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엔 창설 80주년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3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기 속에서 한국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으로서 다자주의의 중심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이번 APEC 통상장관회의는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15∼16일 제주에서 개최되는 통상장관회의는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이라는 시대적 도전에 대응하여, 자유무역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다자통상 질서의 복원을 모색하는 통상외교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통상장관회의는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연결, 혁신, 번영’이라는 2025년 APEC 정상회의 주제를 바탕으로 다자무역 체제 강화, 무역 원활화를 위한 혁신, 지속가능한 무역을 통한 번영 등을 논의하고자 한다. 특히 한국은 이 중에서도 ‘인공지능(AI) 통상’이라는 미래지향적 주제를 통해 무역 원활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자 한다.
‘AI 통상’이란 AI 기술이 상품, 서비스, 데이터, 자본 등에 대한 국가 간 통상 질서에 미치는 영향과 그를 위한 정책, 규범 등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이미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주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우선 AI 기술이 확산되면서 필연적으로 규제 이슈가 대두되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AI 관련 규제를 우후죽순으로 도입하고 있고, 이 같은 각국의 AI 관련 규제 체계는 국가별로 편차가 커, 기업들이 각국의 상이하거나 때로는 상충하는 규제를 모두 준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공공과 민간이 긴밀히 협력하여 규제 체계의 일관성을 높이고, 기업의 규제 준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AI 확산에 따른 규제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차원의 표준화 협력이 필수적이다. AI 기술이 신뢰성, 안전성, 윤리성 등 다양한 사회적 우려를 수반하는 만큼, 기술 표준과 적합성 평가에 관한 국제적 정보 교류를 통해 상호 운용성과 신뢰 기반을 다져야 한다.
국제통상 질서에서 디지털 기술의 도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특히 AI의 활용은 무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 통관, 상품 분류, 리스크 기반 심사 등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무역 절차의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글로벌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기업인, 중소기업 등 국제 무역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에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번 APEC 통상장관회의는 단순한 통상 외교 행사를 넘어 한국이 미래형 통상 이슈를 주도하고 국제 규범 형성에 선제적으로 참여하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한국이 ‘AI 통상’ 의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APEC 지역의 경제 통합을 한층 심화시킬 뿐 아니라 디지털 통상 강국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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