 글이 많았다. 한국 관련 정보로는 지난해 대전선병원 해킹 사건으로 유출된 경찰청 검찰청 등 수사기관, 삼성 및 현대차그룹 등 대기업의 직원 신상정보가 여전히 공개돼 있다. 2022년 10월경에는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등 일부 기관에서 사용자 50여 명의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로 추정되는 정보가 이곳에 유포되기도 했다.
실제 이 웹사이트에 정보가 털린 이들에게 협박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 익명의 해커는 지난해 이 웹사이트에 올라왔던 이메일 주소로 “삼성 본사에 폭탄 테러를 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 “대통령 휴대전화에 악성코드 깔릴 수 있어”
민간 기업 임직원과 수사 당국자를 넘어 이제 대통령 개인정보까지 유포된 것은 해킹이 국가 안보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로 심화됐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곽진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단편적인 정보들이 모이면 암호화된 정보에서도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며 “(유출된 연락처 등을 통해) 다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면 대통령의 동선까지 노출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요 인사들의 정보 보안 실태를 파악하고 보안을 서둘러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명예교수는 “대통령의 휴대전화에도 악성코드가 깔릴 수 있다”며 “우리나라 주요 인사들의 스마트폰 보안을 강화하고 정보가 유출된 경로를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당국이 해킹 수사에 소극적이란 비판도 나온다. 경찰은 지난해 대전선병원 해킹 사태 이후 이 웹사이트에 대한 내사에 나섰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게시된 개인정보의 유출 경로를 수사 중이며, 피해 예방을 위해 신속히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대전선병원 해킹으로 공개된 개인정보는 여전히 삭제되지 않고 있다.
수사 역량을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국제 수사 공조도 필요하다. 경찰은 2018년 8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통령이 이메일이 해킹됐다며 신고했을 때도 1년여 동안 이렇다 할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하고 기소 중지를 결정했다. 경찰은 당시 해커가 중국 인터넷주소(IP주소)를 경유해 이 대통령의 이메일을 해킹한 것으로 보고 중국 수사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뚜렷한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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