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관세 인상에 따른 무역 전쟁과 글로벌 경기 침체 공포가 아시아 증시를 덮치면서 투자들이 최악의 월요일을 보냈다. 미국의 관세 인상에 중국이 보복 관세에 나서는 등 주요국 간 대립이 격화되자 투자자들은 “바닥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세를 둘러싼 강대국의 ‘치킨 게임’이 증시를 더 끌어내릴 수 있다며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 외국인, 코스피에서만 2조 원 넘게 팔아
7일 외국인 투자가들은 코스피에서만 약 2조949억 원어치의 주식을 매도하면서 증시 하락을 주도했다. 외국인들이 코스피에서 2조 원 이상 주식을 팔아 치운 건 코로나19 시기였던 2021년 8월 13일(2조6900억 원) 이후 3년 8개월 만이다. 외국인들의 순매도 규모도 역대 5위에 해당한다. 이날 종가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은 1907조5910억 원으로 올 초 이후 3개월여 만에 2000조 원이 깨졌다.
장 개장 직후 외국인의 ‘패닉셀’(공포 매도)이 몰리면서 지난해 8월 이후 8개월 만에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이후 잠깐 낙폭을 줄였지만 오후 들어 다시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최종적으로 5.57% 내린 2,328.20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하락에 대형주를 비롯해 방산, 조선 등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수혜주도 줄줄이 무너졌다. SK하이닉스는 전일 대비 9.55% 하락하면서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중 가장 큰 하락 폭을 보였다. 미 관세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현대자동차(―6.62%)와 기아(―5.69%)는 52주 신저가를 나타냈다. 삼성전자(―5.17%)를 비롯해 그간 고공 행진을 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8.55%), HD현대중공업(―8.17%) 등 방산이나 조선주들도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전날 모처럼 1430원대에 진입했던 원-달러 환율도 전일 대비 33.7원 오른 1467.8원에 마감했다. 하루 상승 폭으로는 2020년 3월 19일(40원) 이후 최근 5년 만에 가장 컸다.
외환·금융 당국도 긴장 태세에 돌입했다. 당국은 비상대응체제를 갖추고, 필요할 경우 100조 원 규모의 시장 안정화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방침이다.
● “트럼프 취임 후 美 시총 1경6000조 원 증발”
트럼프 대통령의 고관세 부과에도 내심 협상을 기대했건만 각국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확전 양상이 이어지자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증시도 주가 폭락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미국에 대해 34%의 추가 보복 관세를 내세우면서 미중 무역 분쟁이 더 심화할 것으로 예측되자 중국이나 홍콩 등 중화권 증시가 폭락세를 나타냈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전일 대비 7.34% 내린 3,096.58에 거래를 마쳤고, 홍콩H지수는 13.75% 하락했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일본과 대만 역시 자국 수출 기업의 실적 악화가 예상되면서 증시 하락을 면치 못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전일 대비 7.83% 빠졌다. 개장 이후 8% 넘게 빠지는 등 지수가 폭락하면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기도 했다. 대만 자취안지수도 이날 9.7% 밀리면서 8개월 만에 2만 선이 붕괴됐다.
이번 증시 폭락의 피해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보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 뉴욕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시가총액이 11조1000억 달러(약 1경6000조 원)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 전쟁이 무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12개월 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을 기존 35%에서 45%로 올려 잡았다. 국제 유가나 원자재 가격을 비롯해, 6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금 선물이 2.9% 하락하는 등 최우선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금값까지 하락하고 있다. 비트코인도 오후 8시 기준 전장보다 7%가량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자산 가격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미국이나 중국 등 주요국들이 본격적인 관세 협상에 돌입한다든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인하하는 등의 변화가 나올 때까지는 약세장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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